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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코 Dec 03. 2020

Day11. 조용하고, 편안한 나의 집

소음에 대한 강박


나는 소음에 대한 강박이 있다. 무섭고, 듣기만 해도 가슴이 쿵쾅거린다. 가끔 길을 걷다 들리는 차도의 소음에도 머리가 아프고, 내가 돌리는 청소기 소리, 머리 말릴 때 드라이기 소리도 정말 싫어한다. 하다 못해 음식점도 맛보다는 조용한 곳을 찾는 사람이다. 뿐만 아니라 작은 소리에도 잘 놀란다. 이를테면 사무실 밖에서 동료분과 인사를 하고, 이 동료분이 곧 들어올 걸 알면서도 문소리에 놀라는 격이다. 나는 소리에 왜 이렇게 민감한 걸까? 소음을 싫어하는 이유는 뭘까? 어렸을 때부터 그랬나?

어느 평범한 저녁, 도시락을 사기 위해 편의점에 갔다. 요새 코로나로 개인위생 수칙 준수가 필수인데 한 손님이 술에 취해 마스크도 끼지 않은 채, 계산을 하고 있었다. 그 손님이 나가자마자 점원 분은 미친 듯이 소독약을 뿌렸고 동시에 내가 있는 건 아랑곳하지 않고 욕을 하기 시작했다. 그 소리가 너무 무서워 내가 사려던 물건도 다 사지 못하고 얼른 계산을 마치고 나왔다. 숨이 막힐 것 같은 압박감과, 떨리는 손을 보니 그 이유를 깨달았다. 내 유년 시절 한 페이지였다.


모래 위에 지은 집

10대부터 대학교 졸업까지 집은 나에게 불편한 공간이었다. 엄마의 부재, 아빠와의 갈등, 그로 인한 모든 스트레스를 감내해야 하는 공간이었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아 이사 간 집의 내방은 주방 옆이었고, 방은 작은 베란다와 연결되어 있었다. 작은 베란다는 다용도실로 사용해서 세탁기가 있었고, 집에 쓰레기를 모아 놓거나 창고로 사용했다. 이런 위치적 특성 때문에, 내 방은 항상 소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 특히나 나를 힘들게 하는 소음들은 이런 것들이었다. 끔찍한 파열음의 설거지 소리, 대상을 잃은 비난의 목소리,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발걸음 소리, 입에 담기도 무서운 말들. 아빠는 나에게 직접적인 대화는 건네지 못하고 이런 소음들로 나를 괴롭혔고, 자신의 아픔을 알아주지 못한다며 공격했다. 종국에는 이런 소리들을 모아 내 앞까지 다가왔다. 숨을 곳 없는 나는, 자꾸 바깥으로 나돌았다. 소음을 피해, 도서관을 찾았고, 소음을 피해 집 앞 하천에 하염없이 앉아 있곤 했다.

이런 소음 속에서 나는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독립하고 싶었고, 그 독립에는 어떠한 도움도 받고 싶지 않았다. 그 도움이 또다시 소음이 돼서 나를 괴롭힐 것이란 걸 알기에, 계속 떠나기 위한 준비를 했다. 그리고 돌아오지 않고 나를 지킬 수 있는 "집"이라는 공간이 필요했다. 이를 위해 경제적 독립을 필수였다. 독립에 대한 열망이 대학 생활 내내 아르바이트를 하고, 영어 공부를 하고, 휴학 한번 하지 않고 졸업 전에 취업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독립, 그리고 언제 이사 가요?

처음 회사에 입사하고선 사택에 들어갔다. 원래는 신축 여자 기숙사로 들어간다고 안내를 받았었는데, 자리가 없어서 무기한으로 기다려야 했다. 독립을 했다는 뿌듯함과 소음으로부터 벗어났다는 해방감에 행복했지만, 거제도는 내가 마음 붙일 곳이 못됐다. 그리고 거쳐간다는 생각에 더욱더 마음을 붙이지 못했다. 이런 경험들 덕에 다음에 이사를 가게 된다면 꼭 이전 살던 동네 근처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반지하 작은방

회사를 그만두고 다시 내가 살던 동네로 올라왔다. 반지하에 집도 오래돼서 사는 동안 정말 고생을 많이 했다. 가장 무서웠던 소음으로부터 벗어났지만, 다른 고생의 시작이었다. 보일러가 터져서 물난리가 나기도 하고, 정화조가 막혀서 화장실이 해마다 터졌고, 곰팡이들 과는 매번 전쟁이었다. 밤에는 타닥거리는 바퀴벌레 소리에 귀가 멎고 눈이 멎고 싶었던 적도 있었다. 거기에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소음, 이웃집 아주머니가 집 앞에서 분갈이하는 소리까지 주말엔 오히려 소음을 피해 카페를 찾았다.



적막한, 지상으로

내가 개발자가 되기를 마음먹고 목표한 세 가지가 있었다. 첫 번째는 실력 있는 개발자 되기. 두 번째는 30살 전에 이전 회사 연봉 넘어서기. 그리고 마지막이 "지상으로"였다. 이 목표를 이룬 날은 29살 어느 가을이었다. 좀 깨끗거나 신축은 가격이 너무 비쌌고, 빌라는 매물이 없었다. 지금 살고 있는 집과의 첫 만남은 당황이었다. 이전 세입자분이 워낙 오래 살아서 집이 너무 낡고 오래돼서 걱정했지만 다행히 좋은 집주인 분을 만나 리모델링한 끝에 새로운 집으로 거듭났다.

이사할 무렵, 이전 집과의 계약, 새로운 집 리모델링, 갑작스러운 해외 출장 등으로 정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리모델링을 막 마쳐, 페인트 냄새, 접착제 냄새로 가득한 집에 스티로폼을 깔고 이 불 한 장 덮고 이사 첫날을 보냈었다. 그날의 야트막한 빛줄기와, 적막은, 내가 그토록 바라던 어느 하루였다. 꿈같았다.



소음에 대한 나의 강박은 나를


10년 뒤, 한적한 주택가, 방 두 개, 2층, 어느 빌라
                                                                                                                              

                                                                                                                        에 있게 했다.

  

내 방, 내가 좋아하는, 내가 만든, 나의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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