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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_행복> 다낭 멘붕 사건

2차, 3차 멘붕 발발

by 루미썬
IMG_E2464.JPG 2018.06.13 @다낭



멘붕은 멘붕을 부르고


목적지에 다다를수록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에 다낭의 이미지는 나의 기대와 멀어졌다. 몇 시간 전까지 머물던 호이안과는 너무 다른 빽빽한 도심 풍경에 점점 실망하고 있던 것이다. 차에서 짐을 내리니 호텔 직원이 짐을 받으러 왔다. 우리에게 스트레스를 준 기사님과 인사를 나눈 후 체크인을 하러 들어갔다.


리셉션에서 체크인을 하는 사이에 환영한다며 웰컴 티를 주었다. 호이안 마사지숍에서 마셨던 차와 같은 맛이었다. 다낭 사람들은 이 차를 좋아하나? 진저 레몬티 같았다. 체크인을 안내하던 직원은 우리가 일찍 왔다며 체크인은 2시부터라고 말했다. 우리는 이른 체크인을 신청하고 왔으니 다시 확인해달라고 했다. 직원은 다시 확인해봤으나 신청되어있지 않다는 말만 할 뿐 체크인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오전 사이 벌써 두 번째 멘붕 사건이었다. 남은 여행에서의 금전적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체크인을 한 후 천천히 생각해보기로 했고, 이른 체크인 시간에 맞추어 일정을 정해서 움직이기로 한 상태였다. 일단 기다리라는 직원의 말에 로비에 앉았다. 너무 당황스러운 우리는 말을 잃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을까 생각만 했을 뿐. 기다리라는 직원은 시간이 흘러도 우리를 부르지 않았다. 이렇게 2시까지 기다리기엔 배도 고프고 흐르는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 일부러 12시 체크인에 맞추어 이동한 건데 이 마저도 삐그덕 거리니 속상했다.


"여기에서 계속 기다리느니 점심을 먹고 오자."

"그럴까? 그런데 어디로 가지?"


호이안 여행에 집중했던 터라 다낭의 맛집, 여행지 등의 정보는 찾고 오지 않았다. 우리는 두 가지의 멘붕 상황을 겪은 후라 깊은 생각을 하지 못했고, 밖에서 무작정 찾자니 기운도 없었으며 무더위를 견딜 자신이 없었다. 일단 다낭 시내로 가는 그랩을 부르고 무작정 다낭 대성당 앞으로 향했다. 한국인들이 많이 오고 가는 곳이니 뭐가 많이 있지 않을까 싶어 선택한 코스였다. 다행히 그랩 안에서 목적지를 결정했다.


핑크 성당이라 불리는 다낭 대성당에 내렸다. 성당 건축물은 도심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게 정말 예뻤다. 프랑스 식민지 시대에 다낭에 지어진 유일한 성당이라고 한다. 그런데 너무 기대를 했던가? 천주교 신자가 아니니 그렇게 보는 것만으로 끝났다. 일부러 들릴만한 곳이라기보다는 그냥 지나가다 한 번 보고 가는 것이 좋겠다는 아쉬움이 컸다.


IMG_E2303.JPG 다낭 대성당


사진 한 장 찍고 돌아서던 찰나 저 멀리 서 있던 B의 표정이 너무 안 좋았다.


"왜 그래?"

"오른쪽 발이 너무 아파.... 못 걷겠어....."


맙소사.. 3차 멘붕이었다. 정말 강력한 멘붕. 늘 괜찮다며 배려하는 B인데, 이렇게 아프다고 말할 정도면 상당한 고통이 있다는 것이다. 이때 나는 정말 뭐라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영혼이 나가 있었다. B는 잠깐 쉬면 괜찮을 거라고 했다. 무덥고 불쾌한 날씨였기 때문에 일단 휴식이 우선이라 아픈 발을 절뚝이며 식당으로 향했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찾던 식당은 공사 중이었다. 최신 정보로 업데이트가 되지 않았던 것. 주변에 마땅히 갈만한 곳 없던 터라 우울함이 몰려왔다. 아무래도 식당을 좀 더 찾아야 할 것 같은데 더 이상 걷는 것은 무리였다. 차라리 병원으로 가자고 했다. 남은 여행일이 더 많은데 멀리 와서 이렇게 다쳐서 가면 어쩌나 하는 걱정뿐이었다. 그건 싫다는 B의 말에 순간 한국 관광객들이 근처 약국에서 약 쇼핑을 한다는 글을 읽은 기억이 났다. 먼 거리는 아니므로 일단 약국으로 향했다.


다낭지도.jpg 다낭 시내 / openstreetmap.org



길이 없으면 만들어서 가라던데


발이 아프다고 설명하니 스프레이형 파스를 주었다. 원하던 것을 주어서 사긴 했는데 누가 약사인지 영업사원인지 구분이 안 되었고, 작은 규모에도 직원이 5명이나 있었다. 급한 대로 파스를 잔뜩 뿌리고 나니 조금 마음이 놓였는지 배가 고팠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바로 앞에 ATM도 있었다. 그 옆엔 은행까지! 그러나 문이 닫혀 있었다. 평일인데 왜 문을 닫았는지, 혹시 베트남의 공휴일인지 잘 풀릴 듯하다가도 여전히 일이 꼬이는 느낌이었다.


