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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신만나드립니다 May 25. 2023

임상의에서 공직자로,
최수지 연구관님

국민이 공감하는 한의학을 꿈꾸다

공직 진출을 희망하는 한의대생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음을 느낍니다. 하지만 본인의 전공을 살려 연구할 수 있는 직책이 많지는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지난 4월, 그중 한 분인 최수지 농촌진흥청 보건연구관님을 만나 뵈었습니다. 공직 생활에 대한 생생한 조언이 가득한 인터뷰, 모두 함께하시죠!


Intro

Q. 안녕하세요질문을 시작하기에 앞서 자기소개를 간단히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저는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특용작물이용과에서 근무하고 있는 보건연구관 최수지입니다. 세명대학교 한의과대학에 10학번으로 입학해서 2016년에 졸업을 했고, 직후에 세명대학교 부속 제천한방병원 인턴으로 한의사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이후 개원도 해서 임상에서 총 3년 정도 근무했고 이후에 공직에 와서 지금은 5년 차 보건연구관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연구관이라는 직급에 대해서 궁금해하는 분들이 계셔서 설명드리면, 연구 업무 수행을 위한 공무원 직군 중 연구사의 상위 직급으로 1~5급 상당입니다. 쉽게 말해 연구관은 최소 일반직 공무원 5급, 즉 사무관 이상으로 봅니다. 연구관인 만큼 업무는 연구가 기본이고 거기에 더해 연구와 관련한 행정 업무를 같이 합니다. 


Q. 업무가 연구 그리고 행정으로 이루어진다고 하셨는데혹시 보통 근무 시 일주일 정도의 일정이 어떻게 되시는지 여쭙고 싶습니다.


A. 저는 특용작물의 기능성을 전임상 시험(세포, 동물) 단계에서 평가하는 업무를 하고 있습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총 주 40시간이 정규근무시간이지만 그 시간 내에 업무가 끝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왜냐하면 실험이나 보고서∙논문 작성 일정이 정규근무시간 외에 이루어지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업무 효율성을 위해 유연근무, 초과근무 제도를 활용해 근무시간을 조정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업무 협의나 학회 참석 등으로 출장도 잦은 편입니다.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는 연구자들과 협력하고 교류하기 위함입니다. 


Q. 학창 시절에 학생회를 하셨다고 들었는데 학교 시절에는 관심사가 무엇이었는지어떤 생활을 하셨는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A. 학교에 있을 때는 공부에 충실했고 학교에 있지 않을 때는 지금 저를 인터뷰해주시는 여러분들처럼 외활동에 관심이 많았습니다대외활동도 종류가 많지만 제 관심사는 특히 봉사활동이었어요. 어디에 제출할 봉사 시간이 필요한 것도 아니었고 좋아서 한 것이라 시간을 확인하지 않고 활동했는데 졸업할 때가 되니 학교에서 제 활동 시간을 집계해서 연락을 주셨어요. 제가 약 600시간 봉사활동을 했고 학교 전체 졸업 동기 중 가장 많은 시간을 활동했으니 상을 주시겠다고요. 그래서 세명대 총장님이 주시는 상을 받고 졸업했습니다.  

보통 학기 중에는 국내 봉사 활동을 많이 했었어요. 그중 기억에 남는 것은 한의대생으로서 제일 바빴던 본과 3~4학년 때 애정을 쏟은 프리메드라는 의료봉사단체에서의 활동입니다. 토요일마다 서울역에서 노숙인을 대상으로 무료진료소를 운영했습니다. 연세대학교 의대생 및 치대생으로부터 시작된 단체이고 당시에 의과진료만이 있어 저는 의사, 약사 선생님들을 도와 진료소를 운영하는 PM으로 활동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타 학교 의대, 치대, 간호대, 경영대, 공대, 미대 등 다양한 전공의 학생들과 교류한 것이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노숙인 분들이 근골격계 질환을 많이 호소하시지만 내복약, 외용제 등을 드리는 것 외에는 해드릴 수 있는 것이 없어 한의 진료가 같이 운영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한의 진료 시설을 구축하고 한의사 선배들을 모셔와 2015년에 처음 한의 진료소를 열었고 환자들의 큰 호응 속에 지금도 성황리에 운영되고 있습니다. 당시 저희 무료진료소에 관심 가져주시고 서울역에 직접 방문해서 격려해 주셨던 세명대학교 한방내과 고호연 교수님(現 식약처 한약정책과 과장님), 제가 한의 진료를 세팅할 당시에 조언을 구하니 흔쾌히 도움 주셨던 세명대학교 부속 제천한방병원 조나영 선배님(現 침구과 교수님)께 특히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Q. 의료 봉사를 하셨다면혹시 학교에서 봉사 동아리를 들어가신 적도 있었나요?


