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박 Dec 29. 2016

9. 디펜스 시작

고대하던 디펜스의 시작

디펜스 당일. 이 날도 새벽 5시에 눈이 번쩍 떠졌다. 혹시나 내가 빼먹은 것이 있는지, 지금 내가 이렇게 자고 있다가 혹시 디펜스가 끝난 다음 후회하지는 않을지? 걱정이 되었다. 다시 한번 발표자료를 살펴보았다. 스크립트도 몇 번씩 다시 읽어보면서 혹시나 빠진 말은 없는지 부족한 내용은 없는지 확인하였다. 여러번의 확인을 거쳐서 대부분의 준비가 완료된 것처럼 보였다. 이 이상 내가 준비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무언가 불안한 마음은 감출 수가 없었다. 샤워를 하면서, 5시간 정도 후의 나는 어떤 상태일지 궁금했다. 디펜스가 무사히 끝나고 기쁜 마음일지, 혹은 좌절해서 울고 있을지 알 수 없었다.  몇 시간 뒤가 그냥 빨리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준비해둔 옷을 입고, 학교로 향했다. 디펜스 시작시간은 10시였지만, 8시 30분 정도부터 학교에 도착해서 발표장을 점검하였다. 프로포절 때와 같이 발표장의 온도를 적당히 따뜻하게 만들고, 어제 설치한 데모가 잘 되는지 테스트하였다. 현재의 데모 시나리오에는 부족한 부분이 있는 것 같아 교수님들이 보고 싶어 할 것 같은 데모 시나리오들을 몇 개 추가로 구성했다. 


발표 준비가 끝나고도 시작시간까지 1시간 정도 여유가 있었다. 강의실에 혼자 앉아서 내가 세팅해둔 발표 자료와 데모들을 훑어보았다 (그림 9-1). 나의 7년 동안의 박사과정을 보여주는 최종 결과물이었다. 괜찮은 연구를 했다는 자부심과 함께 그래도 부족한 부분이 많다는 부끄러움이 번갈아가며 내 기분을 흔들었다. 지금 와서 부족한 부분들을 고민하는 것이 발표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완벽한 연구란 없다'라고 믿고 내가 잘 해낸 부분들에 집중해서 내 박사 연구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기로 하였다. 심사위원 교수님들이 하나 둘 식 자리에 착석하시고, 내 발표를 보기 위해 온 친구들, 선후배들도 자리를 채웠다. 약속한 발표시간이 되었다.


그림.9-1 발표 직전의 여유


"안녕하십니까. 석박사 과정 7년 차의 우종범입니다. 이른 아침부터 심사를 위해서 나와주신 모든 커미티 교수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지금부터 학위논문인 'Designing routine-driven DIY smart home' 발표를 시작하겠습니다." 

준비했던 대로 여유롭게 발표를 진행해나갔다(그림. 9-2). 여러 번 읽어봤던 스크립트라 연습했던 대로 발표를 이어나갈 수 있었다. 중간에 어떤 교수님이 돌발 질문을 하셔서 시간이 늘어질 뻔했지만, 잘 대처하고 다시 기존의 호흡을 찾아 발표를 재개했다. 30분간의 발표를 마치고, 교수님들의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그런데 첫 질문에 대한 답을 엉망으로 해 버리고 말았다. '가장 관련이 있는 논문이 어떤 것인지?' 질문하셔서 내가 생각하는 관련 연구들을 대답했는데, 그게 제출한 학위논문의 어느 페이지에 설명되어있는지를 물어보셨다. 2016년에 새롭게 발표된 논문이라서 related works 부분이 아닌 최근에 연구한 부분에 인용이 되어있었는데, 정확하게 그 위치를 알고 있지는 못했다. 급한 마음에 논문을 뒤적뒤적거렸지만 페이지를 찾이 못했다. "지금 바로 그 부분이 정확하게 어디 기술되어있는지는 잘 알지 못하겠지만, 어딘가에 기술이 되어있다"고 대답했다. 지금 생각해봐도 굉장히 무책임한 대답이었다. 


그림.9-2 디펜스 발표 시작


관련 연구에 대한 첫 번째 질문을 잘 방어하지 못해서 인지 그다음부터는 관련 연구에 관련된 질문들이 쏟아졌다. 심사위원 교수님들은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기술의 민주화나 메이커 운동이 충분히 관련 연구 분야인 것 같은데 많이 부각되어있지 않는 것 같다고 하셨다. 이 문제는 관련 연구들을 선별할 때 고민해 보았던 부분이라서 충분히 디펜스를 할 수 있었다. 내 학위논문 분야의 범위를 어느 정도로 보느냐에 따라서 관련 연구의 범위가 정해지는데, 조금만 범위를 넓히면 너무 많인 분야가 포함되어 버려서 지도교수님과 논의 하에 DIY 스마트 홈 사용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있는 부분만을 관련 연구 분야로 기술하기로 하였었다. 


DIY 스마트홈 연구 분야는 조금만 더 넓게 보자면 최근 유행하는 메이커 운동(Maker movement), 최종 사용자 개발(End-user development), 기술의 민주화 (Democrtizing technology)와도 관련이 있었는데, 기술의 민주화나 메이커 운동에 대한 연구는 어떻게 제품을 사용하는 사용자 경험의 관점이 아니라 새로운 문화를 이해하는 인류문화학적 관점으로 연구가 되었다. 메이커 문화의 특징은 무엇인지, 이 커뮤니티들이 구성되고 확산되는지를 중심으로 연구되고 있었다. 그렇게 때문에 내 학위논문에서 보려고 하는 사용자가 직접 자신의 스마트홈을 구축하는 사용자 경험을 관찰하는 부분과는 거리가 있었다. 이런 부분까지 포함시키면 학위논문의 포커스가 흐려질 수 있어서 DIY 스마트홈의 사용자 경험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스마트홈 연구들만 다루었었다. 위와 같이 대답을 하였고, 심사위원 교수님들은 그래도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분야이니 방금 했던 대답을 바탕으로 좀 더 연구의 포지셔닝을 잘 보여주면 좋겠다고 코멘트를 하셨다.


프로토타입과 준비한 데모를 보여줄 기회도 있었는데, 제작된 프로토타입을 보시곤 생각보다 엄청 사이즈가 큰 것을 만들었다고 칭찬을 해 주시는 교수님도 계셨다. 다행히 준비했던 데모들이 제대로 작동하여 (감사합니다. ㅠㅠ) 시스템이 안정적이라고 어필을 할 수 있었다. 이후 몇가지  질의응답들이 이루어지고 학생들은 모두 발표장 밖으로 나왔다. 교수님들끼리 회의를 하시면서 디펜스 당락을 결정하고, 나는 밖에서 교수님들의 회의 결과를 기다렸다. (다음 편에 계속)


이전 08화 8. 디펜스 직전의 위기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