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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엉 Feb 04. 2024

구름이 너울거리는 치앙마이의 산

해외에서 살면? 왜 애국자가 되어야 하는가?

어디서든 산이 보이는 치앙마이

 태국 치앙마이에 있을 때, 나는 아침에 일어나면 방에 드리워져있는 암막커튼을 열여 재치고, 앞집을 넋 놓고 바라보다가, 압집 옆 뒤편으로 시선을 돌려 산을 지그시 쳐다보곤 했다. 매일이 29도 ~ 30도를 웃도는 날씨였지만, 그 변화 없는 햇빛과 공기가 만들어내는 풍경들이 너무 신기했다. 그 풍경들은 매일 아침 내 발목을 붙잡았다. 한 달 살기를 시작한 초입부 1~2주 동안 나는 아침에 일어나 그 풍경들을 보면서, 늘 이렇게 혼자 중얼거리며 말했다. 태국 치앙마이는 산에 둘러싸여 있는 곳이기 때문에, 도심 어디에서든 산이 보였다.


'미쳤나 봐!' , '날씨가 미쳤나 봐!'  



치앙마이 도착 기내에서 내리기 전 비행기 천장을 바라보았다.

 태국에 도착한 당일, 치앙마이는 밤 10시였다. 한국인들은 빨리 내리려고 기를 쓰고 덤비는 그곳에서, 나는 멀뚱히 기내 천장을 쳐다보고 있었다. 한 달 살고 다시 고국으로 돌아갈 예정이었지만, 내가 그곳에 드디어 도착했다는 사실이 낯설었고, '인생의 장난'이라는 파도에 떠밀려 떠밀려 온 것 같아, 마음이 착잡했다. 그때까지도 내 캐리어 한편에는 정신과에서 처방받은 약이 한 움큼이었기에 자연스럽게 결정된 한 달 살기는 아니었다. 지독하게 한국이 싫어서 떠난 도피 여행과 비슷한 것이 나의 태국 '한 달 살기'였다. 비행기를 내리는 순간 나는 철저하게 혼자가 됐다. 수화물 라운지에서 캐리어를 찾고, 공항 한편에 앉아, 숨을 고르고, 현지에서 사용할 유심칩 사용법을 읽으며, 한국에서 쓰던 휴대폰의 유심칩을 빼서 현지 유심칩으로 교체했다. 이제 정말, 한국과 단절 됐다.


우리가 저렴하다고 자주 방문하는 국가가 오히려 국제적일 수 도 있다.

 유심칩 문제를 해결하니, 한 결 마음이 편안했다. 한국의 광역시 공항보다 더 작은 치앙마이 공항을 보고 있으니, 이곳이 전 세계인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는 곳이라니? 믿기지 않았다. 치앙마이 공항은 정말 작고 아담했다. 다양한 인종들 사이로 '한국어'가 끓임 없이 들렸다. 지겨운 '한국어'가 계속 들렸다. 비행기 6시간을 타고 날아왔는데, '한국어'라니,... 모국어는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거부하는 그 모든 것들을 포함하는 매체'라고 생각하는 나는, 태국 공항에서 끓임 없이 들리는 한국어가 너무나 싫었다. 가족들에게 잘 도착했다. 는 문자 메시지를 보내고, 나는 '한국어'의 소음 속에서 빨리 나가버리고만 싶어, 1번 출구로 향했다.


어느 인풀루언서는 자신의 블로그에서 '치앙마이 공항 1번 출구에서 택시를 잡으면 바기지 요금 없이 150 밧트로 시내에 있는 호텔까지 이동할 수 있다고 했다.' 나는 지체하지 않고 1번 출구로 향했다. 조금 걱정스럽긴 했지만, 1번 출구에 도착했을 때, 격식 있는 차림새를 한 수행 여직원 2명이 나의 목적지를 물었다. 그리곤, 택시 기사의 차량 번호가 적힌 영수증 같은 것을 내게 건넸다. 요금은 150밧트라고 적혀 있었다. 나를 이상한 곳으로 데려가거나? 사기 칠 것 같지는 않아 보여 안심이 되었다. 몇 분 후 택시가 도착했고, 노신사가 내려 나의 캐리어를 트렁크에 싣고 우리는 공항을 떠났다.


