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장 너머 베트남 2
베트남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생각은 무엇일까? 예전엔 미국과 싸웠던 전쟁이었다. 지금은 베트남 펀드지만. 좀 더 생각을 해보면 할리우드에서 제작된 영화라도 진지하게 전쟁을 다룬 영화들이 그다음이다. 대략 플래툰(1986), 풀 메탈 재킷(1987), 7월 4일생(1989), 지옥의 묵시록(1979), 그리고 디어 헌터(1978)까지. 할리우드 키드가 아니라서 영화를 광적으로 보지 않았지만, 1960년에서 1975년간 벌어진 베트남 전쟁은 우리도 가해자란 이름표를 달게 되었다는 건 알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별로 기억하지 않은 기억하고 싶지 않은 사실.
우리가 당한 것은 어떻게든 기억하고 반대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인간의 염치없음을 확인하기 위해 굳이 비행기를 타고 베트남에 가는 것은 당연히 아니었다. 대게의 여행이란 것이 그런 것이 아니니까. 시간을 알차게 보내거나 그냥 잊기 위해서나 새로 시작하고 싶거나, 과거와 달라지고 싶거나 등. 여행을 하는 많은 이유를 댈 수 있지만 그 근저에 있는 공통점이란 '변화'를 가져보고 싶은 욕구 때문 아닐까?
베트남. 당시 초강대국 미국을 상대로 전쟁을 승리로 이끈 그들은 결코 다른 민족이 그들 땅을 끝끝내 밟지 못하도록 막아낸 근성의 나라였다. 근성의 민족이라고 딱 한민족만 집기엔 베트남에는 54개의 소수민족이 있어서 좀 난감해지지만, 1천여 년의 중국지배와 1880년대 초부터 시작되고 제2차 세계대전 때 끝난 프랑스 지배. 여기에 일본의 침략까지 견뎌낸 나라. 그런 베트남을 나약한 정신력을 기르려 근기의 나라를 갈까?
역시나 내세울 명분은 도이머이(doimoi) 때문이다. 새롭게 변한다는 말. 이는 경제뿐만 아니라 유명 여행지로서도 그렇게 변하고 있었다. 베트남 경제를 상징하는 이 단어가 눈부신 경제성장뿐만 아니라 문화와 관광산업에도 당연히 적용할 수 있지만 속내는 아무래도 자신에 대한 바람 때문이 아닐까? 좋게 표현해서 내적 성숙? 그저 시간 때우기라면 부정적일 테고. 내 안에서 새로 빚어질 도이머이. 그게 뭐든 말이다.
그렇다고 여기에 변하는데 새롭게 변해야 한다는 의무감과 늘어나는 흰머리를 어쩔 수 없이 바라보는 그 무게감을 인정해야 한다는 의미도 '여행'을 지치게 할 것 같다. 의미가 과잉으로 투여된 것이다. 변화를 위해서지만 갔다 오면 대게 여행이 그렇듯이 한 뼘 성장한 느낌. 그것이 주는 양과 폭이 사람마다 다르지만 말이다. 그것을 위해 여행을 가는 것이지만.
이번엔 그냥 카바티나(cavatina) 때문이다. 후배의 제안은 양념이었다. 어차피 가고 싶었는데 가게 된. 그런데 생각해 보면 그냥 음악 때문이다. 영화 디어 헌터 주제곡 카바티나 말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X7SvBtJuh3Y
한 때 누구든 젊었던 시절이 다 있다. 그래서였을까? 영화는 전쟁이 준 광기로 상처받는 미국의 젊은이들을 그리는데 돌이켜보면 어느 누군들 상처 없이 성장하고 기쁨만으로 살아가던가. 꼭 전쟁이 아니어도 말이다. 그래서 들으면 들을수록 슬픈 음악. 그래서 어떤 아리따운 아가씨 이름을 연상하지만 카바티나(cavatina)는 그냥 음악용어이다. 짧고 곡조가 아름다운 곡이 반복되는 노래 카바티나. 실망한다고?
알비노니가 작곡한 아다지오도 느리게 연주하라는 말 아니던가. 악보에서 안단테와 라르고 사이의 느린 속도로 연주하는 곡. 아다지오. 그러고 보니 아다지오도 단조다. 대체로 단조곡이 우울하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긴 하다. 베토벤의 ‘엘리제를 위하여’나 애드 시런의 ‘Shape of You’도 단조곡이니까. 작곡할 때 조성을 슬프게 하면 그렇게 되는데 이는 템포나 반주에 따라 다르다니. 이래서 음악을 듣는 것 같다. 작곡은 어려우니 말이다. 카바티나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