A. 학교 봉사 동아리 활동을 하지는 않았고 대신 외부 의료봉사활동을 선택해 활동했습니다. 평소 학교 친구들과 교류하는 시간이 많다 보니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서 좀 다른 경험을 하고 싶었거든요. 그때 만난 다양한 분야의 친구들이 지금도 제 인생에 큰 힘이 되고 있음에 감사합니다. 봉사 얘기가 나와서 추가로 말씀드리면, 방학 때에는 매년 해외봉사를 다녀왔습니다. 당시에는 많은 기업이 사회공헌사업으로 서류와 면접을 통해 대학생을 선발해 해외봉사를 보냈는데 제가 합격한 것 프로그램 중에 경쟁률이 높은 것은 400:1까지 되었습니다. 취업준비생은 이런 경험이 있으면 자소서나 면접에 녹여서 스펙으로 사용할 수 있으니 경쟁이 더 치열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저는 대학교 재학 6년간 현대자동차의 해피무브라는 프로그램으로 아프리카 가나에, 한국전력공사를 통해 베트남에, 카페베네를 통해 인도네시아에, 한국정보화진흥원이라는 공공기관을 통해 우즈베키스탄에 다녀왔습니다. 태풍에 반파된 집을 고쳐 짓던 일,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오지 마을에 태양광 시설을 설치했던 일, 컴퓨터가 생소한 아이들에게 컴퓨터 사용법을 가르친 일, K-pop을 좋아하는 타국 사람들을 위해 문화공연을 선보였던 일이 지금도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습니다. 대학생이 아니었으면 해 볼 수 없었던 많은 일을 경험했고 그것이 삶에 밑거름이 되니여러분들도 많은 경험을 해보시기를 추천합니다.


Q. 세명대에서 의무적으로 채워야 하는 봉사 시간이 지금 6년 동안 12시간 정도인 것에 비해서 600시간을 하셨다는 걸 들으니 놀랍습니다.


A. 그때는 봉사활동은 의무사항이 아니었고 그저 자기만족으로 했던 것이었어요. 세명대 동문들은 위세광명 포인트 제도를 아실 텐데, 제가 재학 중일 때 신설된 것으로 기억합니다. 봉사활동 시간의 일부가 위세광명 포인트가 되어서 재학 중에 장학금도 받았고, 위에 소개한 대로 봉사상도 받았으니 이 모든 것이 제가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학교에서 격려해 주신 것이라 생각하여 감사드립니다.


Q. 앞선 질문과 비슷한 맥락이긴 한데대외활동 중에 한의대생들에게 특별히 더 추천하고 싶으신 활동이 있으신가요?   


A. 추천하고 싶은 건 대신 만나드립니다요 (웃음). 왜냐면 제가 학생일 때는 이런 활동이 없었거든요. 제가 본과 2학년 때 학생회 부회장으로 활동했는데, 그때 학생들이 공직에 계신 한의사 선배님을 만나 뵙고 싶다는 요구가 있었어요. 저도 학생 때부터 공직 생각이 있었지만 공직에 나가 계신 선배님들이 누군지 파악이 안 되는 거예요. 그러다 어느 교수님께서 교수님의 동기이자 저희 선배님 중에 직업군인 한의사이신 엄유식 선배님(現 육군 대령님)을 소개해 주셨습니다. 지금 여러분들이 대만드에서 선배들을 섭외해 인터뷰하는 것과 유사하게, 저희 학생회가 선배님을 모시고 직접 특강을 열여서 피와 살이 되는 이야기를 들어보았어요. 그 특강도 지금의 저를 만드는 데 기여했기에 엄유식 대령님께 감사드립니다. 

