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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여운> 다낭 사람 ①

베트남어? 영어? 베트남식 영어?

by 루미썬


학창 시절 수학 다음으로 싫어했던 과목이 영어였다. 해외여행이 걱정됐던 가장 큰 이유는 의사소통의 어려움이었다. 다행히 영어를 잘하는 B덕에 편하게 다녔지만 말이다. 한국인이 워낙 많이 방문해서 그런지 베트남 사람들이 영어는 못해도 한국어로는 조금씩 대화가 가능했다. 영어를 잘 못해도 우리가 맞닥뜨리는 소소한 의사소통은 걱정 없이 여행할 수 있는 곳이 베트남이다.


그런데 종종 영어로 대화를 하면 그들이 지금 뭐라고 말하는 것인지 알아듣기 어려웠다. 리조트나 호텔, 식당 등 분명 영어인 것 같기는 한데 단어가 쏙쏙 들어오지 않거나, 우리가 배운 영어가 아닌 특유의 억양이 느껴졌다. 작년에 동생이 일본 여행 중 있었던 에피소드가 생각났다.

쇼핑하던 중 상품을 선택했더니 직원이 "탁수뿌리?"라고 했단다. 동생은 알아듣지 못해 "응?"이라고 다시 물었고, 직원은 또 "탁수뿌리? 탁수뿌리~~"라고 했다. 혹시나 싶어 동생이 "Tax free?"라고 물으니 직원이 "OK!"라고 했다면서 일본식 영어를 알아듣기 힘들어서 당황스러운 일이 있었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고구마를 먹은 것 같은 답답함이 그때 그 느낌이겠지? 베트남식 영어!

마사지 숍에서 나는 아로마 마사지, B는 핫스톤 마사지를 선택했다. 직원은 마사지를 하면서 강도는 어떤지, 불편한 점은 없는지 물어본다. 주로 간단하게 '좋아요, 괜찮아요, 추워요, 아파요' 등을 주고받는데, 대화가 오가던 중 직원은 B에게 '홋?'하고 물었다. B가 못 알아들으니 직원은 다시 '홋?'이라고 했다. 때마침 뜨거운 돌을 가져와 올려둔 직후였으므로 나는 속으로 '뜨겁냐고 하는 것 같은데'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역시 알아듣지 못한 B는 다시 물었고, 직원은 다시 '홋?'이라고 했다. 이렇게 몇 번 대화가 오가니 듣고 있던 내가 답답해 "뜨겁냐고!"라고 소리쳤다. 그제야 B는 "아~ 핫~~~?"하고 물으니 직원은 씽긋 웃으며 맞다고 했다.

다음날 샌딩 서비스를 이용하였고 도착까지 약 40~50분 정도 걸렸다. 기사는 말하는 것을 좋아하는지 이동 내내 우리의 대화도 방해하며 끊임없이 말을 걸었다. B는 꽤 긴 영어로 기사와 대화를 주고받았다. 듣고 있던 나는 종종 B의 대답이 이상하거나 머뭇거릴 때 혹시나 싶어 기사가 뭐라고 말했는지 말해주었다. 알고 보니 B는 기사의 말을 다시 생각해보느라 멈칫했던 것이다. 대화가 끝난 후 B가 내게 말했다.
"너 여기에서 베트남 영어 통역사 해도 되겠는데?ㅋㅋㅋㅋㅋ"
"ㅋㅋㅋ 뭐야~ 왜 이렇게 못 알아들어?"
"하... 베트남식 영어 정말 못 알아듣겠어ㅠㅠ 발음이 이상해. 근데 영어 못 한다 하더니 다 알아듣는다?"
"학교 다닐 때 듣기 평가는 했잖아. 들리긴 들려. 회화를 못해서 문제야. 그래서 말은 안 하잖아."
"ㅋㅋㅋ 우리나라 주입식 교육의 폐해구나."
우리는 깔깔깔 신나게 웃었다.

다음날 에피소드가 또 생겼다. 마사지숍 직원이 과일 음료 네 잔을 사서 윗층으로 갔다. 그것을 본 B는 "조금 전에 직원이 과일 음료를 사왔는데, 주변에 과일주스를 살 곳이 있나요?"라고 직원에게 물었다. 직원은 잘 알아듣지 못했는지 머뭇거리며 대답했고, B도 "아니 그게 아니고~"라며 뭐라고 하는 건지 파악하며 다시 물었다. 이 대화의 핑퐁이 다섯 번 정도 반복됐을 때 서로 다른 말을 하는 두 사람이 너무 답답해 나는 B의 말을 번역기로 돌려 직원에게 보여주었다. 하지만 직원에게 원하는 답을 들을 수 없었다.
"사용하는 문장이 너무 어려워!! 기다려봐!"
나는 핵심 단어만 직원에게 말했다.
"Near! Mango juice!"
참 웃긴 상황이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직원은 바로 알아들었고, 근처 카페에서 커피와 주스를 판매하고 있다며 위치까지 설명해주었다.
우리는 이 대화를 그렇게 어렵게 오랜 시간에 걸쳐 할 것이었나 하는 허무함과, 해결했다는 시원함에 직원들과 한바탕 웃었다.
"오우.... 진짜 고마워. 대단해!"
ㅋㅋㅋㅋㅋㅋㅋ

다낭 여행의 마지막 코스는 스타벅스였다. 커피를 시원하게 주문하던 B가 갑자기 멈칫했다. 나는 또 옆에서 왜 그러나 싶어 직원의 이야기를 들으니 쇼케이스를 가리키면서 'side'라고 말하고 있었다. 나를 바라보는 B에게 "커피 말고 케이크 같은 사이드 메뉴는 안 필요하냐고~"라고 통역해주었다. B가 직원에게 괜찮다고 말하니 주문이 끝났다. B는 '역시!!!!'라고 말하는 듯한 눈빛을 보내며 내게 놀란 눈치였다.


내가 듣기에도 베트남 사람들의 영어 억양과 발음이 알아듣기 힘들다. 이럴 땐 비언어적 요소를 고려하여 상황을 이해하는 것이 가장 좋은 것 같다. 그랩 기사들은 베트남어로 말을 하면 한국어로 번역해주는 앱을 사용하여 대화를 시도했으나, 한국어 번역 실력이 영 아니었다. 번역된 한국어를 이해할 때도 어느 정도 눈치가 있어야 바르게 소통할 것 같다. 하지만, 베트남 사람이라고 다 똑같은 영어를 하는 것은 아니었다. 어느 식당에서 정말 세련되게 영어를 하던 직원이 있었는데 B도 그 직원과는 쿵짝이 잘 맞아 농담도 했던 걸 보면 말이다.

나의 통역 실력에 나도 놀랐지만, 반대로 미국이나 유럽 여행을 가면 하나도 못 알아들을 것 같다는 끔찍한 생각이 든다. 부디 상상이 현실이 되지 않기를 바라며 다음 여행에서는 또 어떤 상황에 마주할지 기대하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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