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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엉 Jan 07. 2024

태국 한 달 살기 그 후.

걸음 속도가 느려졌다. 그래도 괜찮다!

복직 첫날. 아주 조용히 회사 사무실로 들어가 가장 안쪽 자리로 향했다. 딱히 누군가와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익숙하지만 낯선 환경이 되어버린 그곳에 또 발과 몸을 뉘어야 한다는 생각에 복귀 전 전날부터 나는 계속 마음을 조리고 밤잠을 설쳐댔다. 태국에서 돌아온 지 벌써 한 달여의 시간이 지났다. 그곳에서의 기억은 이제 몇 장의 '사진'과 냉장고에 붙여진 '여행 기념 냉장고 자석', '여행 기념 간식' 가끔 떠오르는 '기억'으로 남았다. 태국 치앙마이 현지 기념품 가게에서 구매한 코코넛 과자, 건망고, 꿀 등 등은 이제 절반정도 남은 것 같다. 그곳에서 구입한 각종 먹거리와 간식들을 다 먹고 나면, 태국 치앙마이의 기억은 더 흐릿해질 것이다. 


냉장고에 붙어 있는 태국 치앙마이에서 구입한 냉장고 자석


9시 10분, 출근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 한국보다 2시간 느린 태국 치앙마이는 8시 10분이겠지. 오늘은 월요일이니, 주말에 소진한 먹거리를 다시 채우기 위해 주부들은 노란색, 빨간색 썡태우를 타고 아침 시장으로 향하고 있을 것이고, 치앙마이 근교에 사는 아이들은 모여서 트럭 짐칸에 몸을 싣고 학교로 향하고, 현지인 사이에서 이방인인 외국인 여행자들은 눈이 휘둥그레져서는 그곳의 풍경 이곳저곳을 흩어보고 있을 것이다. 최소 3개월이나 1년 이상 머물 계획인 장기 체류객들은 능숙하게 속소 앞 카페에서 커피와 빵을 주문하고 아침 신문을 읽고 있을 것 같다. 그곳의 풍경들은 여전하겠지... 




태국에서 한 달 살기 그 후. 걸음 속도가 느려졌다.


9시 30분 강남역에 도착했다. 개찰구를 지나 3번 출구로 향했다. 태국 치앙마이 사람들의 걸음걸이 속도와 강남권에서 출근과 퇴근을 하는 직장인의 걸음걸이를 비교해 본다. 태국 치앙마이 사람들이 한국 사람들에 비해 3배속 정도 느린 것 같고, 강남 사람들은 태국 치앙마이 사람들에 비해 3배 정도 빨리 걷는 것 같다. 전 세계적으로 일을 많이 하고, 바쁘게 사는 나라라고 알려져 있는 한국 답게, 모든 것을 빨리빨리 한다. 하지만, 태국에서 태국인의 속도로 살아보고 느낀 바. 한국은 일이 많아서 바쁘게 사는 것이 아니라, 멈춰 본 적이 없어서 그저 빨리빨리 걷거나 무언가?를 할 뿐인 것 같다. 


바쁘게 걷는 한국의 직장인들


태국에서 돌아온 후, 내 걸음걸이 속도는 이전에 비해 현저히 느려졌다. 난 더 이상 보통의 걸음 속도에 내 몸을 욱여넣으면서 보조를 맞추지 않는다. 그저 내 속도대로 느리게 걷게 됐다. 출근할 때는 다른 사람들 보다 2.5배 늦게 걸으며, 10초 정도 멍하니 태양을 마주 보기 위해 가던 길을 잠시 멈출 수 있게 됐다. 퇴근할 때는 다른 사람들 보다 3.5배 정도 늦게 걷게 됐다. 걸음 속도가 느려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평소보다 몸과 마음이 받아왔던 긴장이 현저히 줄어드니, '피곤함' , '조급함' , ' 긴장감' 등 부정적인 감정들이 줄었다. 출근길 몸이 한 결 가볐고, 퇴근길에는 마음이 조금 편안하다.



출근 후, 사내 인터넷 망에 접속하여 출근 버튼을 클릭하고, 텀블러를 세척해 그날그날 먹고 싶은 차를 뜨거운 물에 우려 책상 한편에 두고, 책상 컨디션을 살핀다. 먼지가 많은 날에는 먼지를 닦아낸 기도 한다. 따뜻한 차 세 모금, 다섯 모금 정도 마시고, 집에서 챙겨 온 달콤한 과자, 사탕, 과일, 등을 먹으며, 업무 노트를 찬찬히 펴고, 잠시 회사 사무실 천장을 본다. 핸드크림과 립밤, 아이크림을 화장품 파우치에서 꺼내어 책상 한편에 올려둔다. 아주 느린 속도로. 아주 느리게 오전 업무를 시작한다. 10시 10분이다. 느려도, 괜찮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태국 치앙마이 올드타운의 풍경 - 올드타운 고대 성벽을 감싸고 흐르는 강은 느리게 흐른다. 그래서 일까? 치앙마이 사람들은 각자의 속도를 존중하며 걷는다.


어쩌면 한국인이 빨리 빨리 걷는 이유는 멈춰본 적이 없어서가 아니라, 각자 자기자신의 걸음속도 대로 살아본적이 없어서 일지도 모르겠다. 모두가 빨리 빨리 걷는 사회에서, 나만의 속도로 느리게 걷는 것은 꽤나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일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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