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의 대부분을 마스크 끼고 생활한 지도 벌써 1년이 넘었다. 이제 마스크는 상비약처럼 가방 안에 넣고 다니는 필수품이 되어 버렸다. 답답하고 낯설었던 마스크 착용도 적응이 되니 그런대로 숨 쉬고 살만하다. 한편으로는 인간관계에 지쳐있을 때 적당히 모른 척하고 살기에 제격인 데다가 번잡스러운 화장을 하루쯤 통과해도 티가 나지 않으니 나름 편하기도 하다. 다만 빼꼼히 내민 두 눈에서 예전의 따뜻한 정은 잘 느껴지지 않고 사람과의 관계에서조차 거리두기가 느껴져서 씁쓸할 때가 있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마스크 착용으로 인해 교실에서도 아이들 얼굴을 제대로 본 적이 없다. 그나마 온라인 쌍방향 수업을 해서 얼마간 마스크를 벗은 아이들의 온전한 얼굴을 보았으니 망정이지 한 해가 다 지나도록 얼굴 한번 제대로 못 보고 작별할 뻔했다. 게다가 마스크를 벗은 아이들의 모습은 생각했던 모습과 전혀 다른 경우가 많았다. 아예 다른 사람이었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아이들의 두 눈을 바라보며 마스크에 가려진 코와 입 모양을 요리조리 조합하여 온전한 얼굴을 상상해 보곤 한다.
새 학기가 시작되었지만 올해도 여전히 마스크를 낀 채 아이들과 처음 만났다. 그리고 얼마 전에는 업무 관련 회의에 참석했다가 10년 전 제자를 만났다. 회의가 모두 끝나고 몇 사람만 남아 있어서 마스크를 벗고 가볍게 인사를 나누는데 먼저 말을 건네 왔다.
“마스크 껴서 몰랐는데 지금 뵈니 예전 선생님 모습이 떠오르네요.”
제자로부터 중학생일 때 수업은 들어오지 않았으나 교무실 오가는 모습을 자주 봤다는 얘기를 들었다. 제자는 올해 임용고시에 합격하여 사서 교사로 첫 발령을 받았다.
사실 몇 년 전부터 학교뿐만 아니라 주변 곳곳에서 제자를 만나는 일이 빈번해졌다. 작년에도 요가원에서 10년 전 제자를 우연히 만났다. 요가가 끝나면 함께 차를 마시며 그 시절 이야기를 나누고는 했다. 세월이 흘러 이제는 내가 이런 나이가 되었구나 실감하면서도 온전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던 그 시절의 이야기들이 그리워졌다.
그때의 아이들끼리 서로 연락이 닿아 드디어 작년 연말에 어제의 용사들이 다시 뭉쳤다. 용사들은 다름 아닌 더는 만 나이로도 20대라 우길 수 없는 31세를 앞둔 여제자들이다. 우아하고 고급스러운 레스토랑에서 고상하게 칼질을 하기보다 허름한 주점에서 닭똥집에 소맥 말아먹기를 더 선호하는 그녀들이 오히려 정감이 갔다. 그녀들은 사회생활에 적당히 지쳐 있었고 자신이 제대로 된 길을 가고 있는지 하루에도 수십 번씩 널을 뛰는 30대 초입의 고민을 끌어안고 있었다. 그런데도 함께 교지를 만들었던 앳된 소녀들이 이렇게 쑥쑥 자라서 주제만 다를 뿐 끊임없이 수다 떠는 모습을 바라보니 영락없는 그때 그 소녀들이 틀림없었다.
그녀들의 낭랑 18세가 다시 살아나 이야기꽃을 피우니 나의 빛나던 30대 끝자락도 스쳐 지나갔다. 그녀들은 그때의 나를 '열정이 넘치셨다'라고 표현했다. 지난해에 가르쳤던 아이들에게도 이런 말을 들었으니 그녀들의 말이 아직은 유효한 것 같다. 30대가 주는 위기의식과 사회적 통념에 따르는 주변의 시선을 무시하고 당당히 자신의 길을 걸어가기에는 아직은 역부족인 그녀들이었지만 서로의 고민과 아픔에 대해 꾸밈없이 이야기 나누며 함께 격려하고 위로하는 모습이 참 예뻤다. 그녀들의 모습 속에서 멋진 책을 만들어 보자며 고군분투했던 지난날이 절대 헛되지 않은 시간이었음을 확인했다. 그 시간은 그녀들뿐만 아니라 내게도 큰 성장의 발판이 되었음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 당시에는 모두가 안 된다고 했다. 너무 애쓰지 말라는 위로의 말로 요즘 누가 학교 교지를 보겠느냐며 쓰레기통에 들어갈 게 뻔하니 대충 하라고도 했다. 아이들이 제대로 하겠느냐며 일을 벌여 봐야 강 선생만 힘들다고도 했다. 하지만 우리들의 빛나는 이야기는 다음 해에 큰 결실을 보아 나는 공짜 비행기를 타고 상을 받으러 가는 영광을 누렸다. 또한 입소문을 타고 전국으로 알려지면서 이름도 생소한 학교에서 교지를 보내 달라는 요청 전화를 여러 번 받았으니 이만하면 우리들의 간절했던 소망은 얼마간 이룬 셈이었다.
그해 겨우내 교지를 마무리하느라 참으로 분주한 시간을 보냈고 마지막으로 학교 옆 동산에 올라 맑은 물이 고인 습지에서 물수제비를 신나게 떴다. 그리고 다 함께 하늘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야호!! 끝났다!” 그렇게 교지로 만나 짧고도 긴 한 해의 여정을 무사히 마치고 우리는 헤어졌다. 그리고 다시 만났다. 돌아보니 모두가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그해 '교지편집부 후기'의 뒤를 이어 그녀들에게 다시 몇 자 적어본다.
"... 그동안 함께 갈 수 있어 뿌듯했고 함께 할 수 있어 행복했다. 그간 미운 소리, 싫은 소리 직격탄을 날려도 아무 군소리 없이 따라와 준 교지 편집부원들 모두에게 힘찬 박수를 보낸다.
… 그리고 아쉬움이 많은 20대를 잘살아내고 앞으로 무한히 펼쳐질 30대를 멋지게 살아낼 그대들에게 다시 한번 더 힘찬 박수를 보낸다. 처음 만났을 때도 그랬듯이 그대들은 지금 그 자체로 매우 아름답다. 그러니 어디서든 빛나는 삶의 주인공으로 당당하고 멋지게 살아갈 것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