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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지의 세계 Jul 16. 2022

평화로운 순간을 구성하는 존재들

돗자리를 펴고 누워 한 생각

 돗자리를 펴고 누웠다. 나무 그늘 아래다. 마침 살랑,하고 실바람이 분다. 시원한 음료를 마시며 책을 펼친다. 집에서 싸온 간식거리도 먹는다. 그렇게 누워서 하늘을 보다가 설핏 잠이 든다. 꽤 오랫동안 바라온 휴식의 모습, 그러나 곧 자리를 걷어내야 할 것이다. 돗자리 위는 대부분 금방 더워지거나 추워지기 때문이다. 자연은 인간의 의지와 무관하게 변한다. 인간이 쾌적함을 느끼든 말든 바람은 불고 해가 내리쬔다. 갑자기 스콜 같은 소나기가 내릴 수도 있다. 스콜이라니. 열대 지방에서 내리는 소나기를 지금 여기, 한국에서 떠올리는 순간 자연스럽게 한 단어가 생각난다. 기후 위기.


 그러나 나는 사실 기후 위기에 대해 덧붙일 말이 거의 없다. 딱히 위기에 대비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갑자기 날이 더워지거나 추워지거나 비, 눈이 많이 내리면 그제야 허겁지겁 하늘에 대고 기도나 할 뿐이다. 지구님, 잘못했어요. 편하다는 이유로 플라스틱을 조금 썼어요. 자동차도 편해서 자주 이용했어요. 그래도 다회용 컵이랑 용기를 꼬박 꼬박 이용하고 불필요한 건 안 사려고 노력했어요. 이번 한 번만 봐주시면 안 될까요.


 애초에 친환경적으로 살아간다면 이렇게 벼락치기 기도를 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변명을 하자면 할 수 있다. 약간의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다회용품을 쓰는데도 바뀌는 게 없다. 그리고 개인이 노력하는 것 보다, 기업과 정부가 앞장서 움직이는 게 기후위기에 더 효과적이라는 기사도 본다. 무력감이 덮친다. 환경을 생각하는 건 불편함을 감수하려는 노력에다가 내적인 무력감도 이겨야 하는 일이다. 얼마나 어려운지. 무력감이 심해지면 카페 테이크아웃 잔도 훨씬 쉽게 받게 된다. 그렇게 환경이 내 삶에서 아주 먼 이야기가 되어버린다.


 그러다 나완 다르게, 그래도 모여서 뭔가 하는 개인을 보면 또 아차 싶다. 같이 해변 쓰레기를 줍고, 리사이클링 물품을 만들고, 조금이나마 환경 보호에 일조하는 사람들이 있다. 연예인처럼 사회적 영향력이 있는 개인은 좀 더 눈에 띄는 변화를 일으킨다. 기업과 협력해서 친환경 제품을 만들고, 환경 보호 프로젝트를 하는 식이다. 노력도 하고 무력감도 이기는, 일명 행동하는 개인은 일단 멋져서 눈길이 간다. 그리고 깨닫게 된다. 전 지구적인 과제는 어쨌든 협업이고, 그걸 혼자 하려 하는 건 너무 욕심이라는 것. 그저 꾸준히 하는 것만으로도 어쨌든 도움은 된다는 것. 피드백 없는 협업 과제가 지친다면 지금처럼 ‘지구 지킴이’ 동료들의 성과를 보고 들으면 될 일인데 말이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여전히 자신은 없다. 머릿속에서 정리한 일을 실제 행동으로 이어가는 건 또 다른 일이기 때문이다. 자연을 위한다는데, 그 ‘자연’이 뭔지 눈에 보이면 좀 나을 것 같다. 뜬금없이 얼마 전 뉴스에서 만난 너구리가 생각났다. 대략 내용은 이렇다. 서울 도심에 있는 어느 하천에 너구리 가족이 출몰한다. 그런데 얘네는 산책하는 강아지를 공격한다. 뿐만 아니라 근처에 있는 길고양이 밥도 마음대로 뺏어먹는다. 근처를 다니는 사람들 입장에선 불안하다. 애초에 방송사에 제보도 그런 방향으로 갔을 것이다. 공격적인 너구리가 도심에 출몰한다고.


 그런데 기자는 이 너구리가 문제라고 지적하지 않는다. 너구리의 입장, 자기들이 보금자리로 삼은 하천에 침입자가 들어오는 격이라 예민해질 수 있다는 내용,을 전달한다. 끝에는 같이 상생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고민하자고 말한다. 그제야 리포트 안에 등장한 시민들(인간), 길고양이, 강아지, 너구리 등이 함께 살 수 있는 존재로 인식된다. 조금 더 나아가면 너구리의 살 권리까지 고민해야 할 것 같다. 어쨌든 그 하천은 모두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환경을 지키는 건 결국 옆의 존재를 깨닫는 것부터 시작하는 게 아닐까. 돌고 돌아온 사유의 끝은 다시 내 주변이다. 돗자리를 펴고 누웠을 때 보이는 하늘, 나무, 잔디, 개미, 그리고 가족. 저 멀리 산책 나온 반려 동물과 아이들, 사람들. 평화로운 순간은 이 시간과 장면을 구성하는 존재들이 있어 가능하다. 그리고 이 존재들은 모두 자연에 의지하며 산다. ... 큰 개념의 생각을 하다 보니 조금 더워져서 돗자리를 걷는다. 자리에서 나온 쓰레기들을 분리해 챙겨들었다. 매번 나들이 나올 때마다 하는 일, 그래도 이번엔 마음이 조금 새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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