제가 학생회 활동을 하면서 그랬듯, 직접 선배님들께 연락하고 인터뷰하는 과정에서 대만드 멤버들도 얻어가는 게 있을 거고 또 직접 만나기 어려운 분들의 이야기를 대만드 멤버들 덕분에 전해 들을 수 있게 된 사람들이 많잖아요. 그래서 저는 대만드를 추천하고 싶고 제가 학생이었더라도 대만드에 도전했을 겁니다. 제가 기존에 해봤던 활동들 중에서는 의료봉사 단체인 프리메드를 추천하고 싶습니다.


임상에서 공직까지

 

Q. 다음으로는 공직생활 이전에 수련의개원의로서의 임상 경험을 하시면서 어떤 것을 느끼셨는지 궁금합니다


A. 저희 부친께서 평생 공직자로 계셔서 어렸을 때부터 공직에 대한 어떤 동경 같은 게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나도 나중에 공직자가 되어 보겠다는 생각을 막연히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한의대에 오게 되면서 ‘한의사가 공직으로 갈 수 있나?’ 하고 물음표가 생겼죠. 일단은 나중에 공직을 하게 되더라도 책을 통해 공부한 얘기만 하지 않기 위해서는 임상 경험을 쌓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졸업과 동시에 제천에 있는 자교 병원에 지원해서 인턴으로 들어갔어요.

인턴하면서 기억에 남는 것은 잠이 늘 부족한 것이었는데 하루에 3시간 잤거든요. 그때 ‘사람이 잠을 못 자면 판단력이 흐려지는구나.’하는 걸 많이 느꼈어요. 하지만 환자를 앞에 두고 실수할 수 없으니 정신력으로 버텼죠. 또 인턴은 새벽부터 병동 문진을 시작하는데 이것을 라운딩이라고 부릅니다. 침상에 환자분들이 계시면 아침에 가서 깨우면서 ‘잠은 몇 시간 주무셨어요?’, ‘식사는 어떻게 하셨어요’, ‘대소변은 보셨어요’ 이런 질문부터 ‘어제 아프셨던 건 오늘 몇 프로 정도 좋아지셨어요?’ 등을 묻고 답을 듣습니다. 그러면서 환자들과 라포 쌓는 법을 배워 가기 시작했습니다.

이후에 개원은 서울 강남구에서 했어요. 집안 사정상 개원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는데 젊은 여자 한의사가 어느 연령의 환자들에게 어떤 질환으로 가장 잘 어필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여 내린 결정이었습니다. 처음 개원했을 때 20대 후반이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무슨 용기로 그렇게 했을까 싶지만 환자 층이 젊으면 젊은 한의사가 먹힐 수 있다는 조언을 당시에 선배님들로부터 들었고 그게 맞아 들어간 겁니다. 환자 연령에 따라 주소증이 분명 다른데, 주로 보는 환자들이 저와 비슷한 20~40대 근골격계 환자였기 때문에 그들의 아픔과 고민에 비교적 쉽게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한의원은 자리도 정말 중요합니다. 저는 한의원 가까이에 사무실이 많아서 젊은 환자들이 유입되었고, 한의원은 아파트 단지 상가에 있었기 때문에 노인, 소아까지 다양한 환자 층이 저희 한의원을 찾았습니다.

대중적으로, 때로는 한의계 동료들조차도 ‘한의약은 나이 든 사람들한테만 잘 먹힌다.’는 인식이 있습니다. 그런데 개원해서 진료하면서 그렇지 않다는 생각을 첫 번째로 했고요. 두 번째는 ‘1, 2, 3이라는 말이 있듯이 침과 뜸그리고 한약이 우리의 무기라는 생각을 했어요. 양방에서 오랫동안 치료가 안 됐던 환자분들이 제 한의원에 오셔서 빨리 나으시는 것은, 사실 졸업한 지 얼마 안 된 제가 잘해서가 아니라 그런 도구들, 침, 뜸, 약이 좋고 그 도구들을 제가 잘 활용할 수 있도록 알려주신 선배님들이 계시기 때문이겠죠. 환자들로부터 ‘오래 고생했던 시간에 비해서 금방 나아서 고맙다’는 피드백을 많이 받았어요. 그래서 우리 한의대생들 그리고 한의사들이 스스로 우리의 무기에 대해서 자부심을 더 가져도 좋겠다라는 얘기를 꼭 해드리고 싶어요.


