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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우 Apr 16. 2024

플로팅 일기 #3_엉망진창이어도 괜찮아

4/9 ~ 4/14

2024.04.09. 화

 대체 무슨 부귀영화를 보겠다고 사업을 한다고 나섰을까 싶은 생각이 예고도 없이 치고 올라올 때가 있다. 회사 다닐 때는 자타공인 워라밸 신봉자였고, 주 5일도 부족해 주 4일제를 염원하던 나였는데, 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자발적 주 6일제 노동자가 되어 월급만큼만 벌어도 소원이 없겠네 타령을 하고 앉아 있으려니 현타가 오지 않을 수 없지 아니한가...!


 나는 애초에 좀 더 자유롭고, 좀 더 풍요롭고, 좀 더 여유로운 삶을 꿈꾸며 사업을 시작했기에 나의 궁극적인 목표는 내가 없어도 돌아가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이다. 그러나 현실은 비루할 대로 비루해서, 회사 다닐 때와는 비교도 안 되는 강도로 온 사지가 얽매여 있는 형국이다.


 오늘 왜 이렇게 징징대냐면... 골목이 진짜 역대급으로 조용해서 개시 손님이 마지막 손님 되게 생겼기 때문 ^^ 솔직히 장사라는 게 잘되는 날도 있고, 안 되는 날도 있는 거지, 하루 공쳤다고 집 가서 울고 뭐 이런 스타일 전혀 아닌데요, 돈을 못 벌면 일이라도 없어야지 왜 일이 더 많냐고요...!


 나는 누군가에게 희망을 주기엔 조금 글러먹은 것 같다. 그래서 말인데요 여러분, 그냥 회사 다니세요. 당당하게 월급루팡도 좀 하고, 퇴근하면 상사 욕 사장 욕이나 실컷 하면서 맥주 한잔 할 수 있는 삶이 최고인 것 같습니다. 진짜로요.

돈은 못 벌어도 쓸 일은 천지고요, 오늘은 플로팅 문 앞 익스테리어 한번 해 봤습니다 ^_^

 2024.04.10. 수

 나만 빼고 다 쉬는 선거 날! 오늘은 진짜 아침부터 출근하기가 너무 싫어서 미적대다 지각할 뻔했다. 다행히 지각은 안 했지만, 오전에 잡아뒀던 줌 미팅 일정을 까맣게 잊고 있었...! K씨, 만약 이 글을 읽게 되신다면, 다시 한번 사죄드립니다 ㅜㅜ


 오늘은 휴일이어서인지 손님이 제법 있었고, 온라인몰을 위한 상세 페이지 작업도 하나 했다. 퇴사하고 디지털 문구 제작을 잠깐 했었는데, 그걸로 밥벌이 좀 해 볼까 했지만, 나는 역시 물성이 있는 물건이 좋더라. 아무튼 그래도, 그때 상세페이지 열라 만들어댄 게 헛것은 아니었는지 생각보다 수월하게 상세페이지 작업 완료. 사진만 누가 대신 찍어주면 좋겠다....ㅜ

 

 1인가게 사장이 온라인까지 하려면 정말이지 일당백을 해야 되는데, 그래서 요즘 내 포지션은 판매원, 마케터, 웹디자이너, 웹퍼블리셔, 포토그래퍼 등등 셀 수도 없이 많고, 어느 것 하나 똑 부러지게 해내지 못하고 있다. 쩝. 먹고살기 쉽지 않네 ^^ 온라인몰 정식 오픈은 언제쯤 할 수 있을런지..


 그래도 오늘은 골목이 조용한 와중에도 손님이 많이 찾아 주신 매우 감사한 날로, 퇴근하고 당당하게 맛난 거 먹어도 될 것 같다. 서교동 방문하실 일 있으시면 닭꼬치 맛집 모닭모닭을 추천합니다. 빨리 퇴근하고 닭꼬치 먹으러 가야지!

가진 건 열정뿐인 사장의 하루. jpg

2024.04.11. 목

 오늘은 플로팅 오픈하고 처음으로 지각을 했다. 9분...! 자랑은 아니지만 나는 학창 시절부터 프로 지각러로 이름 좀 날리는 인간이었는데, 회사원이 되고서야 그 버릇을 고칠 수 있었다. 아무튼 한때 지각 좀 해 본 사람으로서, 솔직히 지각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문제다. 사장이 되고부터는 지각한다고 뭐라 할 사람은 없지만서도, 원래 남과 한 약속보다 나와한 약속을 깨는 게 더 어려운 법..! 12시 오픈하자마자 손님이 들어오는 경우는 지금껏 한 번도 없었지만 그래도 매우 찝찝한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게 되었다.


 지난주에 주문을 많이 한 관계로 오늘 하루의 대부분은 상품 입고 잡는 데 할애했다. 상품이 입고되면 후단으로 따라붙는 일이 생각보다 많다. 일단 전산 입고를 잡아 재고 수량을 맞춰야 하고, 재입고의 경우는 바코드 출력 및 붙이기, 신상 입고의 경우 바코드 작업 및 바코드 붙이기 등의 잡무들을 수행해야 한다. 이 모든 일들을 다 끝내면 진열을 하게 되는데, 진열 위치도 이만저만 고민되는 게 아니다. 이래저래 귀찮은 일 투성이.


  주 6일제 노동자의 삶이 생각보다 버겁게 느껴지는 탓에 되도록 야근은 하지 말자 다짐했지만, 자영업자의 삶이란 마음먹은 대로 흘러가는 법이 없다. 지금 시각 저녁 9시 22분. 오늘 하려고 마음먹었던 일들의 대부분을 하지 못했음에도 벌써 이 시간이라니...! 오늘은 대충 9분 지각한 벌이라고 생각하도록 하자. 


