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증금 반환받기까지 지옥 같았던 시간들
추석에 본가에 내려가서 태연하게 현 상황에 대해 얘기했으나 사실 속이 말이 아니었다. 낮에는 가족, 친구들과 신나게 놀다가 밤에 혼자 방에 있으면 온갖 보증금 사기 사건 후기를 찾아보고 소송 후기를 찾아봤다. 유튜브에도 블로그에도 정말 후기가 많았다. 각양각색의 사연으로 보증금을 받지 못한 사람들의 후기를 보면서 우울함이 밀려왔다.
보증금 반환소송을 하게 되면 임차인이 100% 승소하게 된다고 한다. 그래도 그 동안 발생하는 변호사 수임료, 성공보수를 부담해야 하고(승소하면 임대인이 소송비용까지 물게 할 수 있지만 법원이 정한 요율 내에서 청구할 수 있고 어쨌든 그 돈 돌려받기 전 까지는 원고가 우선 비용 부담을 해야한다.) 승소 후에 경매에 넘기려고 해도 또 경매 신청에 대한 수수료가 발생한다.(이 것도 경매 낙찰 후에 다 돌려받을 수 있긴 한데 낙찰 되기까지 묻어둬도 되는 목돈이 필요하다.)
나는 당시 수중에 있는 현금이 모두 집 밑에 들어간 상황이라 가용 현금이 전혀 없었고 부모님께 이런 일로 손 벌리고 싶지도 않았다. 그때 새 직장으로 이직을 앞두고 있었는데 직장을 퇴사하면 얼마간의 퇴직금이 수중에 들어올 예정이었다. 퇴직연금을 깨면 어마어마한 수수료가 들지만 이렇게라도 현금을 마련하는 방법 밖에 없었다. 어떻게 해야하나 고민하던 차에 갑자기 집주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계약 희망자가 나타나서 우선 계약금 일부 받으면 그거 먼저 드리겠습니다. 잔금은 받는대로 드리겠습니다.
우선 내 보증금의 10% 되는 돈을 먼저 받았다. 그리고 임차권등기는 잔금 받으면 풀어주겠다고 하고 우선 약속된 날짜까지 기다리게 되었다. 하지만 그 말을 전부 믿은 건 아니었고 언제든 나는 소송 해야할 수도 있다고 늘 마음 먹고 있었다. 그 동안 이사도 완료했고 새 직장으로 출근하기 하루 전, 갑작스런 연락과 함께 나머지 금액까지 모두 돌려받았다.
새 직장에 출근한 후에도 이 일이 해결이 안되면 어떻게 해야하나 고민이 정말 많았는데 정말 다행히도 출근 바로 직전 남은 보증금 전부 다 돌려 받을 수 있었다. 집주인이 그 동안 마음 고생 많으셨습니다 어쩌고 하고 장문의 문자를 보냈으나 그동안 화나고 슬펐던 마음이 너무 커서 그냥 답은 하지 않았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새로운 세입자는 정말 이 집에 대해 잘 알아보고 들어온 것이 맞을까 하는 약간의 걱정도 들었다.
임차권 등기 해제는 간단하게 전자소송 사이트를 통해 진행했다.(보정명령 뜨면 보정서류 제출하지 뭐, 집주인도 이걸로 맘 좀 졸여봐라 하는 치사한 마음이 들었다.)
임차권등기 신청에 대한 정보는 블로그에 굉장히 많았으나 임차권등기 해제 후기는 그렇게 많지 않았다. 신청했던 사람들 모두 잘 해결되어 가뿐한 마음으로 해제 후기는 쓰지 않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전자소송 홈페이지에서 취소 신청서는 간단하게 작성 가능하다. 물론 전자소송으로 하더라도 등기촉탁수수료, 등록면허세는 납부해야 하는데, 등록면허세는 etax에서 납부 가능하고 등기촉탁수수료는 신한은행에서 납부 가능했다.(다른 은행은 취급하지 않는 건지 안 보였음)
등기촉탁수수료는 얼마를 내야하는지 고지가 안되어 있어서 대충 감으로 내야한다.(나중에 차액은 돌려줌) 어떤 후기에는 오천원 정도라고 되어 있었는데 혹시나 하여 나는 2만원을 납부했다. 지금 찾아보니 14,828원이 환급되었는데, 이 수수료가 언제 변동되는지는 잘 몰라서 약간 여유있게 납부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신청서에는 2024. x. x 일자로 보증금 전액을 환급받아 임차권등기해제 신청합니다. 이런식으로 아주 간단하게 쓰고 수수료 납부 정보를 입력하고 등기부등본을 첨부하였다. 별도 보정명령 없이 임차권등기 해제도 일주일 안에 완료 되었다. 이로써 약 두달 간 나를 괴롭혀 왔던 보증금 미반환 문제는 잘 마무리 되었다.
다 잘 마무리 된 후 돌이켜보면 나 자신 외에 정부를 포함한 그 누구도 나의 편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나 싶어 신청했던 국토부 전세사기 피해자 신청에 대한 결과는 모든 것이 마무리 된 후 느즈막이 나를 찾아왔는데 이 문제 해결에 아무 것도 도와준 것도 없으면서 너는 피해자가 아니라고 굳이 굳이 여러번 나에게 알려주었다.
그나마 나의 경우에는 금전적 여유가 있어서 이사도 무사히 잘 했고 소송까지 가지 않고 운 좋게 보증금은 다 돌려 받았으나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정말 어땠을까 마음이 안 좋았다. 내 주변에서도 어렵지 않게 보증금 미반환 문제 피해자들을 찾을 수 있었다. 심지어 회사 사옥이 전세사기 당한 케이스도 있었다.
보증금 돌려줄 형편도 안 되면서 무작정 임대 놓고 임차인이 피해입든 말든 나몰라라 하는 악성 임대인들에게도 화가 났고 피해자가 이중삼중으로 고통받는 상황에서도 별 도움도 안 되는 정부 시스템에도 화가 났다. 그 동안 보증금 미반환 문제에 대해 찾아봤을 때 어떤 채널이든 결국 "임차인이 잘 알아보고 계약해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었다.
보증금 미반환으로인해 피해 입은 모든 분들의 문제가 부디 잘 해결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