Q. 강남에서 개원 후 자리를 잡은 상태에서 공직에 진출하기로 하는 것은 쉽지 않으셨을 텐데공직 진출을 결심하신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A. 자리 잡은 한의원을 내려놓고 공직으로 간다는 건 엄청난 모험이자 기회비용이 큰 일이었어요. 어쩌면 그때는 제가 지금보다 더 젊어서 가능했던 것 같아요 (웃음). 진료하다가 연구 분야에 뛰어드는 건 저로서는 큰 환경의 변화인데, 나이가 더 들면 그런 변화를 감수하기가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이가 들수록 더 안정을 추구하고 그 자리에 안주하려는 생각이 들 테니까요. 또 치열한 경쟁을 거쳐 공직에 합격한 것을 포기하고 더 진료하다가 나중에 다시 지원한다고 했을 때, 제가 또 합격하리라는 보장도 없었죠. 그래서 아직은 젊으니까 지금 변화를 줘보고, 만약 안 맞으면 돌아와서 다시 개원하자고 생각했어요.

저는 제가 하는 일이 파급력 있는 일이기를 줄곧 희망했어요. 예를 들어 제가 한 명의 환자에게 침을 놓고 뜸을 뜨고 약을 써서 이 환자의 건강이 좋아지는 것도 큰 보람이죠. 하지만 제가 한약재가 될 수 있는 어떤 특용작물에 대해서 연구하고 그 연구 결과가 세상에 알려진다면, 더 많은 사람이 이 연구의 혜택을 받을 수 있겠죠. 저는 이것이 더 파급력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고, 그 일을 조금이라도 더 어릴 때 도전해보고 싶었어요.


Q. 한의사로서 진출할 수 있는 여러 공직 중에서도 농촌진흥청을 선택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A. 한의사 면허를 가지고 진료를 하지 않는 공무원이 된다고 하면 보통은 행정직 혹은 연구직이라는 두 가지 길이 있습니다. 저는 임상 경험을 바탕으로 연구직이 되어서 연구와 행정을 병행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연구직 쪽으로 찾아보던 중 농촌진흥청에 자리가 나서 지원하게 되었죠. 아시다시피 한의사가 갈 수 있는 연구직 공무원 자리가 많지는 않습니다. 저희 청과 식약처 정도만 생각나네요. 


Q. 농촌진흥청에 들어가는 시험을 봐서 연구관으로 채용이 되었다고 하셨는데구체적으로 어떤 과정을 거쳐서 이루어지게 되는지 궁금합니다.


A. 채용 과정은 때에 따라 바뀔 수 있어서 일반적인 것으로 말씀드립니다. 국가직공무원 5급이 되려고 가정하면 두 가지 경로가 있어요. 첫 번째는 5급 공채 시험이 있는데 기존에 행정고시라고 부르던 것입니다. 5급 공채로 합격하면 대부분 행정직으로 가게 돼요. 한의사라면 보통 보건복지부를 생각하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희망하지 않았던 부처로 배치될 수도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저는 행정직에서는 제 전공을 살려서 일하기 어려운 상황이 있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해서 연구직이 되기로 선택했습니다.    

다음으로는 민간 경력자 채용 시험이 있는데 줄여서 민경채라고 합니다. 경력, 학위, 자격증 등을 갖춘 인재들을 공직에서 활용하고자 운영하는 제도입니다. 민경채는 5급, 7급 이렇게 2개가 있는데 5급 공채와 마찬가지로 1차에는 PSAT(공직적격성평가)을 봅니다. 2차는 서류전형, 3차는 면접 전형입니다. PSAT은 연습과 요령이 다소 필요한 시험이고 서류와 면접은 직렬에 따라 내용이 조금씩 다르겠지만 보통은 여태까지 해왔던 경험들과 앞으로 할 업무들을 어떻게 접목할 수 있을지를 효과적으로 설명해야 합니다. 물론 국가공무원을 뽑는 것이다 보니 응시자의 공직관도 잘 녹여내야 합니다.


