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사다난했던 다낭을 떠나며
이른 시간 눈이 떠졌다. 떠나야 하는 것이 아쉬워 뒹굴 거릴 시간이 없었다. 눈을 뜨면 탁 트인 미케 비치의 풍경을 볼 수 있다는 것이 행복했다. 내가 많이 아끼는 속초 바다의 풍경과는 또 다른 매력이었다. 졸린 눈을 비비며 창가로 갔는데 다낭에 와서 처음 보는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도착했을 때부터 계속 흐린 하늘이라 베트남 날씨는 원래 흐린 줄 알았다. 그런데 맑고 파란 하늘 아래 바다까지 깊고 푸르게 반짝이는 풍경이라니...
"B!!!! 이리 와봐!! 창밖 좀 봐!!!!"
떠나기 직전 이렇게 예쁜 풍경을 맞이하니 속상한 마음을 숨길 수 없었다.
부지런히 씻고 아침 식사를 하러 내려갔다. 비행기로 긴 시간 이동해야 하므로 배를 채워야 했다. 그런데 속이 좋지 않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조금 더부룩할 뿐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음식을 먹을수록 구역감이 올라왔다. 미리 챙겨간 위장약으로 조금 진정시킨 후 체크아웃을 준비했다. 창밖의 맑은 하늘을 볼수록 떠나기 싫은 마음을 알까? 도저히 그냥 갈 수 없어 다시 미케 비치로 갔다. 비행기 시간이 여유롭지는 않았지만 B 역시 파란 하늘을 보니 많이 아쉬웠나 보다.
체크아웃 후 잠깐 다녀오려고 벨보이에게 짐보관을 요청했다. 우리에게 심드렁한 그 벨보이. 얼마나 걸릴 예정이냐고 묻길래 10분이면 된다고 했더니 그리 밝은 표정은 아니었다. 호텔에서 나와 길을 건너는데 몇 번 지나다닌 풍경이지만 지금까지와는 매우 다르게 보였다. 이제서야 '아, 내가 휴양지로 여행을 왔었구나.'라는 느낌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날씨가 여행자의 기분을 이렇게 바꿀 줄이야!!!!!
생각해보니 우리는 분명 여행을 함께 왔는데 같이 찍은 사진이 한 장도 없었다. 바나힐에 가서 인생샷을 남기자며 삼각대까지 챙겨 가서 열정을 쏟을 예정이었기 때문에 그리고 무더위에 지쳐서 소홀했던 것이다. 아름다운 미케 비치 풍경을 보니 그냥 돌아서기가 울고 싶을 정도로 아쉬웠다.
우리 앞에 앉아 있던 식당의 주차 관리인에게 사진을 찍어줄 수 있냐고 물었다. 조금 망설이길래 팁을 건넸더니 손을 저으며 괜찮다고 정중히 말하면서 찍어주겠다며 일어났다. 한두 번 찍어주고 말 줄 알았는데 여러 컷을 찍은 후 역광이라 얼굴이 잘 나오지 않으니 반대로 서라고 요구했다. 그러더니 이제 잘 나온다며 멈추지도 않고 여러 장을 찍는 것이다. 생각보다 오래 걸려 고맙다고 인사한 후 사진을 봤는데 그는 셔터만 누른 것이 아니라 수동으로 노출값도 조정하고 최대한 얼굴이 잘 나오도록 보정하며 찍어준 것이었다. 정성에 감동받아 처음에 팁을 건넨 것이 조금은 머쓱해졌다. 셀카 말고 다낭에서 처음으로 함께 찍은, 다른 사람이 찍어준 사진이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찍은 사진이기에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담아준 그분께 감사하다.
다시 호텔로 돌아가 벨보이에게 짐을 받은 후 고마움을 표현하기 위해 팁을 건넸다. 그했더니 갑자기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이제 어디를 가느냐, 공항에는 무엇을 타고 가는지 이것저것 물으며 우리를 챙겼다. 호출한 그랩이 도착하자 짐을 가져다주었고, 그랩 기사가 내려서 짐을 옮기지 않으니 우리 대신 화를 내며 기사를 불러냈다. 기사와 함께 트렁크에 짐을 옮긴 후 잘 가라며 끝까지 배웅했다.
"벨보이가 갑자기 표정이 밝아지지 않았어? 이상하게 잘해주는데?"
"팁을 받아서 기분이 좋은가 봐~!!"
