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속 있는 결혼식은 구체적인 상상으로부터

실속 있는 결혼식은 구체적인 상상으로부터

by 미지의 세계

우리가 들르기로 한 웨딩홀은 지역에서도 크기로 손꼽히는 곳이었다. 당연히 가격도 우리 예산과는 맞지 않 거였다. 그러나 기분 전환 겸, 예식장 분위기도 볼 겸 해서 가본 곳이니 발걸음은 나름 가벼웠다. 안내데스크에 우리 이름을 말하니 곧 '실장님'으로 불리는 분이 작은 방으로 안내했다.


"커피 좀 드릴까요?"


"네" "아니요"

평소 '공짜는 없다'는 생각 남편과,

그저 목이 말랐던 나는 대답이 엇갈렸다.


"두 잔 가져다 드릴게요. 숨 돌리시는 동안 저희 홍보 영상 한번 보세요."


실장님이 나가면서 불을 껐고, 곧 웅장한 소리와 함께 아름다운 공간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우리 이거 안 본다고 하자. 솔직히 그냥 둘러보러 온 거잖아."


남편과 내가 툭탁대는 사이 영상이 끝났고, 실장님이 우리를 밖으로 안내했다.


"영상으로 보시는 거랑 또 달라요. 웨딩홀 한번 구경해보시겠어요?"


당연히 예쁘겠죠, 하며 대충 둘러보는 남편 옆에서 나는 잠시 넋이 나갔다. 높은 천장과 화려한 조명, 꽃 장식들이 확실히 아름다웠다. 실 나는 우리가 장남, 장녀의 결혼임을 의식하고 있었다. 양가의 첫 결혼식데. 그래도 좋은 곳에 초대를 해야 부모님 마음도 한결 편해질 거라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가족들 생각은 차치하더라도, 식사 공간까지 마음에 들어서 어느새 여기서 결혼을 잘 끝낸 내 모습을 상상하기에 이르렀다. 여기 너무 좋다고, 남편 옆구리를 쿡 찔렀다.


예식장을 돌고 다시 상담실로 돌아온 우리는 이내 A4용지 몇 장을 받았다. 견적서였다. 살펴보니 역시나, 최종 가격, 0천만 원. 리의 예산 3백만 원과는 큰 차이가 있었다. 남편은 가격을 보자마자 벌떡 일어났다.


"너무 좋은데, 저희 예산엔 맞지 않네요. 죄송합니다. 구경 잘했습니다."


얼떨결에 나도 남편을 따라 일어섰고, 실장님 표정도 당혹한 빛이 역력했다. 남편은 주차장을 걸으며 나를 달랬다. 건 우리가 생각한 결혼이 아니지 않냐, 소박한 곳에서 의미 있게 만들어보자.... 가족들만 모이기엔 웨딩홀도 너무 크다고 말했다. 속은 상했지만, 좀 더 둘러보기로 하고 차에 시동을 걸었다.


사람이 간절하면 가끔 기적이 나타나기도 하는 걸까. 막 주차장을 나서려던 찰나, 갑자기 예식장에서 전화가 왔다. 아까 그 실장님이었다. 어디시냐고, 얼마를 생각하고 오셨느냐고, 한번 맞춰보자는 거였다. 나는 남편에게 '사실 나도 너무 마음에 들어서 다른 곳은 눈에 잘 차지 않을 것 같다'며, 최대한 이야기를 해보자고 했다. 차를 돌려 실장님과 다시 마주 앉은 순간, 이제는 묘한 긴장감이 돌았다.

"그렇게 나가시는 분이 처음이라, 저 너무 당황했잖아요. 우리 신랑, 신부님이 얼마 생각하고 오셨는지 한번 들어보지도 못했는데요."


"저희는 가족들만 모시고 결혼식을 하려고 하거든요. 래서 인원도 적어요."


"아, 그건 맞춰드릴 수 있으니까요."


"4백만 원요."


3백만 원이 넘는 결혼식은 절대 안 할 거라고 하더니. 내가 마음에 들어하는 것을 보고 백만 원이나 올려 부른 남편이 순간 너무 사랑스러워 보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줄곧 미소 짓던 실장님 다시 표정이 굳었다 풀렸다.


