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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지의 세계 Sep 02. 2022

아버지의 자장가

  우리 남매는 어렸을 적 한 방에서 잤다. 그땐 둘 다 저녁의 어두움을 무서워하는 나이였으므로 방이 분리되지 않아도 괜찮았다. 아버지는 우리를 재우기 위해 가끔 자장가를 불러주었는데, 대체로 하나의 노래만을 불렀다. ‘작은 새’라는, 83년도에 나온 어니언스 노래였다.


 고요한 밤하늘에, 작은 구름 하나가,
바람결에 흐르다, 머무는 그곳에는, 길 잃은 새 한 마리, 집을 찾는다.
세상은 밝아오고, 달마저 기우는데, 수만리 먼 하늘을, 날아가려나-


 아버지의 열창에도 불구하고 쉬이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가사가 너무 슬프기 때문이었다. 아니 어쩌다 이 작은 새는 길을 잃었을까. 아이일까, 어른일까. 새벽까지 헤맸던 걸까. 뭐 이런 생각으로 나도 어둠 속을 헤맸다.


  아버지도 언제까지고 노래를 부를 수는 없으므로, 나는 자는 척 눈을 감은 적도 많았다. 아버지가 안방으로 가면 어둡고 조용한 새벽 내내 작은 새 이야기를 생각했다. 새가 결국 자기 집을 찾았길, 그래서 행복해졌길 바랐다. 하지만 슬픔이 완전히 해소되지는 못했다. 그래서 하루는 다른 노래를 신청했다. 작은 새는 잠이 안 온다고 했다. 그랬더니 아버지는 잠시 고민하다가 이런 노래를 불렀다.


 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기는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자장가는 왜 슬픈가. 이 질문은 다음날 아침 눈을 뜨면 금세 잊혔다. 그리고 자장가를 듣지 않는 나이가 되면서 완전히 잊어버렸다. 그런데 최근 아이를 품게 되면서 문득 다시 의문이 들었다. 배에 있는 이 생명이 세상에 나오면 이젠 내가 불러야 할 노래였기 때문이다.


 찾아보니 자장가라고 해서 꼭 슬픈 가사의 노래만 있는 건 아닌 것 같았다. 단순 반복의 가사도 있었고, 부모에게 효와 예의를 다하라는 식의 교훈적인 내용도 있었다. 조용히 잠들지 않으면 누가 잡아간다는 무서운 이야기도 있다. 서정적이고 단조로운 음이 핵심이었다. 그런 음에 가사를 붙이는 건 부르는 이의 마음이었다. 그러니까 자장가는 일종의 수면 교육이었던 셈이다.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기획한 수면 교육.


 듣는 사람에게는 자장가가 어떤 효과가 있었을까 싶다. 잠을 못 이루어 자장가가 필요했던 시점을 더듬어봤다. 어렸을 땐 종종 무릎이 쑤셔 잠을 못 잤다. 어머니는 그걸 성장통이라고 했다. 뼈가 자라느라 그렇다고. 사춘기 때는 좋아하는 애를 생각하느라 밤늦게까지 키득키득 웃다가 못 잤던 기억도 있다. 수능을 치른 날 밤은 무언가 서러웠다. 두 번이나 시험을 봤는데 그럼에도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첫 출근 전날 밤도, 긴장감에 눈을 감지 못했다. 아파서, 들떠서, 서러워서, 긴장돼서... 뒤척거리기만 했던 기억들이 스쳤다.


 이런 시간들은 돌아보면 성장의 시간이었던 것 같다. 아무도 자장가를 불러주지 않는 밤, 생각이 오래 이어지다가 결국 조금 달라진 얼굴로 새벽 해를 봤기 때문이다. 성장통은 점차 희미해졌고, 난  조금 더 높은 시선에서 세상을 봤다. 풋사랑의 들뜸이 잠잠해지고 평온한 애정 관계를 이어갔다. 시험을 망친 서러움을 발판 삼아 다음 역경에 의연하게 대처했고, 첫 출근의 긴장감도 익숙해졌다. 결국은 자장가 없이도 잘 자게 된 것이다. 옆에서 자장가를 불러주고 지켜주던 부모의 품에서 한 걸음씩 멀어지면서.




 곤히 잠든 남자애와 가사가 슬퍼 잠이 안 온다는 여자애. 어린 남매를 바라보며 조용히 웃던 아버지. 아이가 잠들 때마다 조금씩 슬픔과, 응원과, 사랑을 가르치던 어떤 어른을 생각해본다. 칭얼대는 아이들도 어느 날인가부터는 자장가를 듣지 않게 될 것이다. 대신 뜬 눈으로 밤 새우는 시기를 지날 것이다. 결국 무뎌질 것이다. 그리고 품 안에서 벗어나 이제는 자기가 낳은 아이들에게 다시 자장가를 부르기 시작할 것이다. 그 과정을 지켜만 보는 그 마음은, 자장가를 직접 부르기 시작해서야 조금이나마 헤아릴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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