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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지의 세계 Jul 24. 2022

한 여름밤, 서늘했던 15분

망했다! 최근에 저지른 가장 큰 실수 이야기하기

 남편은 뭔가 신이 난 표정이었다. 평소보다 퇴근이 늦다 싶었는데, 집에 오자마자 가방을 던져두고는 서둘러 옷을 갈아입었다. 어디 가? 오늘부터 강아지 산책을 시켜줄 거야! 방금 계약서도 쓰고 오는 길이야! 남편이 종이를 꺼내 내게 건넸다.


 흥분한 그를 잡아두고 차분히 들어본 사연은 이랬다. 도그 워커라고 이웃들의 강아지를 산책시켜주는 아르바이트가 있다. 해외에선 활발한데 국내에선 좀 생소한 개념이다. 그 일을 하고 싶어서 직접 공고를 올렸단다. 그런데 몇 년 만에 처음으로 연락이 왔다. 30대 부부였다. 얼마 전 가게를 열었는데 일이 바빠져 강아지를 산책시켜줄 수 없었단다. 마침 남편이 올려둔 공고를 보고 연락했다는 것이다. 얼마나 급했으면 전문 자격증도 없는 남편에게 강아지를 맡길까 싶었다. 그러나 ‘집에서만 힘 없이 앉아있는 아이를 보는 게 괴로운’ 반려견 가정들을 알고 있기에 그 마음을 짐작 못할 것도 아니었다.


 자신만만한 그와 달리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어떤 생명체와 시간을 보내는 일이었다. 반려 동물들은 대체로 불편한 존재와 있는 걸 인내하지 않는다. 주인이 아니면 외면해버리는 반려 동물을 너무나 많이 알고 있었다. 그런데 고작 몇 년 전에 강아지를 좀 키워봤고, 강아지를 좋아하기만 하는 남편이 낯선 생명체와 나란히 잘 걸을 수 있을까. 결국 그의 첫 산책길에 따라나섰다. 불안한 마음을 직면하면 좀 나을 것 같았다.



 강아지는 귀여웠다. 검정 점박이 리듬감 있게 배치된 아이였다. ‘믹스견’이라고, 강아지를 소개하는 주인의 말투가 다정했다. 어디선가 본 대로 강아지에게 손을 내밀었다. 강아지는 손 냄새를 킁킁 맡더니 자기 머리를 들이댔다. 오, 첫인사 좋고. 이어서 그는 바로 배를 뒤집어 보였다. 다행히 우리를 좋아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내 몹쓸 상상이 구체적인 현실로 일어났다. 10분 즈음 나란히 걷던 강아지가 갑자기 자기 목줄을 풀어버린 것이다. 우리가 자동차를 피하라고, 하수구 구멍은 뛰어 건너라고 요구했기 때문이다. 그 말을 따르기엔 강아지가 이미 겁을 먹고 있었고, 무엇보다 우리와 친하지도 않았다.


 아찔한 추격전이 시작됐다. 강아지는 쫓을수록 더 멀리 달아났고, 안으려고 하면 도망갔다. 결국 적당한 거리를 두며 그의 집 쪽으로 몰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남편은 그 사이 견주에게 전화를 걸었다. 목줄이 풀렸고 다시 돌아가고 있으니 밖에 나와 달라는 이야기였다. 그 사이 강아지는 옆의 공터로 빠져 자유를 만끽하고 있었다.


 망했다! 좌절하던 찰나 강아지에게도 위기가 찾아왔다. 공터의 주인으로 보이는 길고양이가 나타난 것이다. 고양이는 등과 꼬리를 잔뜩 세운 채 강아지에게 다가섰다. 해맑게 꼬리 치는 강아지를, 고양이가 콱 무는 시늉을 했다. 안 돼! 실제로 내고 싶었던 외침의 절반 정도만을 입 밖으로 냈다. 두 동물을 자극하지 않으면서도 둘 사이를 떨어뜨릴만한 목소리와 몸짓이길 바랐다. 다행히 우리의 노력은 유효했다. 강아지는 다시 여정을 떠났고, 우리도 그를 따라 빠르게 걸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 강아지가 자기 주인과 집 위치를 정확히 알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출발 지점으로 돌아왔을 때 강아지는 이미 도착해 꼬리를 흔들며 앉아 있었다. 주인은 어리둥절하고 반가운 표정이었다. 남편은 방금 일어난 일에 대해 간략히 이야기했다.


 신뢰를 잃었을 법도 했는데, 견주는 내일 다시 와달라고 부탁했다. 강아지가 행복하길 바라는 견주는, 여전히 산책을 시킬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던 것이다. 아이가 이전에도 목줄을 마음대로 풀어버린 적이 있다며, 목줄 대신 하네스를 시켜뒀는데 그러면 좀 더 안정감 있게 산책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했다. 일단 알겠다곤 했지만 집에 오는 길 내내 아찔했던 시간을 떠올렸다. 산책길을 차 없는 곳으로 선정했으면 괜찮았을까? 우리가 그 강아지와 신뢰를 좀 더 쌓았더라면 어땠을까? 만약 강아지가 다치거나 길을 잃었다면? 수없이 많은 물음표에 눌려 피곤해졌다.



 결국 남편은 강아지와의 산책을 포기하기로 했다. 생각한 것보다 더 많은 책임감과 노력이 필요해서다. 견주에게는 회사 업무가 바빠질 시기라며 양해를 구했다. 잠시 서늘했던 한 여름밤이 지나자, 우리는 이전과 좀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표정이 차분해졌다고 할까. 그건 단순히 여름밤의 습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다른 생명체와 함께 하는 것에 좀 더 신중해지기로 한 다짐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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