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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박 Jan 14. 2017

10. 디펜스 통과

드디어... 박사과정이 끝났다.

(9. 디펜스 시작에 이어서)

밖으로 나오면서 다른 학생들도 나와 함께 발표장을 나왔다. 같은 연구실의 '썸머'누나가 발표하면서 있었던 주요 질의응답들을 모두 정리해주었다. 정말 고마웠다. 4 페이지에 걸친 필기들을 나에게 사진으로 찍어가라고 알려주었다.(그림 10-1) "발표도 잘했고, 대답도 되게 잘했어!" 발표를 하는 나는 전혀 감이 없었는데, 이렇게 이야기 해준 누나가 너무 고마웠다. 

 그림. 10-1 썸머누나가 적어준 발표코멘트 


잠시 동안 나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발표장 맞은편에 있는 휴게실에 앉아서 잠시 내가 했던 발표들을 되짚어보았다. 어느 정도 답변을 하긴 했지만 불안한 부분들도 있었다. 그렇다고 디펜스를 떨어뜨릴 정도는 아닌 것 같고, 최악의 경우에는 부족한 부분을 보강해서 몇 주 뒤에 다시 발표하라는 정도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제발 그러길 바랬다. 다시 발표를 한다고 하더라도 그것보다 더 잘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내가 준비한 모든 것들을 보여줬고, 실수가 있긴 했지만, 내가 미리 예상할 수 없었던 부분이었기 때문에 발표를 더 잘하기 어려웠다고 생각되었다. 발표에 대한 후회가 전혀 없었고 어떠 결과가 나오던지 내 모든 것을 다 했으므로 겸허히 결과를 받아들이겠다고 다짐하고 있었다.


그러던 도중 발표장의 문이 열렸다. 지도교수님이 잠깐 나오셔서 결과가 나왔다며 안으로 들어오라고 손짓하셨다. 나는 다시 내가 발표를 했던 발표대로 올라서서 심사위원 교수님들을 마주했다. 가벼운 목례를 하고, 지도교수님께서 심사 총평을 말씀해주시기 시작하셨다.


"DIY스마트홈이라는 주제로 최근 이슈가 되는 주제를 연구했는데, 아직 관련 연구가 미흡하고, 연구의 포지셔닝이 부족하다는 교수님들의 의견의 많았지만 (...)"

'설마 진짜 떨어지는 거야? 진짜? 관련 연구 부분 때문에?? 그건 나중에 수정할 때도 보강할 수 있는 건데? 정말 저것 때문에 한 학기 더해야 하는 거야?'

"연구의 구성이 잘 짜여 있고, 결과물도 연구 커뮤니티에 좋은 컨트리뷰션을 할 것이라고 생각해서 디펜스 통과를 주시기로 했단다." 


지도교수님의 말씀이 끝나자마자 심사위원 교수님들이 모두 박수를 쳐 주셨다. 그리고 자리를 일어나시면서 돌아가시면서 나에게 악수를 해 주고 가셨다. 


"감사합니다 교수님, 감사합니다 교수님" 심사위원 교수님들께 한 분식 돌아가면서 악수를 하고 있을 때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지도교수님께서 오셔서 포옹을 해주시려고 했는데, 갑자기 나도 주체할 수 없는 북받침이 올라왔다. 교수님들 앞에서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엉엉 울기 시작했다. 그때 왜 그렇게 나도 모르게 북받쳐 올라왔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결코 넘지 못할 것 같은 벽을 넘었다는 성취감인지, 드디어 힘든 대학원 생활이 끝난다는 안도감인지, 그동안 힘들었던 이들에 대한 서러움인지.. 굉장히 복합적인 감정들이 들었던 것 같다. 


교수님들이 다 나가시고, 발표장을 정리했다. 노트북을 들고 밖으로 나가니 대학원 친구 두 명이 같이 점심을 먹자고 기다리고 있었다. 통과했다는 사실을 알리고 축하를 받았다. 문자로 부모님, 동생, 여자 친구에게 연락을 하고 한 명 한 명 전화를 걸었다. 어머니, 아버지, 동생, 할머니, 그리고 개발자 친구까지. 한 명 한 명 전화를 걸어 합격소식을 알릴 때마다 모두들 굉장히 축하해 줬다. 그리고 나는 기쁜 소식을 전하지만 전화를 걸 때마다 눈물이 나도 모르게 흐르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나보다 더 기뻐하시는 부모님의 목소리를 들었을 때는 눈물을 주체하기가 힘이 들었다. 


그림 10.2 척척박사 우박사님


전화를 하고 있을 때 , 여자 친구가 나의 합격을 축하한다고 만들어둔 네임텍을 선물해 주었다(그림 10-2). 합격을 할지 못할지 몰라서 만들었지만 몰래 가지고 있었다고 했다. '척척박사 우박사님'. 아직 우 박사라는 말이 익숙하지 않고, 내가 박사라고 불릴 만큼 성장했는지 나 스스로에 대해서 계속 자문해야겠지만 앞으로 조금 익숙해져야 할 나의 새로운 이름이었다. 


그림 10-3. 디펜스날의 단풍

디펜스는 무사히 통과했지만, 혹시 아직 일이 남았나, 일이 아직 덜 끝난 건 아닌가 하는 불안함은 계속 남아있었다. 그래도 조금 달라진 것은 주변 풍경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그림 10-3). 분명 매일 같은 자리를 지나다니면서 봤을 풍경인데, 그전까지는 내 눈에 들어오지 않아서 아름답다는 생각을 전혀 할 수가 없었다. 단풍이 굉장히 아름다웠고, 그 아름다운 풍경을 볼 여유가 생겼다. 


나는 디펜스를 통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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