B 역시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다낭도 출근 시간이라 그런지 다른 때보다 교통량이 많았다. 차가 밀리니 안전운전이 보장되어 마음은 편했다. 조금은 더디게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에서 나올 때는 픽업 서비스를 이용해서 잘 몰랐는데, 들어갈 때는 통행료 10,000동을 내야 했다. 선결제 된 그랩 비용과 별도로 주었다. 그랩을 탈 때 짐을 안 옮겨줘서 걱정했지만, 다행히 도착 후에는 바로 내려 짐을 옮겨주었다.
사전 수화물을 신청하지 못해 아깝게 9만 원을 지불했다. 출국 심사대에서는 신발도 벗고 맨발로 걷게 하여 조금 불쾌했다. 그때 심사원이 내게 소리를 질러 깜짝 놀라 살피니 아침에 마신다고 넣어둔 생수를 미쳐 생각하지 못하고 그대로 담아온 것이다. 그래서 내게 "물!!!"이라고 외쳤던 것. 작은 에피소드와 함께 수속을 마친 후 둘러본 다낭 공항은 정말 작았다. 구입하지 못한 커피와 차 등으로 남은 동을 모두 소진하고 비행기에 올랐다. 이때까지만 해도 비행기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상상도 못했다.
아침 식사할 때 속이 많이 불편했는데 그 연장선으로 식은땀이 나면서 구역감은 더욱 심해져 물 한 모금조차 마실 수 없었다. 혹시나 구토를 하지는 않을까, 배가 더 아프면 안 된다는 불안감이 가득했다. 차라리 잠이라도 들면 좋은데 잠도 안오니 미칠 지경이었다. 나를 걱정하느라 B도 편히 쉬지 못했다. 지금 생각하면 5시간을 어떻게 버텼는지 모를 정도로 눈앞이 깜깜해진다. 한국에 도착하니 살 것 같았다. 비행기에서 내리니 숨통이 트여 '나 살았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간단하게 식사 후 주차해둔 차량을 인도받으러 갔다. 무인정산기에서 정산을 시도했는데 오류가 생겨 문의하니 지상에서 해달라고 했다. 그런데 올라와서 시도하니 정산이 완료되었다고 나오는 것이다. 우리가 정산하지 못했다고 하자 직원은 시스템 오류인 것 같다며 기다려 달라고 했다. 그러나 잠깐의 문제가 아니었다. 기다리는 사이 우리의 뒤로 점점 차가 밀려 대기했고 심지어 빨리 가라고 빵빵거렸다. 뒤에서 우리에게 화를 내니 직원에게 뒤에서 대기하는 차에게 양해를 구하는 안내부터 한 후 일을 처리해달라고 했지만, 직원은 그저 우리 보고 죄송하다고 기다려 달라는 말뿐이었다. 15분 정도 지났지만, 체감 시간은 30분 그 이상이었다. 우리는 시스템 오류를 알렸고, 요금도 지불하겠다고 했음에도 오히려 불편을 겪고 대기하던 많은 차에게 비난 받으니 미흡하게 대처한 직원에게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 기분 좋게 잘 다녀온 여행이었고 비행기에서도 잘 참았는데 그 여운을 지키지 못하고 순식간에 불쾌함이 차올랐다.
다낭으로 출국할 때는 인천공항에서 체포되어 울부짖던 외국인의 소란스러운 광경을 목격했다. 호이안에서도 장사하던 중 불을 지피던 화로를 통째로 들고 카페로 뛰어 들어와 공안을 피해 숨던 상인을 보았다. 다음날에는 딱 한 장 가져간 카드를 사용할 수 없다고 하여 여행 경비를 마련하는 데 애를 먹었다. 다낭의 호텔에서는 이른 체크인을 신청했는데 접수가 되어 있지 않았고, B는 발에 통증이 심해 걸을 수 없어 일정을 변경했다. 그 후 별일이 없나 싶었는데 여행을 마무리하는 순간에 이런 일이 또 생기니 정말 우울했다. 이래저래 참 많은 일을 겪고 고생도 많이 해서 기억에 오랫동안 남을 것 같다.
귀국 후 너무 어지럽고 복통이 심해 병원을 찾으니 다낭에서 세균에 감염되어 왔는지 세균성 장염이라고 했다. 3주간 꼬박 앓았고 먹지 못해 많이 힘들었다. 다음에도 베트남 여행을 계획한다면 장티푸스 예방 접종을 꼭 하고(15일 전에 접종) 병에 밀폐되어 있지 않은 음료나 얼음은 절대 섭취하지 않으며, 양치도 반드시 생수로 해야 함을 절대적으로 느꼈다. 다음 여행은 이보다 분명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좋은 예감이 든다.
안녕, 다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