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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요 Mar 26. 2017

심리학으로 읽는 영화 이야기 #18 미스 슬로운

총알보다 빠른 자유, 슬로운이 쏘아 올린 작은 공

미스 슬로운은 최고의 승률을 자랑하는 로비스트다. 어느 날, 그녀 앞으로 정치계 거물이 나타나 총기 규제 법안을 철폐할 수 있도록 로비를 부탁한다. 망설이는 슬로운에게 아직까지 총기 규제 법안에 '등판'한 적 없는 여성을 끌어 들이자고 설득한다. 그러나 슬로운은 거절한다. 핑크색 포장지로 싸여 있어도 총은 총이라며.


그리고는 현재 몸담은 미국 최고의 로비 회사로부터 이직하여 총기 규제 법안을 옹호하는 3류 로비회사로 간다. 싸움은 지금부터다. 총기 규제 강화를 옹호하는 단 1표를 위해서라면 인간성과 도덕, 그리고 윤리를 버릴 수도 있는 슬로운. 팀내에 스파이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 누구도 믿지 못하고 독단적으로 팀을 이끌어 나간다. 게다가 팀원 중 총기 사고의 피해자이자 생존자인 매뉴체리안을 이용하여 값싼 동정표를 구걸하기도 한다.


슬로운의 활약으로 승리가 코 앞으로 다가온 시점에, 총기 규제 강화를 반대하는 세력이 그녀를 끌어내리기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써 청문회를 열게 된다. 그녀의 단점을 잡아내려 혈안이 된 반대파들에 맞서는 슬로운. 그녀는 의외로 깨끗한 로비스트였다. 별 소득을 건져내지 못한 청문회 쇼, 그 대단원의 막이 내리기 전, 슬로운은 반격을 위한 마지막 스퍼트를 올린다.



총알보다 빠른 자유, 슬로운이 쏘아 올린 작은 공


매번 미국에서 총기 사고가 날 때마다 드는 의문점이 있다. 자유의 나라 미국에서 왜 총 맞지 않을 자유를 보장해 주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반대로 생각하면 총을 살 자유를 보장해 주어야 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남의 자유를 침해하는 순간, 그것은 자유가 아니라 욕심이 돼 버린다. 그리고 그런 욕심은 철저히 제한 되어야 한다.


안타깝게도 미국 내 총기 관련 법안은 누구의 자유를 위한 것도 아니다. 총기 소지 허용으로 인해, 매년 수많은 희생을 치루면서도 섣불리 총기 규제를 못하는 배후에는 Money가 있다. 이러한 거대 자본에 의해, 썩어빠진 정치가들과 시스템의 콜라보로 총기 시장에 자유가 허용된 것이다. 이때 용기있게 팔을 걷어부치고 나온 여전사, 슬로운. 그러나 그녀 또한 누구의 자유를 보장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커리어를 위한 도전을 한 것이었다. 무조건 판을 뒤집어야만 했다. 최고의 승률을 자랑하는 로비스트로서의 명성을 이어가기 위해서라면.


똑똑한 슬로운은 총기 규제 법안을 통과 시키기 위해, 반대파를 설득시키는 것 보다는 반대파를 파멸시키는 작전을 택한다. 마치 반대파에서 슬로운을 끌어내리려 청문회를 열었던 것 처럼 말이다. 이미 총기 규제 법안은 윤리와 도덕, 양심을 떠나 이기고 지는 문제로 변질되었다. 총기 규제를 강화시키는 법안을 지지하려고 자신의 오랜 트라우마를 대중 앞에서 드러낸 매뉴채리안을 겨눈 총구는, 합법적으로 총기를 등록한 한 시민 영웅에 의해 거두어 진다. 이제는 선악과 윤리로는 풀 수 없는 문제가 된 것이다.


그래서 슬로운은 청문회를 연 스털링이 뒤로는 총기 규제 강화 법안의 반대파들과 손을 잡고 있었다는 사실을 폭로해 버린다. 폭로전에는 더욱 강한 폭로로 대응하는 그녀는 순식간에 판도를 뒤엎어 버린다. 해마다 총기사고로 몇명이 죽고, 유가족들은 트라우마로 고통받는다는 사실은 이제 대중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한다. 사람들은 자기 일 외에는 다 무관심하니까.


그러나 대중을 분노시키는 가장 쉬운 방법은 한 사람의 부정을 폭로해 버리는 것이다. 도마 위에 오른 <씹을 거리>는 대중이 가장 좋아하는 간식이다. 남의 오점을 물고 뜯는 사이, 어느새 자신은 청렴결백한 정의의 사도가 되어 있으니까 말이다. 슬로운의 작전은 먹혀 들어갔다. 사람들은 스털링의 부정에 눈이 뒤집혔고, 상대적으로 착해 보이는 법안에 찬성하기 시작한다. 이제 대중을 등에 업고 수정 헌법 제 2조에 맞서는 로비스트, 슬로운. 과연 그녀가 미국 사회에 날리는 회심의 한방은 무엇일까.

미스 슬로운이 가지고 있는 심리적 문제들


항상 잘 짜여진 삶을 살며, 불안과 긴장 속에서 살고 있는 슬로운은 수면제나 각성제 없이는 하루도 버틸 수 없는 '잘나가는' 로비스트다. 돈이 되느냐, 명성을 가져다 주느냐에 의해서만 움직일 것 같은 철의 여인 슬로운은 미국 사회의 최대 쟁점인 총기 규제 법안에 대해서만은 자신의 신념에 따라 옹호 캠페인 쪽으로 자리를 옮긴다. 업계 최고의 회사를 떠나 3류 기업으로 간 슬로운은, 재벌 총수들만 상대하다가 비영리 단체를 대상으로 영업을 시작한다.


자신의 성공을 위해 남의 약점을 이용하고, 동료를 배신하거나 감시하는 것을 스스럼없이 자행하는 그녀는, 사실 외로움을 떨칠 수 없어 에스코트(성매춘)를 받는 고독한 인물이다. 명성과 부, 지성과 미모를 갖춘 슬로운은 학업과 경력에 집중하느라 연애할 시간도 없었다. 때문에 이에 대한 보상심리로 매춘을 하게 되고, 청문회에서도 발목을 잡히게 된다.


그러나 그녀는 소시오패스처럼 성공을 위해 물불 가리지 않고 뛰어들지는 않는다. 슬로운은 최소한의 양심과 최소한의 도리는 지킨다. 단지 마음의 허기를 채우기 위해 명성과 커리어에 집착하는 것일 뿐이다. 스스로 마음의 안정을 구축할 수 없어서, 일의 성공으로 자존감을 유지한다. 매일 저녁 같은 식당을 찾아 같은 음식을 먹으며 하루의 노곤함을 푸는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바로 어떠한 일이 있어도 자신을 믿어 줄 가족과 친구다. 그들의 신뢰를 바탕으로 흔들리지 않는 확고한 자아를 갖고, 굳이 좋은 성과를 내지 않더라도 행복해 질 수 있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의지할 곳 없는 불안한 심리는 정신적 강박과 신체적 한계만을 낳는다. 심리적 허기는 주변인들의 신뢰와 사랑으로 채우고, 내면의 성찰을 통해 성공이나 명성 이외에 자아를 실현할 수 있는 것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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