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시간과 공간의 공통분모를 가지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존재이다. 그러나 무의미한 일상이 반복되다 보면 우리를 잠시 들뜨게 하는 특별함을 꿈꾼다. 그래서 일탈의 일환으로 결혼을 선택하기도 하고 여행을 선택하기도 하는 등 낯선 경험의 세계를 찾아 나선다. 나는 특별하다는 것이 단순히 평범하지 않은 독특한 날이라고 단정 짓고 싶지 않다. 특별함이란 의미 있는 시간과 공간이 결합하여 삶의 큰 변화를 이루는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에게도 삶의 큰 변화를 이루는 계기가 된 아주 특별한 날이 있다. 그날을 설명하자면 수년 전으로 거슬러 가야 한다.
몇 년 전, 나의 일상은 엉망진창이었다. 평소 완벽주의 성향이 있어서 예민하고 긴장을 많이 하는 데다가 스트레스가 생기면 혼자 끌어안고 참는 성격인지라 결국 몸에 이상 신호가 나타났다. 자궁근종 수술을 한 이후로 병이 끊이지 않았고 어느 날은 이러다가 죽을 수도 있겠다 싶을 정도의 극심한 어지럼증과 구토 증세가 찾아왔다. 뇌 CT 촬영을 해보니 다행히 뇌에는 이상 소견이 없었고 여기저기 병원에 다닌 결과 이석증이었다. 그 이후부터 현실을 받아들이고 나의 건강부터 챙기자는 생각을 하였다. 그래서 주변 요가원을 알아보다가 지금의 요가원을 다니게 되었다. 주변에서는 나처럼 한 곳에 오랫동안 정착하여 요가를 배우는 사람이 흔치 않다고 했다. 그러나 거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우연히 찾아든 요가원에서 나는 인생 최고의 인연을 만났다. 요가 선생님은 의외로 나이가 지긋하신 남자분이셨다. 기존의 요가와는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도 남달랐지만 항상 수업 중간에 삶의 교훈이 될 만한 말씀을 전해주셨다. 요가를 가르치셨지만, 불가와 도가 사상에 정통하셨고 요가는 단순히 운동이 아닌 삶의 철학과 연관된 실천 사상이라는 것을 늘 강조하셨다. 시간이 흐를수록 복잡했던 내 마음도 안정을 되찾아서 선생님의 말씀을 통해 지난날의 어리석었던 나를 돌아보고 앞으로의 삶의 방향을 찾는 시간으로 차츰 채워졌다.
어느해 봄, 우연히 선생님과 차를 마실 기회가 있었다. 그간의 가르침에 큰 영향을 받아 스승님으로 모시고 싶다는 말씀을 드렸지만, 사람에 대한 실망이 너무 커서 이제 제자는 더 받지 않는다며 정중히 거절하셨다. 그리고 모든 것은 ‘시절 인연’이라 하셨다. 그러던 차에 며칠 지나 선생님으로부터 장문의 문자가 왔다.
“아직은 허물이 많은 사람이지만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이어가는 인연으로 맺어가는 것이 결례되는 것은 아닐까요? 정중한 마음으로 손을 내밀어봅니다.”
내 인생의 반전은 사제의 연을 맺은 그 날부터 시작되었다. 그날 이후로 스승님과 반년 정도 편지를 주고받으며 스승님의 가르침을 전수받았다. 스승님을 통해 자연을 대하는 태도, 삶의 중요한 가치인 정성의 실천과 회광반조(回光反照)의 삶 등 무수한 가르침들을 하나둘 배워나가면서 나는 조금씩 성장하기 시작했다.
스승님께서는 특히 자연의 이치를 많이 역설하셨고 인간의 최종 목적지요 삶의 스승은 자연이니 자연 속에서 홀로 자신을 살피는 시간을 많이 가지라고 하셨다. 그래서 집에서 가까운 수목원을 걸으며 자연에 한발 다가서서 그 소리에 귀 기울이는 시간을 많이 가졌다. 하늘, 바다, 바람, 구름, 나무, 나비, 꽃, 달, 별, 해... 늘 말이 없는 자연 속을 걸으며 인간의 존재가 얼마나 미미하며 이 자연은 얼마나 많은 것을 말없이 품어주는지, 결국 세상에 오염된 인간이 돌아갈 곳은 자연밖에 없음을 깨달아갔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스승님 페북에 댓글을 쓰기 위해 시작한 글쓰기가 이제 삶의 일부가 된 것이다. 회원 가입 후 자연스럽게 내 공간에 자연과 일상의 소박한 감성이 일어날 때마다 글을 적었는데 이 또한 전체 공개를 하지 않은 이유는 사람들이 드나드는 번잡스러움도 싫었지만 글쓰기를 통해 스승님의 가르침을 받고 싶어서였다. 여전히 졸작이지만 글을 통해 삶을 정화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또한, 스승님의 글을 보며 진정한 글은 글쓴이의 삶의 연륜과 진실한 마음이 여실히 드러난다는 가르침을 제대로 받고 있다.
최근 인연이 다하여 요가원을 떠나시기 전까지 스승님께서는 ‘자신의 몸이 붓이 되어 자유자재한 삶을 창조하라’는 말씀을 하셨다. 비록 가까이에 계시지 않더라도 스승님의 가르침을 가슴에 새기며 삶이 실천 수행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하루하루를 정성으로 사람을 대하고 나 자신을 대하는 시간을 보내려고 한다.
사제의 연은 희유한 인연이라 일만(一萬) 겁의 인연이라 한다. 가장 힘들었던 시기에 한 줄기 빛처럼 다가와 내 인생의 정도(正道)를 이끌어주시는 스승님과 함께 할 수 있음에 무한한 기쁨을 느낀다. 가끔 스스로 역부족임을 느끼는 한계에 부딪힐 때 스승님께서 말씀하신 ‘금여획(今女畵)’을 떠올린다. 그리고 넓은 바다를 ‘앞날의 강 선생님 모습’이라 말씀해주셨던 것을 잊지 않는다. 그 말이 곧 내가 가야 할 길을 말씀하신 것임을 잘 안다. 내 인생 최고의 날인 그날의 의미를 늘 가슴에 품고 새로운 나로 거듭 살아갈 것을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