농촌진흥청에서의 한의사

 

Q. 답변 감사합니다제가 다른 매체와 진행하신 인터뷰도 사전에 읽었는데요그래서 농촌진흥청에서의 구체적인 업무 범위도 궁금합니다.


A. 특용작물에 대한 연구를 중점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어느 땅에서 어떻게 자라는지에 따라 유효∙지표성분 함유량 등 품질의 차이가 있는데, 그게 들쭉날쭉 하다면 동일한 약효를 기대하기가 힘듭니다. 그래서 특용작물을 표준화하는 작업을 재배 단계부터 진행합니다. 우리가 본초학에서 어떤 약초를 이만큼 먹으면 사람 몸에 들어가서 이런저런 작용을 한다고 배우죠. 저는 이런 지식을 임상에서 환자들에게 처방을 해가면서 확인했고, 이제는 역으로 전임상 단계를 거쳐 현대 과학의 언어로 설명하는 작업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한의약 용어로써 표현을 하던 것을 ‘세포 실험을 해봤더니 이런 효과가 있었고, 동물 실험을 하면 또 이런 효과가 있다’라는 식으로 말합니다. 본초학에서는 어떤 약이 2~3천년 전부터 써왔던 것이라고 하는데, 비록 완전히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현대 과학의 수준에서 이 약을 계속 써야 할 근거를 마련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또한 한의사의 처방 없이 주변에서 쉽게 구해 섭취할 수 있는 식약공용한약재도 100가지가 넘는데 이에 대한 올바른 홍보를 하는 것도 저의 업무 중 하나입니다. 


Q. 식약공용한약재 홍보 활동 역시 언급을 하셨는데이러한 홍보를 통해서 기대하시는 바가 무엇인가요?


A. 300여 종이 되는 본초들 중에서 한약재로만 쓰는 게 있고 식품이랑 같이 쓰는 게 있어요. 예를 들어 인삼은 삼계탕에도 넣어서 먹고 한약으로도 먹죠. 이런 것들을 식약공용한약재라고 하고 사람들이 어떻게 먹으면 좋은지 많이들 궁금해합니다. 이런 것을 주제로 보도자료, 기고문을 쓰거나 동영상을 찍자는 연락을 자주 받습니다. 이렇듯 생활 속에서 식약공용한약재를 안전하게효과적으로 섭취하면 되는지에 대해서 알리는 업무를 하고 있습니다.

이런 홍보를 통해서 사람들이 자기 몸에 맞는 한약재를 효율적으로 드실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런 것들이 쌓이다 보면 한약재에 대한 신뢰가 쌓이고 오해를 바로잡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약 먹으면 살찐다’ 거나 ‘한약 먹으면 간이 나빠진다’는 얘기를 사람들이 하길래 학생 때 상처 꽤 받았거든요 (웃음). 그런데 졸업하고 환자들 만나서 진료해 보니 그런 풍문에는 숨겨진 뒷면이 있었어요. 예를 들면, 한약 복용 후 입맛이 좋아져서 밥을 많이 먹고 살이 쪘다든지, 사람들이 생략한 말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말들이 흔하고 심지어 많이 믿고 있어서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그런 것들을 바로잡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Q. 현재 관심을 가지고 계시는 연구가 포제법의 현대화와 표준화라고 언급하신 기사가 있거든요구체적인 연구의 방향 혹은 목표에 대해서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A. 한약재를 가공하는 방법을 포제라고 하고 수치, 법제 등 다양한 용어로도 부르는데요. 포제법이 아직까지 두루뭉술한 게 많고 심지어 일각에서는 영업 비밀이라고도 합니다. 가공 조건에 따라서 한약재의 효능이 크게 달라지는 경우도 있지만 연구가 더 필요합니다. 한약재가 가진 잠재력을 발굴하는 연구를 지금도 하고 있고 앞으로도 하고 싶습니다.

