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린 날의 바다가 좋다. 미친 듯이 파도치는 겨울 바다는 더 좋다. 그 이유를 깊게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그냥 자석처럼 끌린다. 흔히 세파를 파도에 비유하여 굴곡진 삶이 연상되기도 하겠지만 그럼에도 두렵다기보다는 가장 자유로워 보인다. 그래서인지 이런 날과 마주하면 나를 주체할 수 없다. 심장이 이끄는 대로 달려가 그 앞에 서면 살아있다는 생생한 체험을 하게 된다.
용두암 해안도로에서 바라본 바다-'비행기 날다'
오늘은 파도가 격노하듯 몹시 거칠고 투박하다. 집어삼킬 듯 호령하는 소리와 단숨에 달려드는 모양새는 한편으로 패기가 넘쳐 보인다. 바람의 속도와 세기에 따라 파도의 형상이 결정되겠지만 거칠수록 위협적이고 도발적이다. 그러면서도 거침이 없으니 음흉스럽지 않다.
용두암 해안도로에서 바라본 바다-'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어디서 오는 줄을 모르고 어디로 가는 줄도 모르면서 거친 파도 앞에만 서면 설렌다. 미천한 나를 자꾸 자신의 세상으로 끌어들이는 파도의 심중은 무엇일까? 파도의 거침없는 춤사위에 나의 심장이 요동치는 이유를 파도는 알고 있으리라. 어쩌면 나의 근원이 저 심해深海의 파도 어디쯤에서부터 비롯되었음을 나 또한 직감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