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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가네! 아가 배야!"

아이와 고민이 함께 자란다

by 미지의 세계

얼마 전 한 지인 집에서 밥을 먹었다. 지인은 우리 부부와 글쓰기 모임을 했던 인연으로 현재는 첫째와 같은 또래의 아이를 한 명 키우고 있다. 음식이 차려지고 지인의 아이가 먼저 자리에 와서 밥을 먹는데 19개월인 우리 둘째가 옆에서 뭐라고 소리쳤다. 자세히 들어보니 이런 말이었다.


"아가 의자야! 비켜! 왜~ 앉아~!"


하나뿐인 아기 의자에는 세 아이 중 나이가 가장 어린 둘째가 앉았었는데 이번엔 의자의 원래 주인이 있었던 것이다. 누가 듣든 말든 뭐라고 구시렁거리며 계속 소리치는 아이. 귀엽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해서 차분히 설명해 주었다.


"이건 네 의자가 아니야. 원래 언니 의자인데 너한테 양보해 준 거지. 엄마한테 앉을래?"


가로로 격하게 고갯짓 한다.


"그럼 네가 직접 언니한테 '언니, 혹시 여기 내가 앉아도 될까?' 물어봐."


아이는 일단 의자가 본인 의자가 아니라는 것만 알아들은 것 같았다.


"아가 거가 아니야?"


그 사이 지인은 자신의 딸에게 '동생에게 이 의자를 양보해 주면 어떻겠느냐'라고 물었다. 다행히 아이의 허락이 떨어졌다. 둘째는 의자에 앉고 나서도 한번 더 확인 차 물었다.


"이거, 아가, 의자지?"

"아니. 아니야."


상황을 명확히 이해해 보려는 아이의 노력이 가상해서 나도 성심 성의껏 계속 아니라고 답해주었다. 남편은 중간에 "그래, 지금은 맞아. 네 의자야."라며 이 반복되는 대화를 끊고 싶어 했지만 말이다. 둘째는 세상에서 자기가 가장 믿고 있는 두 사람의 상반된 의견을 들으며 조금 헷갈리는 듯 보였다. 엄마가 시키는 대로 고맙다는 인사를 한 뒤에도 종종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실 둘째는 요즘 말로 우리를 자주 웃긴다. 하루는 배가 모기에 물려왔길래 약을 발라주려고 윗 옷을 걷었더니 그걸 휙 낚아채 내리며 앙칼지게 소리쳤다.


"방가네!(그만해)! 아가 배야! 아가가 싫어해!"


발음도 정확하지 않은 아기가 똑 부러지게 자기 의사표현을 한다. 풋 웃음이 터진 틈을 타 뽀르르 도망가는 녀석. 쫓아갈까 했다가 그냥 내버려 뒀다. 자기 의견이 관철되는 경험을 시켜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물론 아이가 잠들었을 때 살짝 약은 발라줬지만.


이처럼 아이들이 클수록 웃음도 많아지지만 양육자의 고민도 복잡하게 커진다. 어디까지 아이의 뜻을 존중해줘야 할지 모르겠어서다. 일단 아이들이 뚜렷한 주관으로 본인의 세상을 넓혀가면 좋겠다. 근데 또 사회에도 잘 적응했으면 싶다. 이 마음을 모아 양육의 큰 틀을 잡지만 일상에서 소소한 사안들에 부딪히다 보면 자꾸만 경계를 세부 조정하게 된다. 스스로의 한계를 직면하면서 말이다.



하루는 남편이 무슨 일이 있어서 아이들이 다 잠들고 난 후 늦게 귀가하게 되었다. 우리는 원래 부부가 아이들 한 명씩 맡아서 옆에 눕히고 각자 재운다. 그런데 이번에도 그럴 경우 아이들의 숙면에 방해가 될 것 같았다. 해서 그날은 내가 두 아이를 한 방에서 모두 재우기로 했다. 그런데 그날 따라 첫째가 유독 잠에 들지 못했다.


"안 졸려요. 엄마."

"눈 감아. 눈 감고 누워있어."


내가 먼저 설핏 잠들었을까, 갑자기 첫째가 한 마디 했다.


"엄마. 아빠 왔나 봐."


그새 시간이 흘러 남편이 귀가했다. 아이는 남편의 모든 동선을 귀로 쫒기 시작했다. 아빠 씻나 봐, 아빠 보고 싶어.... 결국 아이 손을 잡고 남편이 누워있던 방으로 갔다. 그리고 아이의 베개를 남편 옆에 던지듯 놓고 내 방으로 돌아와 버렸다. "애기가 아빠랑 같이 자고 싶대." 하고.


그런데 잠시 후 아이의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내용은 잘 들리지 않지만 뭔가 서럽고 억울한 목소리, 이어서 울음이 터진다. 갑자기 잠이 깨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만 3살도 안 된 아이가 잠을 못 이루다 아빠가 움직이는 걸 좇았을 뿐이다. 그걸 이해 못 하고 짜증 내다니. 얼른 일어나 다시 남편과 아이가 있는 방으로 갔다. 아이를 안았다.


"ㅇㅇ는 밖에 소리가 나니까 아빠 보고 싶었구나. 자는 건 엄마 옆에서 자고 싶었고. 서운했지?"


응, 응... 아이는 엄마가 와 준 게 좋은지 눈물을 가득 머금은 채로 웃으며 답했다. 아이를 데리고 와서 내 옆자리에 다시 눕혔다. 아이는 내게 힘껏 파고들고는 언제 울었냐는 듯 잠들었다. 불면의 시간에는 나만 남게 되었다. 죄책감과 미안한 마음이 자꾸 밀려왔다.



아이를 잘 키운다는 게 도대체 뭘까. 자기 생각이 생기고, 표현도 하는 이 아이들에게 나는 어떤 길을 알려줘야 하는지 모르겠다. 몰라서 질문만 한다. 아이들은 어른의 거울이라는데, 정말 좋은 피사체가 되어주고 싶은데.... 근데 그 조차도 나 자신이 흐릿해질 때가 많으니.


티끌 없는 거울 앞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는 걸 느낄 때마다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운다. 그저 거울이 본래 모습대로 빛나도록 자주 닦고, 거기 비친 내 모습을 점검해 나가는 것만으로도 잘하는 것일까 싶다. 귀여운 아이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가도 늘 자아성찰로 마무리 짓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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