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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엉 Feb 18. 2024

밤 수영장이 생각났다.

별스타그램 포스팅용 수영장은 아니었지만, 나는 충만하게 자유스러웠다.

 한국. 서울에서 산다는 것의 무게

 설날 연휴. 한국 문화에 더욱 깊숙이 졌어든 나는. 태국 치앙마이에서 기억을 더 많이 잊어버리게 되었다. 어디서부터 다시 글을 시작해야 하지?라는 고민이 계속되어 글을 쓰기가 너무 어려웠다. 게다가, '이사 갈 집 구하기', '새로운 업무 적응하기' , '우울증 후유증?' 등 주거, 회사, 건강 등과 관련된 고민과 상황들이 겹쳐 더욱 글쓰기가 어렵게 느껴졌다.


출처 : 구글) 맞다! 한국에서 돈 없으면 살기 힘들다.

주거

현재 살고 있는 전셋집이 4월 계약이 만료되어 2개월 뒤 이사 갈 집을 구해야 하는 나는 '전세사기'로 아비규환이 된 부동산 시장에서 '대략 난감'함을 또 느끼고 있다. 1억 2천 ~ 1억 5천 전세, 대출 가능하고, 보증보험 가능한 안전한 매물 위주로 살펴보고 있지만, 어찌 된 이유인지? 알 수 없으나 부동산 업자가 소개해 주는 집들은 다들 하나 같이 귀신 나올 것 같은 집들이 대부분이다. 1억이라는 돈을 은행에서 빌려서 보증금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인데, 왜 내가 귀신 나올 것 같은 집을 계약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회사

'무리하게 일 시키고 싶지 않아요!'라며, 살뜰하게 챙겨주는 팀장님 아래에서 행복하지만, 다음 주부터 인수인계를 받고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하는 새로운 업무와 올해 상-하반기 성과금을 받기 위해 달성해야 하는 목표 설정 면담을 앞두고 있는 나는 일요일 오전부터 대단한 긴장감을 느끼고 있다.


건강

지난해 5월 우울증 진단을 받고, 올해 1월부터 항우울제를 끓었다. 나는 약을 끊고 3주 정도 어지러움과 약간의 두통으로 불편했다. 다행히 어지러움 증상은 없어졌지만 예전에 비해 뇌가 쉽게 피로해지는 것 같다. 게다가 활동량 부족으로 몸이 늘 무겁고 찌뿌둥하다.


집, 직장, 건강 3개의 고민이 동시에 들이닥쳤다. 머리가 돌덩이가 된 것 같았다. 아니 이미 돌덩이가 되었다. 목욕탕으로 향했다. 온탕에서 몸을 데우고, 찜질방에서 땀을 빼고, 찜질방의 열기를 식히기 위해 냉탕에 들어갔다. 아무도 없는 냉탕에서 큰 대자로 물 위에 누웠다.


내가 만든 물결 속에서 대류 하는 물소리를 들으니,
태국 치앙마이의 '밤 수영장'이 생각났다.

치앙마이 집의 수영장

치앙마이에서 내가 살았던 레지던스에는 옥상 수영장이 있었는데, 6평? 정도 되어 보이는 크기에 120~130cm 높이를 가진 아담한 크기의 수영장이었다. 어라! 크기를 다시 회상해 보니 수영장... 보다는 풀(pool) 장이라는 표현이 더 적합할 것 같다. 그곳에서 만난 한국인 중년 부부는 방에 대해 불평불만을 쏟아냈지만, 나는 그곳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나는 옥상 수영장에서 밤 수영을 즐기는 것을 무척 좋아했다. 레지던스에 머물렀던 사람들은 10명 중 9명이 서양인들이었고, 서양인들은 해가 가장 뜨거울 때, 옥상 수영장에서 일광욕을 하며 낮잠을 자는 것을 좋아했기에, 밤의 옥상 수영장에는 아무도 없었다.

내가 좋아했던 옥상 수영장의 '낮 풍경'


아무도 없는 밤. 중력에서 벗어나, 내가 만들어낸 물결 속에서 둥 둥 떠다니며, 물이 흐르는 소리를 들으면 태고적 자유스러움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늘 저녁 7시쯤 수영복을 입고, 비치타월을 몸에 걸치고, 슬리퍼를 신고, '싱하 탄산수' 한 병을 들고, 옥상으로 올라가, 선배드에 짐을 놓고, 물속에 풍덩 뛰어들어, 수영장을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며 헤엄을 쳤다. 그리곤, 매일 밤 탁 트인 전경을 바라보며 그곳의 밤 풍경을 멀찍이 쳐다보곤 했다. 간혹 그곳의 아이들이 재미 삼아 작은 폭죽이라도 쏘아 올리는 날이면 소박하고 프라이빗한 불꽃놀이를 볼 수 있었다.

