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장 너머 베트남 1
처음 가려던 곳은 베트남이 아니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가야만 할 것 같았다. 여행사 패키지 상품을 이용해서 말이다. 그러다 베트남으로 바꿨다. 원래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게 인생처럼 여행도 그렇다면 좀 너무 나간 느낌이다. 여행은 예기치 않은 변화를 즐길 수 있지만 사는 건 그게 쉽지 않다. 여행은 어디든 다시 갈 수 있지만 인생이란 '여행'은 그럴 수가 있을까?
몬세라트 수도원. 가우디가 영감을 가장 많이 받았다는 그곳을 가고 싶었다. 신이 한 말씀하실 것 같아서. 하루짜리 순례자가 되더라도 말이다. 여기에 이슬람교의 입장에선 영욕과 슬픔의 장소로, 그리스도교 입장 또한 슬픔과 영욕의 장소인 곳. 아니 누구에겐 타레가의 명곡 ‘알람브라 궁전의 추억’으로 기억될 곳까지 더해서. 잠시 돈키호테가 되어 스페인을 여기저기 돌아본 후 포르투갈로 넘어가고 싶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3ieIlp222_4
골목길이 예쁘다는 도시 포르투와 "이곳에서 육지가 끝나고 바다가 시작"되기에 세상의 끝이라고 믿었던 호카곶까지 돌아보는 것이 계획이었다. 거기 가면 엉킨 실타래 같은 과거를 잠시라도 내려놓을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루이스 드 카몽이스가 아니어도 세상의 끝은 곧 다른 시작이기에. 그러다 바뀐 이유에는 후배의 어설픈 제안이 있었다. 강하게 주장하지 않았지만 같이 같으면 하는 바람. 이게 통한 것이다. 언젠가 가봐야 할 곳인 동남아시아라서가 아니었다. 매번 아내와 동행했다는데 이번엔 따로 가기로 했다는 말에 담긴 숨은 의미들이 가슴에 와닿았다.
누군가 함께 했으면 하는 여행. 낯설지 않아도 하루 이상을 같이 보내는 건 많은 부분 서로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 이건 여행이 줄 수 있는 또 다른 기대지만 위험요소이기도 하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후배가 여행 후 싫어지면 어떻게 할지. 부부가 아니라서 가족이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보지 않으면 그만이니까? 이건 나를 둘러싼 담장을 얼마나 허무느냐 달려있다. 이건 심리적인 담장이다. 남과 내가 서로를 얼마나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건 각자가 가지고 있는 허들, 마음의 담장을 얼마나 낮추느냐 달려있다. 보이지 않는 장벽. 난 마음의 담장을 얼마나 낮출 수 있을까?
그래서였을 것이다. 세상은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다는 생각. 그게 작게는 내 영역이라는 표시부터 크게는 국가 간의 경계 표시까지. 이때 담장은 물리적이고 지리적인 의미의 담장이지만. 우리의 경우 철근 콘크리트로 된 아파트가 주요 거주공간이 되면서, 옛날 골목길을 아담하게 드러내던 담장이 허물어지면서, 대신 거대한 벽이 이를 가로막는 것을 보면서 자랐다. 담장은 경계를 표시하는 목적이 크기에 공간 전체를 막지는 않았는데 말이다.
어릴 때 기억에 대문을 나서면 동네 골목 여기저기 담장으로 둘러싸인 집들 안에는 당연히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었다. 소담스러운 꽃밭과 함께. 그때도 담장은 세상 속에서 나와 타인을 나누는 경계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런 담장은 어느 순간 허물 수 있었다. 문이 닫혔을 때 담장을 넘어서, 예외적으로 담장을 허물어서라도 세상으로 나갈 수 있었다.
어떤 순간엔 사람들에게 물리적 담장보다 심리적 담장이 더 쉽게 상처받고 허물기 어렵지만, 내게도 이번 여행이 닫혀있고 꽁꽁 얼어붙은 마음을 어떻게든 헐어버려야 할 때가 온 것이라고 느낀 것이다. 이건 본능적으로 세상이 문밖에 있으니 문을 활짝 열고, 아니면 담을 넘어서라도 내가 먼저 다가가야 함을 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을 아는 게 그렇게 사는 것이 인생인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