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는
누구에게라는 호칭도 없이
때로는 누구인지도 모를 막연한 이에게
내 마음 술술 풀어놓고 싶습니다
바람 소리 거치른 계절의 뒤편으로
힘없이 나뒹구는 낙엽에게서
한 방울의 눈물을 보이고
저녁노을 아스라이 붉게 지는
빈 하늘녘만 봐도
왈칵 쏟아지는 그리움, 그리움...
나는 그토록 하고 싶은 말 대신에
그대의 모습 아련히 피어올려
눈빛으로, 가슴으로
그대의 숨결을 적실 편지를 쓰렵니다
누구라도 좋을 가을밤에
누구라 할 것 없는 그리운 이에게
고이 편지를 씁니다
하늘, 바다, 구름, 바람, 별, 달, 숲, 가을...
꿈, 사랑, 책, 가슴이 속살대는 소리,
같은 시선으로 그리는
삶의 그 모든 것들에 대하여..
법정 스님께서는 50세를 지나서부터는 누구를 위해서가 아닌 나 자신을 위해서 진짜로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하셨다. 내 삶을 되돌아보더라도 스님 표현처럼 세상과 맞서 싸운 시절을 다 흘려보내고 최근 들어서 가장 나 자신에게 충실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듯하다.
또한 스님께서는 안팎으로 가장 한적할 때, 그리고 받아볼 사람이 정답게 다가설 때 한해서만 손수 붓글씨로 편지를 쓰셨다고 하셨다. 나와 남이 다름을 인정하며 조화를 이루는 삶을 살면서도 가끔은 한쪽으로 기울어진 초승달에 기대어 같은 시선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이와 속 깊은 대화를 나누고 싶을 때가 있다.
'가을밤愛', '시월愛'라 읊기만 하여도 입 안에 그리움이 맴도는 지금, 홀로 있으니 누구에게라는 호칭도 없는 그 누군가에게 속살대는 편지를 쓴다.
김민기의 가을 편지를 들으면서...
# 가을 편지 / 2020. 10. 21. punggye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