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학이라는 용어가 있을 만큼 죽음은 삶에서 중요한 부분이다. 이번 주제는 개인적으로도 관심이 많은 주제라 담고 싶은 내용이 많았다.
그것이 자살이 아니더라도 나는 탄생과 죽음은 자주 떠 올린다. 왜일까. 내가 읽은 영성도서 속의 내용들을 보면, 영적 지도자들도 죽음을 이야기하지만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많은 위로가 되었다.
<세도나 마음혁명>에서는 "우리는 죽음을 죽여야 한다. 우리의 의식에서 죽음에 관한 모든 생각들을 제거해야 한다.”고 했다.
이렇게 죽음이란 죽이고 없애야 하는 감정이지만, 에크하르트 톨레가 <고요함의 지혜>에서 말한 것처럼 “죽음은 결국 착각에 지나지 않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착각에서 슬픔을 가져올까. 죽음은 현재를 끝내고 새로운 내일을 재창조하기 위한 과정이며, 우리에게 오늘과 똑같은 내일은 없으므로 매순간 어떤 의미에서는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디팩 초프라는 <우주리듬을 타라>에서 “내가 죽으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나는 죽지 않기 때문이다...(중략)...당신이 죽을 때 당신은 아무 데도 가지 않는다. 당신 영혼이 다른 주파수로 진동할 따름이다”고 했다.
저자는 인도에서 그의 아버지가 죽기 전에 어머니 방으로 들어가서 잠자고 있는 아내의 얼굴에 가볍게 키스를 하고, 다시 자기 방으로 돌아가 편안하게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슬픔을 감당하기 힘들었다고 적었다.
세계적인 영적지도자이자 대체의학의 선구자답게 그가 담담하게 풀어내는 죽음에 대한 언어는 사랑과 평화의 감정처럼 자연스러웠 다. 그에게는 그런 단어에 메여서 죽음을 바라보는 그 자체가 관념이라는 것이다.
에크하르트 톨레는 <고요함의 지혜>에서 “삶과 죽음이 동시에 존재한다. 어디에도 죽음은 없다. 죽음은 삶의 반대가 아니다. 삶에는 반대가 없다. 죽음의 반대는 탄생 이다. 그리고 삶은 영원하다”고 했다.
그의 말에 의하면, “삶에서 가장 성스러운 것이 죽음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죽음의 수용과 명상을 통해서 신의 평화로움이 나에게 올 수 있다.”는 것이다.
디팩 초프라는 <우주리듬을 타라>에서 "죽음은 삶으로 들어가는 티켓이다. 영은 아무데도 없으면서 어디에나 있다. 생명력 자체는 영원하다. 어떤 무엇으로도 바뀌지 않는다. 새로운 무엇을 창조하려면 지금 있는 것이 죽어야 한다. 우리 몸-마음에서 지금 이 순간에도 일어나 고 있는 것이 죽음이다. 이 모든 차원에서 삶과 죽음이 항상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고 했다.
에크하르트 톨레는 <고요함의 지혜>에서 “인간의 체험이란 얼마나 짧고 덧없는 것인가. 이 세상에 탄생과 죽음을 벗어난 것, 영원한 것이 있는가"라고 했다.
캐롤라인 미스는 <영혼의 해부>에서 “우리는 죽음도 없고 삶도 없다는 지혜를 얻는다.”고 했다.
영적 지도자들에게 죽음이란 어디로 가는 것이 아니라 영혼의 주파수가 다르게 진동할 뿐이다. 이렇게 삶의 진동과 죽음의 진동이 달라도 모양만 바뀌는 것이기 때문에 그 어떤 것도 죽지 않는다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다.
영적 지도자들은 나에게 일어나는 어떤 감정도 부정하지 말고 그 느낌 그대로 받아들여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을 완전히 받아들이고 그 감정에 순응하라고 말한다. 이런 영원성을 깨닫기 위해 우리 는 지구별에 왔고 결국 죽음은 착각이었음을 알게 된다는 것이 영성 지도자들이 말하는 공통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착각 속에 두려워하는 그 죽음을 벗어나 영적인 발견을 하는 것이 우리가 명상적 자기탐구를 하는 이유라 하겠다.
모든 존재의 형상이 무상한 것임을 인정하고 죽음을 직면하면 더 이상 두려운 것은 없다고 한다. 고통과 슬픔을 부정하지도 무시하지도 말고, 생각으로 나를 피해자로 만들려고 할 때 그 감정 뒤에 무엇이 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우주의 파동 속에 함께 하는 우리는 우주의 리듬 속에 흘러가는 존재로, 태어난 적도 없고 죽을 수도 없다는 진실을 깨달아야 한다. 예상치 못한 죽음이 앞에 닥쳐 너무 힘들면 자신을 놓아 버리게 된다. 이 때 나를 벗어나면 자유의식을 체험하게 된다. 그 때서야 두려움이 사라진 평화로움이나 모 든 것이 있는 그대로 좋다는 깨달음이 온다.
죽음 앞에서 우리의 마음은 죽은 자를 위해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화가 나거나 슬퍼할 수도 있다. 죽음에 대한 시각이 두려움도 슬픔도 아닌 평화로움으로 일관하는 대표적인 영성작가는 디팩 초프라와 에크하르트 톨레다.
그들에게는 죽음을 맞이하고 임종을 지키는 것조차 성스러운 행위이며 대단한 특권이라고 했다. 누구나 죽음을 경험하지만 이렇게 죽음 앞에서 영혼의 평화로움을 이야기하는 걸 읽으면, 내가 영적으로 가야할 길은 여전히 멀리 있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