 

Q. 수련의로서개원의로서 임상 경험이 많으신데현재의 연구 업무에 도움이 되시는지 궁금합니다.


A. 임상 경험이 긴 선배님들이 많으신걸요. 다만 저는 비교적 짧은 시간에 다양한 경험을 한 거라고 표현하고 싶네요. 임상을 통해 실제로 환자한테 써봤더니 어떤 약이 좋았다는 걸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연구 과제를 수행할 때 임상에서 썼을 때 좋았던 것들을 참고하여 전임상 단계에서 연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임상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됩니다.

 

Q. 타 분야 연구자들과의 협업에서한의학의 언어적 장벽으로 인한 어려움이 있지는 않았는지 그 예시와협업 중 인상 깊었던 순간힘들었던 순간에 대해서 알고 싶습니다


A. 제 근무처인 충북 음성군의 인삼특작부는 국립약용식물원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약용식물원에서 자라는 자원들을 대상으로 ‘한국특용자원식물’이라는 식물도감을 발간하는 업무를 맡았는데 저는 효능을 해설하는 작업을 했습니다. 도감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쉽게 쓰여야 하니 한의서를 참고하여 한글로 풀어냈습니다만, 그 과정에서 한의약 용어에 함축된 의미가 너무 축소되는 게 아닌가 고민될 때가 있었어요. 예를 들어, 한 단어에 열 가지 의미가 함축되어 있는데, 이것을 한글로 다 풀어쓰면 너무 길어지잖아요. 한자로 표현하면 간단하지만 타 분야 사람들은 이해하기 쉽지 않아요. 그래서 함축된 한의약 용어를 간명하게 표현할 때 많은 갈등과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래도 제가 한글로 풀어서 설명해 줬을 때 사람들이 '이게 그 말이었어?'라며 무릎을 탁 치고 공감하면 보람도 느낍니다. 대중들은 갈수록 쉽고 명확한 것을 원하고 신뢰하기 때문에, 한의학 대중화를 위해서는 ‘한의약 용어의 한글 패치화’ 작업이 장기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Q. 공직 생활 중 가장 뿌듯했던 순간인상 깊었던 순간힘들었던 순간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A. 올해 초에 감초 교잡종(품종원감)이 대한민국약전에 추가가 되었을 때가 가장 뿌듯하고 인상 깊었어요. 설명을 조금 드리자면, 여태까지 감초의 기원종은 G. uralensis, G. glabra, G. inflata 3종이었습니다. 근데 이들은 우리나라에서 자생하기 어려워요. 장마철의 영향 등으로 뿌리가 잘 자랄 수 없고 지표 성분의 함량이 적어서 약으로써의 가치가 낮았어요. 조선왕조실록에도 우리나라에서 감초 재배를 시도했으나 실패했다는 부분이 나오니까, 감초의 국산화는 600년 된 숙원 사업이었습니다.

그래서 저희 청에서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감초의 원산지인 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 지역을 탐사했어요. 그리고 탐사 결과, 제가 앞서 말씀드린 감초 세 종 중에 G. uralensis와 G. glabra 사이에서 교잡이 많이 일어나고 있다는 걸 확인했어요. 자연계에서는 사막에서 생존하기 유리한 형태로 이미 교잡이 일어나고 있었던 거죠. 이 사실을 바탕으로 농촌진흥청에서는 국내 환경에 적합한 교잡 품종을 개발했고, 개발한 품종이 식약처에서 제시한 지표성분 기준에도 부합하고 약리학적 효과가 기존 감초와 동등하거나 더 우수함을 확인했어요. 이후 환경부, 식약처 등 정부부처들의 협업을 통해 감초 교잡종인 G. Korshinskyi를 약전에 추가 등재했고, 원래 3개였던 감초의 기원식물이 4개가 되었어요.

근데 올해 초에 약전에 추가 등재가 된 것이지, 사실 그 업무를 하기 위해서 연구자들이 쏟았던 시간은 10년이 넘거든요. 장기적인 호흡으로 추진해야 할 일이나, 발령에 따라 담당자들이 바뀌다 보니 시간이 더 걸리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제가 근무하기 전부터 연구를 하고 있던 것이 정부 부처들의 협업을 통해 가속이 붙어 드디어 성과가 도출되었기 때문에 부처 간 협업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 사례입니다.


