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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지의 세계 Jun 14. 2022

무한한 이해가 무관심한 오해보다 낫다

일터에서 생긴 일

 나는 과학해설사다. 나들이 겸 유익한 시간을 보내러 과학관에 온 사람들을 맞이한다. 관람객은 대부분 어린이와 보호자들로 구성돼있는데, 특히 어린이들은 호기심도 많고, 신체 활동량도 많아서 조금만 눈을 돌리면 바로 다치거나 전시물을 고장 낸다. 이런 일들을 미리 막고, 쾌적한 전시 관람을 돕는 게 나의 일이다.


커다란 과학관 내부를 종종거리며 돌아다니면 만 보 이상 걷는 일은 다반사다. 몸이 피곤해지면 신경이 조금 곤두서기도 하지만, 새로운 걸 배우는 이들의 반짝이는 눈빛이 좋아서 다시 힘을 낸다. 그날도 잠시 숨을 돌리며 전시장 구석에 서서 쉬고 있었는데, 근처에 전시물을 마구 흔들고 있는 어린이가 눈에 띄었다. 얼른 옆에 다가가 말을 걸었다.

 

“우리 친구, 이거 이렇게 하면 고장 나요. 자, 이쪽으로 와서 해볼까요?”

 

보통 이런 말에 어린이 관람객들은 두 가지 반응을 보인다. 우선 ‘네’ 대답하고 잘 체험하는 관람객. 이들은 의젓하게 행동할 뿐 아니라 주변 친구들에게 올바른 체험법도 설명해준다. 한 번만 관심을 주면 보조 해설사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하는 관람객이다. 반면 낯을 가려서 설명 중간에 도망가 버리는 관람객도 있다. 대부분의 어린이들이 이 유형인데, 설명을 조금 듣다가 “안 할래.” 하고 휭 떠난다. 아, 그때 머쓱함이란. 나도 어쩔 수 없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물러난다.

 

이번 관람객은 그러나, 어떤 반응도 하지 않고 빤히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자신이 하던 일, 그러니까 엉망으로 관람하는 일을 계속했다. 결국 전시물을 못 움직이게 잡고, 이러면 안 된다고 조금 강하게 이야기했다. 주변에 있는 남자 어른이 한참을 보고 있길래 ‘보호자께서 안 된다고 말해달라’는 의미로 다시 이런저런 이야길 건넸다. 그랬더니 그는 “그러게요. 얘 엄마가 어디 갔을까?” 하며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그는 보호자가 아니라 그냥 호기심 많은 관람객이었던 것이다. 당혹스러움과 무안한 감정이 일었다. 그리고 조금씩 화가 났다.

 

‘보호자는 어디서 뭐 하는 거야...’ 다음 행동을 고민하며 아이를 잡으려 했는데 그제야 어디선가 여자 관람객이 나타났다. 그리고 어린이를 휙 안고는 말없이 총총 옆으로 가버렸다. 관람객이 떠난 자리에서 해설사가 무슨 말을 하겠는가. 그저 남아있는 불쾌한 감정을 계속 곱씹을 뿐이었다. 그는 그동안 어디서 뭘 하(면서 아이가 엉망으로 관람해도 신경도 안 쓰)다가 이제야 와서는 그대로 가 버렸나. 삐죽 못된 생각이 났다. 이제 저 어린이가 전시물을 고장 내든 말든, 혹은 말을 안 들어서 넘어지거나 해도 상관없었다.


그러나 정말로 아이가 다른 관람객과 부딪혀 엉엉 울어버렸을 땐 혼자 뜨끔한 마음이 들었다. 괜히 나 때문에 다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아이가 무척 서럽게 울었기 때문에 전시관 내 사람들이 전부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보호자는 우는 어린이와 함께 아예 전시장을 나갔고, 그렇게 그 아이에 대한 생각도 잊혔다.

 


아니, 그런 줄 알았다.

 

그 가족은 과학관이 문을 닫아야 하는 시간에도 계속 남아있었다. ‘끝까지 안내를 따르지 않는군’ 혼자 한숨을 쉬며 다가가 폐관 안내를 했는데, 이번엔 잠깐 웃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돌아서서 수화를 썼다. 자신들이 이해한 정보를 공유하는 것 같았다.


그들의 손짓을 보면서 순간 아무 말 없이 가버린 보호자와, 빤히 나만 쳐다보던 아이가 생각났다. 말도 안 듣고, 친절하지도 않았던 그들의 모습이 빠르게 되감기 됐다. 들리지 않는 사람들에게 나의 말은 가 닿지 않았을 것이다. 안내를 따르지 않았던 게 아니라 그럴 수 없었을 것이다. 할 수 있는데 안 한 것과 아예 할 수 없는 것은 다르다. 속사정을 몰랐긴 하지만 그렇더라도, 안내를 따르지 않았으니 이제 그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못된 생각을 한 게 부끄러웠다.

 

약간의 죄책감과 온갖 생각을 떨치고 싶어서 전시장을 나서는 가족들에게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하며 크게 인사를 했다. 물론 그건 의례적인 인사일 뿐 다시 그 가족들이 온대도 알아보지도 못할 것이다. 너무 많은 얼굴을 만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적어도 이제는 사람들을 오해하지 않으려 노력하고 싶어졌다. 그게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잘 지내고 싶어 하는 이가 할 수 있는 최선인 것 같았다. 사람들을 향한 무한한 이해가 무관심한 오해보다는 낫다. 상대에게나, 나에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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