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부터 하겠다. '400만 원으로 결혼'했다는 건 절반만 맞는 말이다. 웨딩홀 관련 비용, 그러니까 홀 대관과 양가 어머님들의 메이크업 비용, 사진 촬영, 하객 식사 대접 등 각종 서비스를 맡기고 신랑, 신부의 예복을 빌리는 값으로 400만 원 조금 넘는 돈을 지출했다. 결국 좀 더 정확한 표현은 '400만 원으로 결혼식 하기'인 셈이다. 결혼, 은 아니고.
신혼집을 마련하고, 혼수를 마련해 넣고 하는 것들을 다 포함하면 보통은 결혼식에 들어가는 비용에서 0이 하나 더 붙은 청구서를 받게 된다. 그럼에도 나와 남편은 주변 부부들이 결혼에 쏟는 돈에 절반 정도만 지출하고 하나가 됐다. 결혼식도 했고, 오래됐지만 아담한 아파트에서 신혼 생활 중이다. 무조건 생략하고 절약하지 않았다. 수많은 대화와 협의를 통해 이뤘다. '어떤 대화'와 '어떤 협의'를 했다는 건지, 앞으로 그 노하우를 조금씩 공개해보려 한다.
우리의 스펙
우리는 5년 넘게 만났다. 대화가 잘 통했다. 그러나 결혼은 현실이었다. 각자 인생관이 정말 잘 맞는지, 서로의 반려자가 되어도 좋겠는지 생각해야 했다. 어디서 신혼살림을 시작할 건지, 각자의 직업이나 수입이 적어도 스스로는 건사할 정도가 되는지 알아야만 했다. 대부분은 돈과 관련된 미션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각자의 경제력에 대해 객관적으로 돌아보기로 했다.
신부인 나는 30대에 갓 접어든 지역 방송국 뉴스 리포터였다.(과거형인 이유는 결혼 준비를 하면서 이직했기 때문이다.) 당시 월급은 190~250만 원 사이였고 모아둔 돈은 자취집 전세금 1천7백만 원가량이 있었다. 그 외 재산은 아버지 명의의 작은 경차. 부모님은 수십 년째 자영업자로 일하고 계신데, 굳이 부모님께 손 벌리면서까지 결혼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결과적으로는 부모님께 1천만 원가량을 추가로 도움받기는 했지만, 처음 다짐은 최대한 부모님께 손 벌리지 않는 결혼을 하고자 했다.
신랑은 30대 중반의 지역 공무원이다. 검소한 사람이라 저축을 착실히 해왔고, 역시 공무원 출신의 부모님으로부터 전세자금 명목으로 받은 1억 정도가 있었다. 그는 주식 등의 투자를 통해 여유 자금도 모으고 있었다. 그의 예산 1억+a 정도면 작고 오래된 아파트라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지역에서 시작하는 메리트를 확실히 챙기고 싶었다. 내 돈으로는 혼수를 채우자, 가장 싸게 사려면 어떻게 할까, 하면서 나름 계획도 세웠다.
그러나 계획은 바로 깨졌다. 남편이 서로의 예산을 확인하는 자리에서 선언해버린 것이다.
"난 내 돈을 결혼식과 집에 털어 넣고 싶지 않아. 대주주의 선언에 나의 계획은 무기력하게 틀어졌다. 시작부터 돈 없는 설움이라니..! 나는 '우리 관계를 위해 쓰는 돈이 아까우냐'며 서운해했다. 대 전쟁의 시작이었다.
결혼관의 차이 확인:
돈 쓰고 싶은 부문과
그렇지 않은 부문 정하기
평소 연인은 결혼식을 허례허식이라 불렀다. 1시간 남짓 하는 행사에 너무 많은 돈이 든다는 거였다. 하여 나에게도 '그냥 동네 국밥집을 빌려하면 어떻겠느냐'는 이야길 농담 삼아 건네곤 했다. (물론 들은 체도 안 했다.) 일방적인 농담은 결혼 이야기가 구체화되면서 더 자주 들리기 시작했다. 그는 혼인신고만 하자, 또는 국밥집에서 결혼을 하자 는 이야기를 하며 날 괴롭혔다. 아니, 그놈의 국밥집 결혼은 도대체 어디서 보고 들은 것인지.
남편이 아파트 살이에 회의적이었던 것도 우리 결합의 방해 요소였다. 일단 우리 돈으로는 새 아파트는 (그게 설령 지역이라도) 언감생심이었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20년 넘은 헌 아파트를 사고 싶지는 않다는 게 그의 의견이었다. 그럼 '전세로 살면 되지 않느냐'라고 했더니, 10만 원 전후의 관리비도 내고 싶지 않다고 했다. 풀옵션의 빌라로 들어가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거실이 있는 집에서 살고 싶었기 때문에 협상이 어려웠다. 대부분의 빌라에는 거실이 없으며, 거실이 있는 곳은 거의 오래된 아파트 전셋값과 맞먹는 금액이 필요했던 것이다.
결혼식, 신혼집 등 돈 얘길 하다 보니 결국 각자가 투자하고 싶은 부문이 다르다는 걸 알게 됐다. 그래서 우린 일단 서로가 '결혼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지'부터 이야기 하자했다.
남편은 '할 수만 있다면 연애만 하고 싶은' 자유주의자였고, 나는 가정을 이루는 것에 엄청난 의미부여를 하고 있었다. 내게 있어 결혼은 인생 2막, 새로움 그 자체였다.반면 남편에게 결혼은 연애 관계의 연장선이었다. 그 차이는 별 것 없어 보이지만 사실 꽤 컸다. 이후 식을 준비할 때마다 나는 의미부여를 충분히 하는 방식으로, 그는 돈과 시간을 크게 들이지 않아도 되는 방식으로 계획을 세우곤 했던 것이다.
간극을 좁히는 데에는 여러 차례의 고성과 침묵이 오갔다. 그리고 결국 우린 나름대로 큰 명제에 겨우 합의할 수 있었다.
간소하되 의미를 살릴 수 있는, 꼭 필요한 결혼식을 하자
대명제를 바탕으로 결혼식의 큰 그림을 그린 뒤, 우리는 양가 부모님께 결혼하겠다고 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