호텔로 가는 길은 어두웠지만, 일본에서 해외 무역 관련 일을 했다는 순풍은? 태국인이었지만, 일어에 능통했고, 영어 또한 수준급 이상이었다. 그의 이름이 순풍? 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그는 수줍게 내게 그의 명함을 건네곤, 혹시 가보고 싶은 곳이 있다면 연락하라는 말을 건넸다. 고등학교 때 일본어를 잠시 배웠던 나는 간단한 인사말을 일어로 주고받으며 순풍과 헤어졌다. 그저 신기했다. 태국어, 영어, 일어에 능한 태국사람이라니,... 어쩜, 이렇게 국제적이란 말인가?


4성급인데, 린스 없는 객실 화장실에서, 한국인의 정체성을 생각하다.

순풍을 보내고 호텔 로비로 들어섰다. 호텔 직원들이 사와디카! 라며 네게 인사를 건넸다. 룸키를 받고, 객실로 들어갔다.(중략) 아침이 밝았다. 방의 컨디션은 썩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나는 분명 4성급 객실을 빌렸는데, 체감으로는 2.5성급의 객실이었던 것 같다. 샴푸는 있는데, 린스는 없는 화장실에서 뜨끈한 물을 틀어 샤워를 하면서 생각했다. “샴푸는 있는데, 왜 린스는 없을까?". "한국이었다면, 분명 투숙객의 항의가 빛발 쳤을 사한이 아닐까?",  "역시 한국의 4성급과 이곳의 4성급은 다른 것이겠지!"... "쓸데없이 까탈스러운 사람들이 모인 곳이 한국 아닐까?" "하긴 뭐, 인류역사상 이런 민족은 또 다시는 없겠지..." 라며 또 혼자 중얼거렸다. 뭔가 한국인의 정서에서 아무리 뜯어봐도 투박해 보이는 객실이었지만, 그곳이 내게 주는 의외성은 또 다른 재미로 다가왔다. 누군가는 해외여행을 하면 애국자가 된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나라는 사람은 반대인 것 같다.


쓸데없이 까다로운 종특들... 의 집합 한국.

(중략) 다음날 나는 2.5성급 같지만, 4성급 호텔에서 눈을 떴다. 4성이든, 5성이든 건조한 호텔 객실을 별로 좋아하지 않은 나로서는 호텔 객실의 건조함 때문에 밤새 고생을 했다. 아침에 눈을 떠, 나는 비행의 여독을 날리고 싶어서, 러닝머신과 수영장이 있는 라운지로 향했다. 러닝머신과 수영장은 나름 준수한 컨디션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간단한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고, 러닝머신 앞에서 기기를 작동시켰다. 그리고 순간 고개를 들어 정면에 있는 통창과 마주하게 됐는데, 통창 너머로 산이 보였다. 나의 첫 태국 치앙마이의 첫인상은 그렇게 결정됐다. 아마 내가 태국 방콕을 한 달 살기 장소로 정했다면, 다른 이미지로 결정되었겠지만, …


러닝머신을 달리는 내 내 산을 보며, 또 혼잣말로 "미쳤나 봐!"를 외쳤다. 서울에서는 좀처럼 산을 볼 일이 없었는데,..... 산들은 구름들의 그림자를 품고 있었는데, 그 관경이 뭐랄까? 너무 생경스러워서는 아무 말 없이 나는 계속 달리기만 했다. 몸이 달아오르고, 땀이 날 때쯤 나는 러닝머신 작동을 멈추고, 수영장으로 향했다. 수영장 안에서도 나의 '산멍'은 계속되었다. 나는 한낮의 쨍쨍한 햇살을 온몸으로 맞으며, 산 위에 걸린 구름 그림자들의 너울 너울한 움직임을 계속 쳐다보았다. 가장 높은 산의 꼭대기에 치앙마이를 대표하는 '사찰'의 지붕으로 보이는 어떤 형체가 눈에 들어왔다.


수영장에는 휴가를 보내러 온 태국 현지 가족, 벌레 나오는 것이 무서워 올드타운의 오래된 호텔을 피해서, 님만해민의 신식 호텔만 예약했다는 한국인 가장과 그의 가족들, 유튜브에 업로드할 영상을 촬영하는 한국인 여자 여행객 2명, 인생 사진을 찍기 위해 아담한 수영복을 입고 온갖 포즈를 취하고 있는 중국인이 있었다. 다들 저마다의 여행을 즐기고 있었다. 벌레나오는 상황이 무서워 오래된 호텔을 예약하지 않았다는 한국인 가장이 제일 이해할 수 없었다. 흔히 외국에 나가면 애국자가 된다고 하는데, 나는 외려 반대로, 쓸데없이 까다로운 요상스라운 한국인이라는 민족적 특성을 발견하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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