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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엉 Jan 28. 2024

치앙마이로 떠나는 날 아침 공항버스

상대적 박탈감과 자전적 성찰이 있었던 그날

가성비 없는 도시 서울

갑자기 휴직하게 된 나는 사실 돈이 없었다. 24년 4월 이사도 가야 했고, 현금 2000만 원도 없는 나는 서울에서 더 이상 은행이나 집주인에게 돈을 주며 전세, 월세를 살고 싶지 않았다. 24년 3월 즈음 1억 초반 ~ 1억 중 후반의 그옥 빌라를 매매할 … 다소 무리수를 둔 뜻한 계획을 가지고 있었기에 돈을 벌 수 있다면 더 벌어야 했다. 


그런데, 3개월 휴직으로 인해 3개월치 월급은 날개를 달고 날아갔고, 나르시시즘 성향의 직장 상사 덕분에 23년 하반기 성과급 또한 받지 못하는 지경에 처했다. 대략… 천만 원 이상의 기회비용이 날아갔다. 누가 요즘 월급쟁이하냐며! 빈정거리뜻 말하겠지만, 월급이라는 고정비용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힘이 세다. 아쉬운 소리지만, 급작스럽게 닥친 3개월 휴직으로 인해 끓겨버린 나의 현금흐름은 아직도 회복하지 못하고, 신용카드 사용액만 늘어나고 있다. 맞다. 돈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 타이밍 즉 시기가 좋지 않았다. 


주택청약과 전세이자에 묶여있는 전재산을 제외하고 휴직기간 동안 내가 쓸 수 있는 돈은 600~700만 원 정도였다. 답은 나왔다. 한 달에 200만 원, 3개월, 몰지각한 서울에서 숨만 쉬면서 돈 나 가는 것만 보고 있을래? 아니면, 서울보다 더 좋은 환경과 여건이 있는 국외에서 새로운 사람과 경험을 잔뜩 하고, 인생에 몇 안 될 기억에 남는 휴직기간을 보낼래? 딱 두 가지 질문만 남았고, 나는 후자를 선택했다. 서울이 질렸다. 일을 하고, 열심히 살아도, 지방에서 올라온 나 같은 사람에게 서울이라는 곳은 가성비가 없는 도시다.


200~300만 원으로 서울에서 경험하는 그 이상을 할 수 있는 곳, 낮은 물가, 따뜻한 날씨, 풍부한 열대과일, 맛있는 음식, 세계적으로 유명하지만, 조용하게 쉴 수 있고, 무엇보다 치안이 좋은 곳, 딱 맞는 장소가 내게는 태국 치앙마이였다. 무엇보다, 요가를 할 수 있는 곳이어야 했는데, 치앙마이 올드타운에만 요가원이 10개가 넘었고, 공원 등의 공유 공간에서 진행하는 무료 요가 수업을 하는 커뮤티니는 2곳이나 있었다. 한 푼이라도 아끼고, 저축이라는 것을 해야 하는 나의 상황에 태국 치앙망이 한달살기를 거부할 이유 따윈 존재하지 않는 최적의 장소였다. 


태국 치앙마이 한달살기 짐 싸기 그리고 공항으로

 사실, 여행도 아니고, 한달살기의… 짐 싸기는 내게는 꽤 난감한 일이었다. 옷은 대충 입어도 수영은 꼭 하고 싶어서 수영복을 사야 했고, 요가는 늘 하고 있었지만, 막상 또 매일매일 그곳에서 요가로 하루를 시작하려고 하니, 마땅한 요가복이 없었다. 요가라는 운동을 수 년째 하고 있지만, 굳이 구색 맞춰서 요가복을 입지는 않았던 것이 그 이유였다. 게다가, 등산이나 야외 활동도 할 계획이라… 때마침 운동화도 마땅히 없었다. 상비약뿐만 아니라, 수영복, 요가복, 운동화... 를 사야 했다. 혼자 떠나지만 사진은 꼭 찍고 싶어서 셀카봉도 필요했고, 보조 배터리도 필요했다. 낯선 타국에서 휴대폰이 방전되기라도 하면 정말 아찔하지 않은가? 치앙마이로 떠나는 비행기 탑승 하루 전 전날까지, 나는 각종 물건들을 사고 사고, 또 사고를 반복했다. 물건을 살 때마다, 나는 은연중에 살짝 슬퍼졌다. 지금까지 참거나, 미루어 왔던 필요한 소비들이 한꺼번에 들이닥치는 기분이었다.