Q. 공직 진출을 희망하고 있는 한의대생 혹은 한의사들께서 혹시 해 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A. 공직에 진출한다는 건 기본적으로 조직 생활을 한다는 거예요자신이 조직생활에 잘 맞는 사람인지잘 적응할 수 있는 사람인지를 먼저 파악하시고 진입하셔야 해요. 자기 자신에 대한 평가가 되었으면 공직에 먼저 진출하신 선배를 찾고 연락해서 해당 공직에 관한 정보를 얻으시기를 추천합니다. 아무래도 경험자의 조언이 가장 도움 되실 겁니다.


Outro. 대만드 공통질문

 

Q. 인생 그래프에서 가장 뿌듯했던 up 순간과 포기하고 싶었던 down 순간이 언제였는지와 그때의 극복 방법은 무엇이었나요?


A. 먼저 up의 순간은 한의대 입학했을 때! 하고 싶었던 공부를 하게 돼서 행복했어요. 그리고 down이었을 때는 본과 3학년 때예요. 비록 하고 싶던 공부였지만 학습량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니 머리에 입력할 수 있는 양에도 한계가 와서 스스로 작아진다고 느낀 시점이었어요. 이때의 극복 방법은 다른 세계와의 소통이었어요. 앞서 설명했던 프리메드라는 대학생 의료 봉사단체 활동을 하면서 사람들이 각자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것을 보았어요. 매너리즘에 빠져서 공부를 하는 이유조차 잊은 제 자신을 반성했습니다. 눈앞의 일에만 매몰되지 말고 인생을 넓게 보자고 다짐하며 잘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Q. 진로에 대해 고민하는 한의대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A. 명심보감에 한 가지 일을 경험하지 않으면 한 가지 지혜가 자라지 않는다 (不經一事 不長一智)라는 말이 있어요.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하는 구절인데 이 말처럼 학생 때 최대한 많은 것을 누리고 경험했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다른 과 학생들에 비해 한의대 학생들은 고등학생 때처럼 대학교 내내 그냥 공부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어차피 직업도 정해졌고 교우 관계도 한의대 내에서 쌓는 게 전부라고 합니다. 그러기보다는 다른 과, 다른 학교 학생들은 어떻게 사는지도 들여다보고 직∙간접적인 경험을 풍부하게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지나고 보면 대학생 때만 할 수 있는 일들도 많은데 지나가버린 시간은 돌이킬 수 없으니까요.


Q. 앞으로의 장/단기 목표가 궁금합니다!


A. 국민들이 특용작물, 한약재, 더 나아가서 한의약을 제대로 이해하고 잘 이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제 역할이자 장기 목표입니다. 당연하게도, 단기 목표는 제가 맡은 연구 과제들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것입니다. 


Q. 대만드가 다음에 만나보면 좋을 것 같은 분이 있을까요?


A. 세명대학교 학부 혹은 교수 출신인 공직 한의사들의 모임이 있습니다. 그 모임에 계신 선배님들을 추천하고 싶어요. 식약처 한약정책과 고호연 과장님은 원래 세명대학교 부속 충주한방병원에서 한방내과 교수님이셨는데 지금은 휴직하시고 식약처에서 근무 중이십니다. 한의약 관련 정책에 대해 가장 정확한 정보를 주시는 것은 물론, 한의사들이 나아갈 방향까지도 제시해 줄 수 있는 분이셔서 추천합니다. 그리고 재활과 관련된 연구를 수행하시는 국립재활원 임성민 연구관님과 국립중앙의료원에서 한방내과 진료를 보시는 김진원 부장님도 강력히 추천합니다.


최수지 연구관님의 바쁜 일상과, 그것이 가능하게끔 만들어준 연구관님의 열정과 사명감을 느낄 수 있었던 인터뷰였습니다. 대만드 팀원들 모두 도전에 망설이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개척하신 연구관님의 말씀을 들으며 많은 배움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각자의 비전을 따라 공부하고, 연구하고 결과를 쌓으며 새로운 한의학에 대한 인식을 만들어 나가는 것. 연구관님이 바라는 미래에 많은 후배들이 함께하기를 기원합니다.

Interviewer: 유니콘, 기린, 갈매기, 낙타, 백조, 플라밍고

Writer & Editor: 유니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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