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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덕후 희망자의 도시 집착- 2

다 같은 도시가 아니다. 신도시 키즈의 성수 생활

by 주흐 함 Feb 25. 2025

07/14

도시 덕후 희망자의 도시 집착 -2

다 같은 도시가 아니다 - 신도시 키즈의 성수 생활


나는 신도시 키즈다. 분당이 나의 고향이고 나는 분당 토박이이다. 그리고 나의 신도시는 삼십여년만에 나이가 들어버렸다.


신도시 중 1기 중 하나인 분당에서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의 학창 시절을 보냈다. 당시 막 지어진 도시의 도로도, 건물도 모두 반짝반짝 네모난 새것이었다. 다시 학생으로서 거닐었던 분당 내의 모습은 모두 비슷했고, 사람들의 나이도 가족 구성원도 사는 모습도 비슷해 보였다. 나의 세상은 모두 잘 정돈되어 반듯반듯했다. 나는 모든 세상이 대략 비슷한 줄 알았다. 그리고 분당도 늘 그 모습을 그대로일 줄 알았다.


사람으로 치면, 1980년 후반에 태어난 분당은 2025년 올해 약 서른 중후반에 이르렀다. 유치원생이었던 내가 사회인이 되고 서른 중후반이 된 만큼 분당도 나이가 들었고, 신도시에 살던 사람들도 또한 나이 들었다. 어느 날부터인가, 예전에 종종 친구를 만나던 백화점을 중심으로 한 역 주변에서는 잘 안 만나게 되었다. 어릴 적 구도심에 위치했던 전북의 할아버지 댁과 비슷한 점이 많아지는 듯했다. 나도 분당에서 친구 만날 때는 정자에서, 그리고 정자보다는 판교에서 약속을 잡게 되었다.


분당은 빠르게 고령화되고 있는 도시 중 하나이다. 분당, 일산, 평촌, 산본, 중동에 해당하는 1기 신도시는 1989년 즈음에 착공하여 1991년부터 입주민을 받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지금은 노후화로 인한 안전, 주차, 편의시설 문제 등등으로 골머리를 쌓고 있다. 사람도 건물도 다리도 도로도 수도관도 나이 든 분당은 나이 서른에 노후선고를 받았다. 학생 넘치던 학교 몇몇은 이제는 폐교를 마주하고 있다. 사람으로 치면 한창이라는 청년으로 여겨지는 나이 서른에 분당은 성숙해질 기회조차 없이 나이 들어버린 것이다. 도시 수명은 30년밖에 안 되는 것일까? 왜? 어떤 도시는 500년 1000년 되기도 하는데, 왜 나의 고향 분당은 고작 서른 중반이 벌써 나이가 들어버린 것일까? 오래토록 활기찬 도시의 젊음 유지 비결은 무엇일까? (물론, 신도시 분당도 좋은 점이 정말 많다. 하지만, 오늘은 글의 흐름 상 생략하고 다음에 다루겠다. )


한국으로 돌아오면서 어디에 집을 구할지 고민 중이었고 당시에 성수가 살기 좋다는 지인의 추천으로 그리고 여러 조건들이 잘 맞아 우리는 성수에 자리 잡았다. 서울의 배드 타운으로 만든 신도시에서 자란 내게 오래된 동네인 성수동의 모습은 여러모로 새로웠다. 그리고 나는 성수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렇다. 나는 이 글을 통해서 성수를 편애하고 예찬할 것이다. 그리고 젠트리피케이션 이야기는 여기서 하지 않겠다. 