IMG_E2300.JPG 여기를 몇 번 건넜는지 모른다


식당도 딱히 보이지 않아서 결국 검색하여 알게 된 피자집으로 향했다. 베트남에서 이 더운 날씨에 피자는 정말 먹고 싶지 않았지만, 대안이 없었다. 둘 다 몸도 마음도 지친 상태라 어디든 가서 먹자는 마음이 컸다. 식당 문을 여니 모든 손님이 한국인이었다. 알고 보니 한국인이 운영해서 유명한 식당이었다. 가장 간단한 메뉴를 주문하고 이제 '은행에 갈지, ATM으로 인출할지, 비밀번호가 세 번이나 틀리는 건데 인출도 안 되면 어떻게 할지' 등 이런저런 고민을 했다. 그런데 한국인들 사이에 있다 보니 마음이 조금 차분해졌다. 사장님 또한 현지를 잘 알고 있을 테니 환율을 높게 우대해주는 은행이 어디인지 물어볼 수 있었다. 우리 사정을 들은 사장님은 일정 금액은 본인이 환전해주겠다고 했다. 와...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고 빛을 본 느낌이었다. 본인이 베트남에 정착하면서 힘들었던 점이나 현재 삶의 이야기까지 해주셔서 많은 감정이 오고 갔다. 우연히 들어온 곳에서 은인을 만난 느낌으로 덕분에 울지도 않고 무사히 돌아왔다고 인사드리고 싶다.


사장님의 피자는 화덕피자로 도우가 맛있었고 고구마 피자와 상하이 파스타가 대표 메뉴였다. 베트남 음식은 미원이 많이 들어가 몇 끼 먹다 보면 속이 더부룩해서 배탈 난 것처럼 안 좋아진다면서 음식에 대한 팁도 주셨다. 그러고 보니 처음엔 맛있던 음식인데 점점 거부감이 생겼던 것의 원인을 찾은 느낌이었다. 한시장 근처에서 마땅히 식사할 곳을 찾지 못했다면 방문하면 좋을 것 같다. 멘붕 사건 이후엔 정신이 없어서 사진 한 장 남길 여유가 없어 기록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



다행히도 B는 아까보다 발이 덜 아프다며 여기까지 온 김에 근처에서 쇼핑을 끝내고 들어가자고 했다. 여전히 아팠으나 설레던 나를 배려해준 것이다. 한시장으로 가는 길에 아까는 닫혀 있던 은행의 문이 열린 것을 확인했다. 알고 보니 점심시간이었다. 베트남 은행은 점심시간에 셔터를 내리는지 다른 닫혀있던 은행도 다시 열려있었다. 들어가 보니 은행인데도 ATM이 없었다. 그것마저 신기해하며 오는 길에 봤던 ATM기를 찾아가 내 카드로 인출을 시도했다. 다행히 내가 알고 있는 비밀번호가 맞았고 돈을 찾을 수 있었다. B의 카드로도 인출을 시도했는데 성공하여 다행이라며 큰 시름을 덜고 갈아입을 옷을 사러 한시장으로 향했다.


IMG_E2308.JPG 한시장 / 오토바이가 무섭다



베트남에 왔으면 코끼리 바지쥬?!


한시장 입구에서는 우리나라 수산 시장보다 더 심한 악취가 난다. 심각하게 놀랄 수 있으니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가야 한다. 1층은 식료품이 많았고, 2층에 패션잡화가 있었다. 143번 가게에서 정찰제로 판매한다고 해서 찾아갔는데 이미 수많은 한국인이 있었다. 바로 앞 136번 가게가 한산하길래 143번 가게와 가격이 같은지 물었더니 그렇다고 했다. 발이 아픈 B를 신경 쓰면 오래 머물 수 없었다. 급한 대로 지금 편하게 입을 바지와 선물할 옷 몇 개를 구입했다. 원피스는 80,000동, 반바지는 50,000동, 긴바지는 60,000동으로 저렴한 가격이어서 흥정하지 않 구입했다. 계산하고 보니 호이안 재래시장에서 아기 바지 2개를 210,000동에 산 것이 생각나 잠깐 화가 났다.


IMG_E2342.JPG 한시장 136번 이모가 정찰제로 운영하신다


한시장을 나와 아까 갔던 약국으로 다시 갔다. 타이레놀이 정말 저렴해서 매력적이었다. 부모님이 평소에 사용하실 파스와 눈 영양제로 유명하다는 DHA를 구입했다. 이렇게나 많이 구입했는데도 900,000동 정도, 즉 45,000원 정도밖에 내지 않아 어깨춤이 절로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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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PHARCO BLU+ PHARMAY



배도 부르고 양손도 무겁고 걱정도 한시름 덜었으나 B의 발은 여전히 아프니 일단 숙소로 돌아가기로 했다. 체크인을 완료해야 했고 우리의 짐이 잘 있는지도 궁금했다. 그랩을 타고 호텔에 도착하여 다시 체크인을 하니, 첫 체크인에서 불편을 드려 죄송하다며 루프탑 카페 무료 이용권을 줬다. 기다리라고 한 것이 끝이었다면 정말 화날 뻔했는데 이렇게라도 챙겨주니 마음이 조금 풀렸다. 우리의 짐을 챙겨 체크인을 마쳤다.


다행히도 룸 컨디션도 좋고 뷰도 멋있어서 멋진 방에 감탄하며 흥분했다. 계속 머무르고 싶은 방이었다. 우리는 차분히 다음 일정에 대해 이야기하기로 했다. 그때 벨이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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