치앙마이로 떠나는 날 아침까지도 지출의 연속이었다. 집에서 인천공항까지 지하철로 2시간 가까이 걸리는데, 이른 아침 지하철에서 20kg짜리 캐리어와 백팩을 이고, 내리고, 끌고, 올리고… 해야 하는 상황을 생각하니, 매 순간 찾아오는 당혹감을 감출 수 없을 것 같았다. 게다가 내가 예약한 비행기는 아침에 뜬다. 나는 과감하게 공항버스를 예매했다. 어쩌면, 서울은 가성비가 없는 것이 아니라, 돈이 없으면 살기 힘든 도시일지도 모른다. 


한달살기 준비물에 대한 대단위의 소비 행위가 질릴 때 즈음 나는 전월세 수익으로 해외여행을 다니며 강남에 거주 중인 여사님들 사이에서 공항버스를 타고 인천공항으로 가고 있었다. 50대 후반에서 6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사님들은 일본으로 향하는 뜻 했고, 일본 다음의 여행지는 이집트 인 것 같았다. '이스라엘 - 하마스' 전쟁으로 여사님들은 이집트 여행을 취고하고 싶은 눈치였고, 미리 예약해 둔 이집트 항공권을 취소하기 위해, 어떻게 하면 항공사 직원을 공경에 빠뜨려 본인들의 목표를 달성할 것인가? 에 대한 계획을 짜고 있었다. 는 사람 보다, 때론 있는 사람들이 더 무섭다.


"그들이 사는 세상" 같은 여사님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퍽하고 우울해졌다. 상대적 박탈감이라는 건 이렇게 찾아오는 걸까? 전, 월세 놓고, 젊은 세대들 삥 뜯을 수 있는 그대들이 조금 부럽고, 이집트행 비행기를 취소하기 위해 항공사 직원에게 억지 부릴 수 있는 그대들의 쓸데없는 자신감이 참 멋져 보였다. 


창밖으로 멀어지는 서울의 도심 풍경이 보였다. "진짜 떠나긴 하네,... 여기까지 오기 위해 난 얼마나 많이 참고, 얼마나 큰 고통을 감내해야 했을까?" 11월 차가운 공기를 헤치고 내가 타고 있었던 공항버스를 향해 내리쬐는 햇살이 너무 낯설었지만, 나는 매우 큰 '해방감'을 느꼈다.



도대체 어떻게 쉬어야 할지? 고민하던 중 내가 읽은 책 중에 백영옥 저자가 쓴 '힘과 쉼'이라는 책이 있다. 책이 좋아서, 서점에 취업했다는 그녀는 먼지가 풀 풀 날리는 서점 창고에서 택배를 붙이고, 책에 손이 베이는 경험을 여러 번 하곤, 책이 질려서 서점을 퇴사하여 그 길로 미루고 미루었던 전업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고 한다. 정확한 문장이 기억나지 않지만, 그녀는 자신의 경험을 서술하면서, "인생에서 마주하는 몇몇의 경험들이 때론,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다른 길로 인도하기도 한다."라고 표현했다. 


그런 것 같다. 나르시스즘 성향의 직장 상사와 팀원에게 소리나 지르는 팀원, 호시탐탐 정규직의 자리를 노리는 재수없는 파견직원까지, 그녀와 그의 공조 덕분에, 나는 우울증에 빠졌고, 태국 치앙마이로 떠나게 됐다. 그리고, 나는 조금 기대한다. 태국 치앙마이에서의 여정이 나를 또 어디로 인도할지?에 대해서


그렇게, 나는, 이 징글징글 맞은 서울을 아주 잠시 떠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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