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멘붕 발발
어제의 20,000보가 무리였는지 잠자리에 예민한 편인데도 깨지도 않고 푹 잤다. 아침 6시가 조금 넘은 시간, 닭 우는 소리에 깼다. 어딜 가도 닭은 비슷한 시간에 우는 건지 혼자 피식했다.
오늘 체크아웃을 한다. 호이안을 떠나는 것도 아쉽지만 이렇게 예쁜 리조트에서 온전히 휴양하며 하루를 보내지 못하는 게 너무 아쉬웠다. 수영장이 참 예뻤다. 평소 물을 무서워해서 수영을 배워본 적이 없는데도 뛰어들고 싶었다. 선베드에 아무것도 안 하고 누워있는 여유를 느끼고 싶었다. 결국 일어나자마자 수영할 채비를 하고 수영장으로 갔다.
아침 7시, 리조트 한가운데에 있는 수영장에 들어가 수영복을 입고 논다는 것은 내겐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즉 처음이었다. 물을 무서워한 내게 큰 도전이었던 것! 나아가 우리나라에서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느라 하지 못했던 것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실제로 하고 보니 무언가로부터의 해방감과 자유로움, 시원함이 느껴졌다. 그리고 실제로 해보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베트남은 아침에도 더워서 물도 미지근하니 수영하기에 딱 좋았다. 수영도 못해서 물속에서 첨벙거린 것이 전부였지만, 어린아이처럼 그 순간이 너무나 즐거워 인상 깊은 장면 중 하나이다. 이른 시간이라 혹시나 우리가 시끄럽게 느껴질까 조심스러웠지만, 괜한 걱정이었다. 이미 식사하는 사람도 많았고 우리가 수영하는 모습을 보고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나와 수영을 시작하는 사람도 있었다. 여행 와서까지 이렇게 부지런한 사람들의 모습에 조금 놀랐다.
한바탕 놀고 난 후 먹는 조식은 더욱 맛있었다. 이 맛있는 음식과 헤어지려니 너무 아쉬웠다. 아침마다 먹던 패션프루츠가 너무나 그리울 것 같았다. 식사하며 바라보는 리조트의 풍경에 감탄하며 아쉬움에 사진이라도 남겨야 했다. 리조트 내에는 포토스폿이 참 많았다. 짧은 시간 동안 열심히 찍었는데 정말 해맑은 표정이 그때의 기분을 오롯이 느끼게 해 준다.
즐겁게 산책까지 마치고 짐을 꾸렸다. 방에서 나오다 청소를 도와주는 직원과 마주쳐 한국에서 가져온 마스크팩을 선물로 주었다. 리조트 직원들이 늘 밝게 웃으며 인사해주는 것이 좋아 뭐라도 주고 싶었다.
체크아웃을 위해 리셉션으로 갔다. 룸서비스는 이용하지 않았고, 픽업-샌딩 서비스를 포함한 비용을 결제하였다. 그런데 여기에서 문제가 생겼다. PIN 번호를 입력하라고 해서 평소 비밀번호를 눌렀는데 결제가 되지 않았다. 잘못 눌렀나 싶어 재시도했는데, 이번에도 역시 오류가 났다. 한 번 더 시도해달라고 했더니 리셉션 직원은 이미 두 번이나 틀렸기 때문에 안 된다고 했다. 매일 사용하던 카드이고, 온라인으로 해외 결제도 했던 카드이기에 너무 당황했다. 일단 결제는 해야 하니 가지고 있던 현금으로 대신했다. 우리를 기다리던 차량에 타고 다낭의 숙소로 향했다.
아쉬움이 가득했던 마음이 당황스러움으로 바뀌어 너무나 혼란스러웠다. 일단 환전해 온 현금에서 예상에 없던 큰 금액이 빠져나가니 수중에 남은 돈이 얼마 되지 않았다. B에게는 결제 수단이 그 카드 한 장뿐이었고, 나 역시 B를 믿고 신용카드는 가져오지 않았다. 가져온 체크카드는 B와 같은 지점에서 발급받은 같은 카드였기 때문에 또 PIN 번호를 틀릴 수 있다는 걱정에 앞이 캄캄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수없이 걱정하던 그 상황에 우리에게 또 하나의 스트레스 요인이 있었다. 바로 운전기사였다.
처음에 탑승했을 때부터 우리에게 많은 질문을 했다. 언제 왔는지, 어디를 관광했는지, 맛집은 다녀왔는지, 다낭 가서는 어디를 관광할 것인지, 밥은 무얼 먹으러 갈 것인지 등 기초적인 질문을 하길래 그냥 그러려니 하고 대화를 나누었다. 그러다 이름이 무엇인지, 몇 살인지, 어디에서 왔는지, 박항서 감독을 아는지 등을 묻더니 본인은 몇 살이고, 아이가 몇 명 있다고 소개를 했고 어제 잠을 자지 못하여 지금 매우 피곤한 상태라고 했다. 그 말을 들으니 나는 점점 마음이 불안해졌다. 기본적으로 베트남 운전 스타일은 부드럽지 않다는 것을 호이안에서 많이 느낀 상태였는데 이 기사님 역시 안전거리도 짧게 유지하는 편이고 급브레이크를 밟는 스타일이었다. 그런 데다가 운전을 하는 사람이 자기는 잠을 못 자서 지금 너무 피곤하다고 하니 이건 믿고 타라는 것인지 의아하기까지 했다.
이미 결제 문제로 머리가 아팠고 해결책을 상의 중이었는데 말을 자르고 불필요한 질문을 끊임없이 하는 터라 짜증이 나던 상태였다. 거기다 운전까지 불안하다고 생각을 하니 갑자기 스트레스가 심해졌다. 그런 와중에 결정타는 우리에게 점심은 뭘 먹을 거냐 묻더니 맛있는 햄버거 가게가 있는데 거긴 어떻냐고 유도하였고, 결국 본인에게 햄버거를 사달라고 요구했다. 말문이 막혔다. 공항으로 픽업 나왔던 기사님은 참 좋았는데 오늘은 왜 이럴까 하는 한탄도 해보며 호이안에서의 좋은 기억이 지워질까 염려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싸늘한 분위기에서 다낭의 숙소에 도착했다. 너무 괘씸해서 팁도 주지 않았다. '호이안과는 달리 다낭에서는 또 새롭게 시작할 수 있겠지'하는 기대감도 있었다. 또 우리가 어떤 일을 겪게 될지 몰랐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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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의 PIN 번호를 확인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