"4백만 원... (깊은 한숨 후) 그래요. 한 번 맞춰 봅시다!"



견적서는 웨딩홀 안에서 결혼식의 모든 걸 다 할 수 있도록 설계돼 있었다. 우리가 플래너를 끼지 않는다고 하니 예복 대여부터 모든 걸 웨딩홀과 한다는 전제 하에 견적서를 가져온 것 같았다. 견적서는 품목마다 가격대가 쓰여 있었는데, 우리는 이걸 생략하거나 하지 않는 것으로 가격 조정을 해나가기로 했다.


참고로 이렇게 품목별로 나눠 조정을 할 수 있는 이유는 이전부터 각자가 원하는 결혼에 대해 이야기를 충분히 나눴기 때문이다. 우리는 연애 시절부터 '얼굴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공장식으로 결혼식을 하는 게 끔찍하다'고 말하곤 했다. 특히 남편은 '당사자만 덜덜 떨고 정신없는 와중에, 사람들은 밥을 먹으러 가버리는 결혼식' 왜 필요하냐고도 말했다.


그럼에도 나는 결혼'식'을 꼭 하고 싶었으므로, '결혼 당사자와 하객들이 함께 할 수 있는, 의미 있는 결혼식'이 가능하단 걸 보여야만 했다. 설득의 과정은 꽤 지난했다. 결국 '너와 결혼식을 할 수 있다면, 나는 많은 부분들을 포기하겠다'라고 선언하며 그를 달랬다. 수많은 낮과 밤으로 만든 우리의 협상은 래와 같다.



1. 신랑, 신부가 직접 결혼식을 진행한다.

가족끼리만 하는 결혼식,

다들 귀한 손님으로 대접하자.


2. 주례 대신 아버지들의 덕담을 듣자

혼주들을 소외시키지 않으면서, 의미를 살리


3. 가족들이 참여할 수 있는 이벤트를 만들자

귀한 주말, 모두가 행복한 시간이 됐으 좋겠다.



이런 내용을 바탕으로 남편은 사회자 섭외는 물론 앨범 제작, 신 신부 메이크업, 신부 헬퍼 필요없다고 말했다. 편은 메이크업을 받지 않겠다고 해서 굳이 더 이상 강요하지 않았고, 나는 이크업을 원래 받던 곳이 있으니 식장에서 받는 것보다 더 저렴하게, 잘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또 부모님께 드릴 앨범 이야 사진만 촬영해주시면 보정만 따로 해주는 곳에 맡길 수도 있니까. 이런 부분은 '웨딩홀 사람'인 실장님도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기에, 계약은 순조롭게 이어졌다,


하지만 헬퍼 스텝을 빼겠다는 데서 실장님은 '정말이냐'는 표정으로 나를 봤다. 부의 상징, 드레스를 입을 거라면서 헬퍼가 없다니. 남편은 우리가 함께 진행할 것이라며, 드레스도 끌리지 않는 옷을 입을 거라고 말했다. 실장님은 아예 나를 보며 계속 말을 이어갔고, 나는 두 눈을 질끈 감은 채 말했다.


"사회를 저희가 직접 보려면 드레스가 간결한 게 맞아요. 그러니 헬퍼도 필요 없을 것 같아요. 헬퍼가 해주시는 일들은 남편이 하겠다고 했으니,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단 해 볼게요."


그렇게 최종적으로는 보증인원 50명을 기준으로 400만 원으로 맞춘 우리의 결혼 견적서가 나왔다.


"웨딩홀과 협상하다니, 우린 참 운이 좋았던 것 같아."


다시 주차장을 나서며 남편에게 말하자, 그가 답했다.


"여기도 손해 안 보니까 그렇게 한 거겠지. 코로나 시국이니 앞으로 이렇게 소규모 웨딩도 많을 거고."


그리고 덧붙였다

"아, 좀 더 협상해 볼 걸."


.....


앉은 자리에 풀도 안 날 것 같은 그와 가족이 되는 길, 이제 함께 살 집을 구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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