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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보리 Aug 11. 2022

방구석 캠핑

비가 많이 오던 날

얼마 전 알고리즘을 통해 우연히 발견한 비 오는 날 캠핑하는 유튜브를 보기 시작했다.

말이 많거나 특별히 bgm이 있거나 콘텐츠가 다양한 것도 아닌 그저 고요한 빗소리와 캠핑 내부에서 휴식하다가 밥을 먹고 하루를 보내는 모습.


'이게 왜 이렇게 인기가 많지?' 하는 생각과 다르게 나도 빠져들면서 보고 있었다.

일단 무엇보다 캠핑은 장비빨이라는게 장비가 너무 세련된 느낌이다.

조명등과 갖가지 도구들. 어릴 적에 소꿉놀이를 한다면 성인이 되면 야외에서 캠핑도구로 소꿉놀이를 하는 느낌이 드는데 다들 열광하는 이유는 왜 일까?


그러다 방구석 캠핑하는 사람들, 베란다에서도 여유를 즐기는 다양한 모습들을 보고 반했다.

나도 장비를 거창하게 준비를 해야지만 될 줄 알았는데,

사람들이 이렇게 '지금, 여기'에서 힐링하고자 하는구나.


'안 되겠다. 별거 아닌데 오늘 당장 나도 해 봐야지'

바로 준비 모드에 들어갔다. 신랑이 감바스와 간단한 닭꼬치로 안주를 만들어 주었고, 나는 와인잔을 꺼냈다.


 뒷마당 테라스에 테이블과 의자를 피고 사은품으로 받은 조명을 찾아서 올려두었다. 그리고 나그참파 향초를 피워놓고 스피커로 잔잔한 bgm을 깔아주었다.


'어라? 이거 나쁘지 않은데?'

아무래도 저녁에 비가 많이 와서 더 분위기가 고조되었던 것 같다. 사방이 막혀있는 지라, 비가 샐 염려도 없지만 빗소리를 들으며 제법 캠핑 분위기를 낼 수 있었다.




조촐하지만 간단하고 맛있는 저녁 테이블이 완성되었다. 다 먹고 감바스에 바로 알리오 올리오를 해 먹었다.


"짠- 고생했어"


플레이리스트에서 비 오는 날 들어야 하는 감성 있는 음악이 나오고 어두워지고 빗소리에 더욱 운치 있는 분위기.



"진짜 방구석 캠핑이네."

"더 자주자주 나오자"


뭐 특별히 준비한 것 없이 즉흥적으로 해서 좋았던,

내가 너무 좋아라 했던


그다음 날에도,

3층 서재에 있었던 나에게 퇴근 후 남편이 갑자기 내려와 보라길래 내려갔더니, 

이번엔 쭈꾸미삼겹살을 불판에 볶고 있는 것 아닌가.!


"또 ?!?!"

"응 (씨익)"


나는 쌈장과 무쌈, 오이랑 야채들을 준비하여 후다닥 나가 만찬을 즐겼고 금세 바닥을 비워 냈다. 그리고 치즈와 김가루를 뿌려 볶음밥까지 비벼먹고는, 만족스럽게 앉아서 또다시 빗소리를 들었다.


"물난리라는데 이렇게 즐겨도 되는 건가"

"저녁은 먹어야지"

"그러네.."


어제는 비가 정말 많이 왔다. 새벽에 비 오는 소리 때문에 깼다. 이러다 진짜 뭔 일 나겠어.

하늘에 구멍이 났나.


"비가 너무 많이 와. 무너지면 어떡하지?"

"그래서 뭐 어떡할 건데"

"글쎄 뭐라도 해야 되지 않을까?"


나의 걱정과 다르게 남편은 아무튼 참 잘 잔다.


다음 날, 마당에 나가 주변 물배수가 잘 되는지 확인하고 무너진 곳은 없는지 둘러보았다. 다행히 멀쩡하다. 이 정도 비로도 끄떡없으니 조금 안심이다.


아직 여름휴가도 못 갔는데 요즘처럼 비가 많이 와서 즐기지도 못하는 상황에 조금 시무룩한데, 나에게 방구석 캠핑은 하나의 탈출구가 되어주었다. 이래서 다들 '캠핑' 하는구나.

무엇보다 '지금, 여기에서' 즐길 수 있는 무언가를 한다는 것. 힐링할 수 있다는 게 참 좋았다.

저녁에도 캠핑이 끝나고 3층 게스트룸에 누워서 멍하니 빗소리를 들었다. 남편은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고 싶다 하여 서재로 자리를 이동해서 나도 책을 읽으며 각자의 시간을 가졌다.


빗소리가 좋긴 한데, 와도 너무 많이 온다. 곳곳에서 침수했다는 뉴스 보도를 보고, 이제는 그만 와도 될 텐데라는 생각이지만 내일 또 비가 온다니 그들의 심정이 막막할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당장 내 일이 아니라는 생각에 안도하는 내 자신이 또 한편으론 또 이기적인 생각도 든다. 사람은 누구나 이기적인 유전자를 가진 것일까. 아무튼 비는 좋으나 이제 그만 왔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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