옥상 수영장의 '밤 풍경'


그곳에서 만난 파란 눈의 서양인들이 생각난다. 스코틀랜드에서 온 중년 부부 테라사와 그의 남편(남편 이름이 무엇이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는다.), 오후 4시가 되면 요가 매트를 들고 와 요가를 했던 배가 볼록 나온 중년의 남자도 있었던 것 같다. 그는 독일어가 모국어였고, 리히텐슈타인에서 왔다고 했다. '리히텐슈타인'이라는 나라 이름을 태어나 처음 들었던 나는 너무 신기한 나머지 그를 붙잡고 스마트폰을 열어 구글 지도를 펼차고 짧은 영어로 '리헤텐슈타인'에 대한 궁금한 모든 것들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계속 질문했다. 모두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지 않았지만, 우린 영어로 대화했고, 우린 늘 서로의 부족한 영어 실력에 대해 미안해했다. 우리의 대화는 느렸지만, 서로에 대한 배려로 늘 넘쳐났다.

리히텐슈타인에서 온 중년 아저씨가 요가와 스트레칭을 하고 있는 뒷 모습


태국 치앙마이에서 머물렀던 1달 중 딱 한번 비가 오는 날이 있었는데, 나는 그날 수영장에 있었다. 그날은 태국 요리를 배우기 위해 치앙마이 근교의 농장에 다녀온 터라, 더위를 식히고 싶어 오후 3시 즈음 옥상 수영장으로 갔다. 내가 도착한 후 얼마 뒤 먹구름이 끼면서 비가 내렸다. 매일 화창한 이곳도 비가 오는 날이 있구나! 하며, 수영장에 떨어지는 빗물들이 만드는 둥근 움직임을 신기하게 쳐다보곤 했다.


옥상 수영장은 소박하고 아담했지만, 내게는 너무 소중한 공간이었다. 인스타그램에 올리기엔 턱없이 부족한 공간이지만, 나는 그곳에서 작은 것들 속에서 소중함을 발견하고 느끼는 방법을 배운 것 같다. 1달 이상 휴직할 기회는 앞으로 없을지도 모르지만, 기회가 온다면, 다시 옥상 수영장에 몸을 담그고 싶다.

수영장에서 행복해 보이는 나의 발 사진


살기 개 어려운 서울에서 태국 치앙마이 수영장에서 배운 것을 적용해 본다.

나는 어쩌면, 운이 좋은 편에 속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만 30살까지 내 연봉은 2760만 원이었지만, 당연히 성과금이나 복지 포인트 따위는 없는 구멍가게 같은 회사들이었다. 나는 현재 대기업 계열의 유한회사에 다닌다. 연봉, 복지, 성과금 등 참 많은 것을 쟁취했다. 만 32살까지 대출 한 번 받아본 적이 없다. 심지어 나는 학자금 대출도 받지 않았다. 사회 초년생 시절 잠깐 월세살이를 했었고, 27살 즈음에 부모님께서 전세 대출을 받아 '서울 송파구' 소재의 1억 3천5백만 원짜리 전셋집을 얻어 주셨다. 투룸이었다. 요즘 시세로 서울 송파구에서 2~3억은 있어야 투룸 전세집을 얻을 수 있지만, 10년 전 시세로 집주인이 방을 내 놓았기에 가능했다. 나는 이곳에서 6년을 살았다.(현재 집을 계약한 그 해 서울 소재 대학에 입학한 남동생과 함께 1년 정도 살았다. 남동생이 군대에 가고 나는 투룸에서 쭈욱 혼자 생활했다. 전세 계약 갱신 때마다 집주인이 월세를 올려서 지금은 전월세가 되었지만...(아참 물론, 대출 명의는 부모님이어지만 전세이자와 월세, 관리비 등 집과 관련된 추가 비용은 모두 내가 다 해결했다.) 이 집에서 이직을 두 번이나 했고, 이직 사이 공백기도 반년 정도 있어서, 모아놓은 돈은 그리 많지 않다. 전세 대출 이외에 현금으로 박혀 있는 전세금의 3분의 2정도를 모아 놓은 것 외에 내 재산은 딱히 없다. 그래도, 서울에서 연봉 3천도 안 되었던 기간 나름의 울타리가 되어 준 집이다.


이제 나는 이 집을 떠난다. 이 집의 온기를 토대로 다른 차원을 열어 갈 것이다. 다음 집이 어디가 될지? 모르겠지만, 어찌 어찌 하다보면, 어딘가!에는 도착해 있겠지! 도착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 나름에 의미가 있을 것이며, 나를 소중히 생각하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살아갈 것이다.


ps.

내가 좋아했던 옥상 수영장은 사실 석양 맛집이었다.

흔히, 한국 사람들은 고급스럽거나, 비싼 곳 호텔에서 석양이나 좋은 뷰를 찾는 것 같다.

하지만, 조금만 눈을 돌리면,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석양 맛집을 만날 수 있다.


나만 아는 '석양 맛집'을 나는 태국 치앙마이에서 찾았다.

옥상 수영장에서 본 석양


부디 이 글을 읽는 모두, 각자 '나만 아는 석양 맛집'을 꼭 찾길 바란다. 비슷한 목표를 향해 달리고, 그 목표에 도달하지 않았을 때 실패감과 좌절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비슷한 풍경과 비슷한 경험 속에서 서푸른 만족감으로 인생을 채우지 말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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