성수동의 역사는 오래되었다. 그리고 오래된 시간이 중첩되어 있는 모습을 동네를 산책하며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인근에는 조선 시대 다리 중 현존하는 가장 긴 교량인 살곶이 다리부터, 60년대부터 생겨난 준공업단지, 한 때 왕성했던 수제화 단지, 이제는 없어졌진 경마장의 흔적과 이를 대신 하는 서울 숲, 그 옆에 위치한 정수장, 그리고 오래된 건물과 새로운 건물이 교차된 모습과 재래시장과 오랫동안 자리를 지키고 있는 공장 건물을 통해서 시간의 흐름을 볼 수 있었다. (내가 성수를 떠날 적에 많은 오래된 건물들이 새 건물로 대체되고 있어서 지금은 어떤지는 알 수가 없지만) 세월이 켜켜이 쌓여있는 성수의 모습은 반듯하기보다는 구불구불한 것에 더 가까웠다. 구석구석에 각기 다른 다양한 모습이 켜켜이 쌓이며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이 새로운 조합을 만들어냈다. 툭툭 튀어나오는 새로운 공간들이, 그리고 이를 만드는 사람들의 그리고 그들의 생각들과 해프닝의 조합들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조합들이 서로 영향을 주며 다 같이 각기 다른 속도로 변화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재래시장 한편에는 갤러리가 들어서고, 그 옆에는 작은 막걸리 양조장이 생겼다. 전시 후에는 갤러리 옆에 있는 고깃집에서 회식을 하였다. 마치 도시가 살아있는 것 같았다.


사실 역사와 맥락도 너무 다른 성수와 분당을 비교를 하기에는 적합하지는 않지만, 분당은 내가 자라는 동안 사람도 건물도 해프닝의 변화도 많지 않은 도시였다. 구지 변화로 치자면 나이 들어서 생기는 건물과 사람의 노후화가 주를 이루었다. 예를 들어 상점과 공원의 시설들이 노후화 맞게 바뀐다던가 하는 것들이 주를 이루었다. 왜 분당은 나이 드는 방향으로만 변화하는 것일까? 나이듬과 새로움이 조화를 이루면서 변화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성수가 분당과 눈에 띄게 달랐던 점 중 또 하나는 거주, 상업, 업무, 공업지구가 모두 혼재된 모습이었다. 특히나 공업지구로 지정된 곳은 서울에 많지 않은데 그러한 공업지구가 거주지역 옆에 자리 잡고 있다. 미용실 옆에 철제련하는 곳이 있고, 초등학교 뒤에 사무실 건물이 있다. 카페 옆에 구두제조용 가죽을 공급하는 곳과 인쇄소가 보인다. (한 때 서울에서 가장 낙후된 곳으로 여겨졌던 성수동이 현재의 모습을 하게 된 데에는 도시 재생 등 여러 노력이 있지만, 이는 여기서 다루지 않겠다.)


여러 용도가 혼재하다 보니, 동네가 밤낮, 주중 주말 모두 항상 활기차다. 이는 거주에 관련된 상업시설, 미용실, 음식점, 카페, 학원, 식료품점, 은행, 병원이 주를 이룬 분당과는 다른 모습이다, 출퇴근 시간을 제외하면 동네는 꽤나 한산하였다. 성수의 주중 낮에는 제조업, 인쇄업, 사무직, 등하교하는 학생들과 아이들을 챙기는 동네 거주민들이 길을 채운다. (나중에는 너무 북적북적해졌지만...). 저녁에는 저녁약속으로 여러 만남들, 가족들이 동시에 보인다. 주말에는 관광객과 놀러 온 사람들로 길이 차게 된다. 학교가 많아 속도 제한 지역인 동시에 유흥가도 없어 밤낮으로 걷기에도 좋다. 동네가 변화하는 모습과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에 질릴 새도 없었다.


뭐든 새것은 시간이 지나면 낡는다. 낡아서 도태될 수도 있지만 낡음이 멋스러움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도시의 어떤 것들은 성숙해지는 데에 시간이 필요하다. 도시가 나이가 들어 완전히 없애고 새로 만드는 것이 아닌 잘 쌓아 올려 켜켜이 성장시키고 성숙시킬 수는 없을까나?

 

분당과 성수의 생애주기는 대강 요런 차이점이지 않을까. (이 다이어그램은 정확하게 뒷받침 하는 증거 자료 없이 여기저기서 보고 읽은 것을 바탕으로 감으로 만들었음.) 분당과 성수의 생애주기는 대강 요런 차이점이지 않을까. (이 다이어그램은 정확하게 뒷받침 하는 증거 자료 없이 여기저기서 보고 읽은 것을 바탕으로 감으로 만들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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