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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박 Dec 17. 2016

8. 디펜스 직전의 위기들

11월 15일 박사학위 심사를 준비하기까지의 위기



11월 1일 날 인쇄된 학위논문을 심사위원님들께 드리고, 발표 준비에 매진하고 있을 때였다.


11월 5일 학과에서 30주년 행사가 있어서 주말에도 학교에서 행사에 참가하였다. 오랜만에 친구들과 선배들을 만나고 담소를 나누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하지만 이제 마무리하고 집으로 향하기 직전에 사고가 발생했다. 잠시 다른 연구실에 볼일이 있어 문을 열었는데, 그 연구실 교수님이 기르는 개가 갑자기 튀어나와서 내 손을 물었다. 오른손 손바닥을 물었다. 뭔가 쑥 들어오는 느낌이 들었는데, 정신 차리고 보니 오른손에서 피가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림 8-1). 응급처치를 하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생각보다 통증이 심해져서 응급실로 향했다.


그림 8-1. 개한테 물린 오른손. 송곳니에 폭 찍혀서 구멍이 나 있다.


상처가 깊게 파여서 꿰맬 수 없는 상처라고 했다. 파상풍, 항생제 주사를 맞고 응급실을 나왔다. 엄지손가락에 힘이 잘 들어가지 않아서, 스페이스를 치기가 힘들었다. 지난번 새끼손가락에 이어 오른손에 많은 무리가 왔다. 교수님께 이야기하여서 사과도 받고 진료비도 전액 지원받는 것으로 사건은 마무리됐다. 사실 많이 놀라긴 했지만, 이런 일에 너무 신경을 쓰면 디펜스를 잘 치를 수 없을 것 같지 않아서 최대한 괜찮은 척 넘어가려 해던 것 같다.


오른손을 붕대로 둘둘 감고 발표 준비를 하던 중 또 하나의 슬픈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예정되어있던 선배의 디펜스가 취소되었다는 것이다. 너무나 놀랐다. 이렇게 직전에 와서 취소시킬 수도 있겠구나 하는 위기감과 함께, 선배의 절망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소식을 전해 듣는 내가 너무 슬퍼졌다. 그와 동시에 나도 끝까지 방심하지 말고 잘 진행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발표 당일에 가까워지니 항상 늦잠을 자던 내가 아침 일찍 눈이 번쩍 띄어졌다. '내가 지금 자고 있어도 되나? 뭐 더 준비할 게 없나?'라는 생각이 들며 새벽 5시에 눈이 번쩍 떠졌다. 잠을 더 자려고 해도 신경이 너무 예민해져 있어서 그런지 다시 잠이 들기가 힘들었다. 올해부터는  다과를 준비하지 말라는 학교 전체 공지가 왔다. 김영란 법 때문이다. 심사를 받는 학생이 다과를 제공하는 것이 하나의 금품을 주는 것과 같다고 취급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발표자의 입장에서는 다과를 준비하지 않는 게 더 불편했다. 그래도 따뜻한 커피랑 다과를 마시면 교수님들의 크리틱이 조금 더 부드러워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김영란법을 적용받는 첫 디펜스여서 다과를 준비하지 않는 것에 교수님들이 익숙하시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법을 어길 수는 없기 때문에 물과 종이컵만 준비를 했다.


발표 하루 전, 미리 가서 발표장 세팅을 완료해두었다. 발표를 하는 중 심사위원 중 한 분에게 전화가 왔다. 내가 만든 프로토타입을 발표장에 가져다 두면 좋을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처음 들었을 때에는 발표장에서 데모를 보여주시길 원하시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덜컥 겁이 났다. 프로토타입이 작동은 되긴 하지만, 혹시나 잘 되지 않을 경우가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고민 끝에 다시 교수님에게 연락드려서 어떻게 설치하시는 걸 원하시는지를 자세히 여쭤 보았다. 심사위원 교수님께서는 "프로토타입을 고생해서 만들었는데, 눈앞에 만든 게 보이면 더 좋은 평가를 해주시지 않겠니? 데모가 되지 않아도 그냥 가져다 놓으면 좋을 것 같다."라고 답변해 주셨다. 설치하는 게 아니라 가져다 두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일단 발표장으로 가져다 두었다. 막상 가져다 놓으니 프로토타입의 설치가 가능할 것 같아서 처음 한 걱정과는 다르게 프로토타입 데모를 할 수 있게 세팅을 하였다(그림 8-2).


그림 8-2. 발표장 정경. 프로토타입이 발표장에 설치되어 있다.


그런데 프로토타입 데모 중 한 가지 기능이 잘 동작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급히 개발자에게 연락을 하였다. 그런데 이전에는 잘 되던 부분이라 소프트웨어적인 문제가 아닌 하드웨어적인 문제로 보인다고 답변했다. 지금 어떻게 고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이 문제가 내일 데모 때에 보여서 잘 작동되지 않으면 어떡하나 걱정이 되었다. 개발자는 최대한 그 기능을 보여주지 않는 쪽으로 데모를 진행하라고 충고해주었다. 그 충고를 받아들이면서 데모 시나리오를 구상했고, 디펜스 때 에도 최대한 데모에 오류가 나지 않기를 기도했다.




그림 8-3. 박사 학위논문 심사 발표 안내문


이제 거의 모든 준비를 마쳤다. 이제 내일 하루 발표만 지나면, 7년간의 긴 여정을 끝날 수도 있을 것이다. 훨씬 더 떨릴 줄 알았는데, 막상 발표 직전이 되니 그냥 무덤덤하다. 너무 긴장하면 내가 잘 마무리하지 못할 것 같아서 스스로 방어기제가 동작하고 있는 것 같다. 내면에서 떠오르는 감정을 눌러두고, 내가 준비한 것들을 100% 보여줄 수 있도록 노력을 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끝까지 모르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다 준비했으니 이제 후회는 없다. 내일 같은 시간에는 어떤 기분일지 궁금해하면서 오지 않는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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