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는 젖은 낙엽처럼 딱 붙어있어

어느 날은 문득 원망스럽고 보통은 감사한 일상

by 문인선




인선아,

회사에는 젖은 낙엽처럼 딱 붙어있어.
누가 엉덩이까지 쫓아와서 내쫓기 전까지 딱 그렇게 붙어있어.


재작년 가을쯤 전화기 너머 동진 오빠가 그렇게 말했었다.
비 오는 날의 시멘트 바닥에 척 하고 달라붙은 젖은 낙엽을 떠올리며
나는 참 적절한 비유라고 큰 소리로 웃었다.


그리고는 요즘처럼 겨울을 맞이하는 가을의 빗속에서 굴러 떨어져 바닥에 척 하고 붙어있는 내 엉덩이만한 단풍잎을 보면서 생각한다.
저렇게, 저렇게 붙어있으라고.

버티듯이 회사를 다니기 시작한 지, 얼마나 되었을까.
작년부터 유난히 자주 지치기 시작했으니까, 아무래도 2년쯤 된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보다가
지금보다 회사는 나를 더 지치게 한 적이 몇 번 더 있었지, 하고 생각한다.

오늘이, 요즘이 제일 힘든 것 같지만
지난 9년의 시간을 가만히 떠올려보면, 지금보다 더 지옥같은 시간들은 많았다.
사람이 없어 힘들었고, 사람이 괴롭혀서 힘들었고, 업무의 보람이 없어 힘들었다.
같이 일하는 사람이 좋아서 견디며 지냈고, 나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어 버텨냈다. 힘든 요인보다 견뎌야 하는 이유가 더 커서 버티고 지나가는 시간들이었다.

회사.
지치고 힘들다고 하지만, 이 방패 덕분에 나는 얼마나 안위하게 지내고 있는가.
매월 25일이면 충분하게 꽂히는 이 월급 때문에 나는 얼마나 편안하고 나태하게 지내고 있는가.
회사가 부쩍 힘들어서, 일이 많아져서, 그래서 내 모든 에너지가 다 갉아 먹혔다는 핑계로
내가 독서를 멈추고, 생각을 멈추고, 느끼는 것을 쓰는 일을 멈추고, 그림을 그리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나는 얼마나 자주 멈추고 있는가.
이 충분히 안정적인 일상 때문에.

어느 날은 문득 원망스럽고
보통은 감사한 이 일상.

결국은 나태해지는 나 때문에 좀 더 불만인 일상.
조금만 더 치열해지고 싶다. 조금만 더 부지런하게
생각하고 쓰고 그리며 살고 싶다.

다짐하고, 또 게을러지고, 또 다짐하고 반복하며 지내는 일상.

2018년 11월, 또
오랜만에 그림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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