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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덕을 잊지 못하는 이유

by 풍경

올해 내가 맡은 중학교 1학년 아이들은 2008년생들이다. 교직 첫해에 맡았던 아이들이 어느새 자라 부모가 되고 그 제자의 아이들을 다시 맡는 것이 이제 그리 놀랄 일도 아닌 나이가 돼가고 있다. 제주는 보통 한 학교에 3년 정도 근무하면 학교를 옮겨야 한다. 지금까지 숫자를 헤아리지 못할 정도로 수많은 아이들이 스쳐 지나갔다. 그중에서도 유독 흑백사진처럼 아련하게 다가오는 학교가 있다. 지나고 보니 그때의 이야기들이 아주 오래전 일들처럼 희미하면서도 모든 게 선명히 떠오른다.


안덕중학교는 전교생이 200명 조금 넘는 시골의 작은 학교다. 운동장에 서면 산방산의 산세가 훤히 한눈에 다 보이고 2층 교실에서는 화순 바다가 내려다보였다. 그해 나는 소박하고 아담한 교정에서 자기만의 사연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아이들을 만났다. 때로는 도시 아이들보다 더 거칠고 투박했으며, 때로는 도시 아이들에게서 볼 수 없는 순박함과 천진함을 간직한 아이들이었다. 해마다 새로운 아이들을 만나 새로운 사건 속에서 아이들과 아웅다웅하는 것이 다반사이건만 그때 아이들과 얽힌 사연들은 왜 이리도 새록새록 떠오는 걸까.

운동장에서 보이는 산방산 모습

어릴 때부터 동네에서 나고 자란 터라 유독 선후배 관계가 돈독하고 또래들끼리도 남녀 구분하지 않고 잘 어울려 지냈다. 하교하면 모두 산으로 바다로 달려가고 또 나름의 복잡한 가정 사정을 다 알면서도 편견 없이 지내는 모습들이 보기 좋았다. 물론 내 속을 시커멓게 타들어가게 한 녀석들도 많았지만, 그때는 어디서 그런 힘이 나왔는지 덩치 큰 아이들과 기싸움도 많이 했고, 이런저런 사연 많은 아이들과도 마음 터놓고 이야기를 나눴다. 돌이켜 보면 아무리 거친 아이들도 그 내면의 순수함은 빛바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내 이야기가 그 아이들의 가슴에 조금씩 스며들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지난해 스승의 날 무렵, 그때 제자로부터 연락이 왔다. 올해 대학에 진학했다면서 근무지 학교 근처에 왔다가 인사드리러 온다고 하니 흔쾌히 방문을 허락했다. 현기는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이런저런 일로 사소한 말썽을 피웠는데 중3 때는 점점 일이 커져서 아버지도 학교에 자주 오셨었다. 그 당시 거구의 몸에다가 사춘기 절정이었으니 힘으로 제압하기에도 무리였지만 어르고 달래며 그해를 아슬아슬하게 넘기고 졸업을 했다.


하루는 현기에게 운동장에 가서 큰 돌 하나를 주워오라고 했다. 꽤 큰 돌을 주워왔길래 다시 정확히 제자리에 두고 오라고 했다. 씩씩거리며 돌아오자 이번에는 가장 작은 돌 하나를 주워오라고 했다. 손가락 마디 하나도 안 되는 작은 돌을 주워왔다. 이번에도 정확히 제자리에 두고 오라고 했다. 교무실에서 지켜볼 테니 아무 데나 버리지 말라고 주의를 주었다. 운동장 한가운데 멀뚱히 서서 한동안 갸우뚱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한참 있다가 돌아온 현기에게 물어봤다.


"제자리에 뒀니?"

"둔 것 같습니다."

"그게 무슨 뜻이냐?, 솔직하게 말해봐라."

"사실 큰 돌은 정확히 제자리에 두었는데 작은 돌은 어딘지 몰라서 대강 두고 왔습니다."


"현기야, 어리석은 사람은 자신의 자잘한 잘못들을 보지 못하다가
아주 큰 잘못을 저지른 후에야 자신의 잘못을 본단다.
그런데 그때는 이미 늦어서 돌이킬 수 없는 경우가 더 많아."


순간 멈칫했던 녀석의 모습이 떠오른다.


어릴 때부터 자동차만 보면 꽂혔던 현기는 결국 아버지를 설득해서 특성화고 자동차과에 진학했다. 평소 성실하지 못한 탓에 장거리 통학이나 생활면에서 잘 해낼지, 졸업은 할 수 있을지 염려가 되어 재학 중 자격증 취득 및 졸업 후 몇 년 안에 자동차 공업사를 운영하게 되면 평생 VIP 고객으로 모시겠다는 밑도 끝도 없는 각서를 받아 두었었다.


절반의 성공이랄까. 현기는 재학 중에 자동차 관련 자격증을 모두 취득하고 대학은... 호텔조리과에 진학했다. 현기의 손에는 '평생 VIP 고객권' 대신 직접 구운 빵과 쿠키가 들려 있었다. 그간 얘기를 들어보니 대형 교통사고로 몇 달간 힘든 시기를 보냈고 그 와중에도 부모님께 손 한번 내밀지 않고 등록금, 재료비 등 일체를 스스로 해결했다고 한다. 곧 있을 한식 조리사 시험도 준비 중이라며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조리과에 진학을 했지만, 자동차 정비에 대한 미련은 남아 있다고 하였다. 그러면서도 지금은 새롭게 도전하는 일에 집중하고 싶다고 말했다.


참 알 수 없는 게 인생이고 사람이라더니 현기는 그동안 고된 시간 속에서 한 인간으로서 알차게 여물어 가고 있었다. 다음번에는 더 맛난 빵을 만들어 오겠다며 돌아서는 뒷모습이 그렇게 듬직할 수 없었다. 사실 나를 찾아오는 아이들은 대부분 학창 시절 소위 말하는 잘 나가는 아이들이 아니다. 대체로 이러저러한 일들로 아이들과 좌충우돌하거나 소외되어 상처가 많고 외로운 아이들이었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이렇게 어엿한 어른으로 성장하거나 그 길을 잘 견디며 걸어가고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의 아이들만 성장한 것이 아니라 그들을 통해 나 또한 성장했다. 산과 바다를 늘 가까이서 바라보며 자란 아이들의 가슴에는 싱그러운 순수가 감춰져 있었지만 언제든 마음을 열면 풋풋하고 맑은 향기가 났다. 그 시절 나는 그 아이들을 통해 내 안의 순수를 찾았고 그로 인해 행복했었다. 이제야 비로소 내 이야기가 아이들의 가슴에 스며든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이야기가 내 가슴에 스며들었던 것임을 알겠다. 그래서 내가 안덕을 잊지 못하고 있는 것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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