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선이에게
진선아,
오늘 퇴근길,
사무실에선 퇴근 음악으로 버스커버스커의
벚꽃엔딩이 나왔어.
전주가 시작하자 마자 기분이 너무 좋아지는 거 있지.
네이버에 벚꽃엔딩을 검색해보니 2012년 3월에 음악이 나왔더라.
내가 2010년 회사에 들어오고,
너가 2011년에 입사하고부터
늘 네가
회사에서도, 회사 밖 낮과 밤의 시간에도
부지런히 나와 함께 해주었으니까
2012년 3월이면
우리가 한창 붙어 다니며
막걸리를 마시거나,
쌀쌀한 봄 바람을 맞으며 테라스에 앉아 맥주를 마시면서
올림픽공원 돗자리 소풍 계획을 세우고 있을 때였나봐.
그때 생각이 나면서
기분이 또 한참 좋아졌어.
늘 연애를 하고 있던 너와
늘 연애를 빌빌거리던 내가
매일 술을 먹었지.
주말 휴일이 없이, 퇴근을 하면 아홉시 열시가 되어
학교 친구들도 못보고
재산처럼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 친구들이,
대학의 인맥들이
거의 사라져갈 때
늘 네가 나와 술을 마셔 주었지.
퇴근을 하고,
야근을 하고,
연차에도 만나서.
2012년 3월이면 어쩜 우리가
출근길 아침 버스 안에서
갑자기 유럽 여행 계획을 세우던 시기인지도 모르겠다.
언니, 유럽가자
그래, 좋아.
하고는 니가 바로 티켓을 끊었으니까.
6인실 바르셀로나의 혼숙 도미토리부터
파리의 삐그덕 거리던 2층 철제 침대,
깨끗한 체코의 호텔과 머무는 내내 달고 다닌 맥주까지.
숙소가 아무럼 어떻냐고.
너와 걷다가 바람을 맞다가 다시 또 취하곤 하던
그 나라의 기후들이 떠올라 또 한번 기분이 좋았어.
회사생활이 한참 복잡해지던 무렵에 우리는
올림픽공원 돗자리에 앉아서
여수 밤바다를 듣다가,
그 주 주말에
여수 여행을 떠났던 것 같아.
택시기사 아저씨가 소개해준 식당에서
장어탕이랑 장어구이를 먹고는
소주에 잔뜩 취해서
문 닫은 생선공장이 있는 부둣가를 한참 걸었던 것 같지.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역시나 엉덩이를 씰룩 거리며 걸었겠지.
여수 밤바다를 부르며
그때의 너와 나는 각자 누구를 떠올렸을까.
우리는 그때 참 할 이야기가 많았어.
전해야 할 마음도 많았고,
하고 싶은 것들도 너무 많았지.
서른으로 넘어가는 마지막 겨울이 다가올 무렵
막걸리 집에서
또 빌빌거리던 내 연애 이야기를 듣던 니가
핸드폰 전화번호부를 한참 보더니,
소개해준 사람을 만나
지지부진한 바보같은 연애생활을 청산하고
잘 사랑하고, 잘 결혼하고, 잘 살고 있는 동안
너가 자주 서운해 했는데,
그 마음을 영 못 챙겼네,
내가 남자에 빠져서 영 진선이를 못 챙겼네,
하는 반성을
늘 조금씩만 하다가
오늘 문득 왕창 했어.
2011년부터 니가 있어서
내 회사생활이 참
외롭지가 않고
든든했지.
내 편이 항상 있어서
내가 든든했지.
당장 내 곁에 있는 니 덕분에
내가 정말 많이 웃고, 또 시원하게 화내면서
더 크고 당당해졌지.
고마운 진선.
오늘도 아기와 함께 잘 있니.
늘 내게 언니 같은 니가
나보다 먼저 아이를 낳고 먼저 엄마가 된 것이
어쩜 훨씬 더 자연스러운것 같아.
항상 행복해, 진선아.
오늘 문득 참 보고 싶어
여기에 이렇게 편지를 쓴다.
너와
너의 그 날, 또 나의 그 날이
오늘 문득 그리워 이렇게 여기에
편지를 쓴다.
2019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