 아! 오늘 온라인몰 PG심사가 통과되었다. 이제 온라인 판매로 돈을 벌 수 있게 됨! 그러나 오픈까지는 아직도 가야 할 길이 구만 리인데 오늘은 온라인몰 작업은 손도 못 댔다... 못다 한 일은 내일의 나에게 토스할 수밖에.

일기가 생각보다 길어져서 며칠 치를 쌓아서 올리는 게 읽는 이들에게 피로도를 선사할 것 같아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아무튼 일기를 쓰는 게 나의 정신건강에는 제법 도움이 되는 듯하다. 


스피드랙 천장에 줄조명 설치. jpg 이런 거 하느라 야근합니다 ㅋㅋ 이것이 바로 자영업자의 길

2024.04.12. 금

 어제 10시 넘어서 퇴근하고, 오늘은 무조건 칼퇴한다 다짐했지만, 왜 또 할 일을 다 못한 걸까...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르게 흘러가 버린다. 오늘의 특이사항은 교보문고 엠디분이 고객으로 방문하셨다가 플로팅 셀렉 상품들이 좋다고 하시며 명함을 주고 가셨다. 지난달에는 스타필드 엠디분들이 와서 똑같은 멘트와 함께 명함을 남기고 가셨는데, 사실상 현재 플로팅은 제조업체가 아니기 때문에 외부 입점을 하기에는 현실적으로 이득은 아닌 상황. 그래도 플로팅의 컨셉이나 셀렉 스타일을 인정받는 것 같아 기분은 매우 좋았다!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브랜딩 없이는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브랜드가 되기 위해서는 자상품이 필수 요소라고 생각했던 시절도 있었지만, 플로팅을 기획하며 그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편집하느냐에 따라 편집숍도 그 자체로 브랜드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이미 [29cm], [무신사], [포인트 오브 뷰]와 같은 좋은 선례들이 있고, 그들의 발자취를 따라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후에는 플로팅도 플로팅만의 상품을 개발하여 제조업체로서의 변별력까지 갖추도록 노력해 나갈 예정!


 또 하나의 특이사항은 인센스 수입 업체 헤븐센스에서 입점 제안이 들어왔다는 것. 인센스 매입에 대해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확신은 없어 망설이고 있었는데, 헤븐센스를 통해 조금 시작해 볼까 싶기도 하다. 향과 관련된 책을 페어해서 향기 코너를 만들면 재밌을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오늘도 버는 거 없이 바빴던 하루 끝-! 

플로팅에는 책을 교환할 수 있는 공유서가가 있습니다! :)

2024.04.13. 토

 사장이 되고 깨닫게 된 새로운 사실! 사장도 출근이 하기 싫다...! (참나... 제가 쓰고도 어이가 없네요. 제가 이상한 걸까요?) 금요일 저녁쯤 되면 귀신 같이 혓바늘이 돋아나고, 누적된 피로감이 피부로 와닿으며 미친 듯이 쉬고 싶어 진다. 그래도 도망칠 곳은 없으니 출근을 해야지!


 오늘은 플로팅 오픈 이래 가장 한가한 토요일이었고, 덕분에 여러 잡무들을 처리했다. 일단 블로그 포스팅을 개나 올렸고, 온라인몰도 바닥 작업은 거의 완료, 이제 상품 등록만 하면 오픈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장부 정리도 했고, 책 주문도 하고, 화분 물도 주고, 뭐 대충 기타 등등의 일들을 하며 하루를 보냈다. 그리하여 오늘도 비록 돈은 별로 못 벌었지만 칼퇴는 실패. 하, 인생.....


 온라인몰 준비를 열심히 하고 있긴 하지만, 진짜 오픈한다 생각하면 막막한 것들이 한둘이 아니다. 택배 박스, 포장 방식, 기타 등등의 프로세스를 어떻게 플로팅의 색깔까지 녹여내어 잘 처리할 수 있을지 열심히 짱구를 굴려 보지만 솔직히 잘 모르겠다. 매장 공간도 비좁아서 택배 포장이나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의문... 

 내일이 보이지 않을 땐 오늘만 사는 수밖에 없다. 쓸데없는 생각들은 전부 집어치우고, 지금 당장 해야 할 일들에 집중하기. 이것이 요즘 나의 슬로건 되겠다.


 오늘의 특이사항 : 플로팅 앞집이자 한국식 쌀국숫집 옥자 사장님이 생활의 달인에 나오시려나 봄. 아까 우연히 촬영하는 것을 목격하여 괜히 아는 척했다가 인터뷰 비슷한 것을 따게 되었는데, 어쩌면 저도 TV 나올지 몰라요!(안 나옴) 옥자는 이미 줄 서서 먹는 맛집이지만 방송 나오면 더 잘되겠지...? 그럼 이제 우리 플로팅도 손님이 늘겠....? 날로 먹을 생각에 신나게 돌아가는 희망회로 

 좌우지간 저는 옥자를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플로팅 건물 간판 생김! 보시는 바와 같이 금손들이 많은 건물이라 모두 함께 뚝딱뚝딱 만들었는데 예쁘죠? :)

2024.04.14. 일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칼퇴한다는 마음으로 조금 일찍 일기를 쓰기로 했다. 일기를 쓰는 건 마음 수련 측면에서 매우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콘텐츠로서의 가치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나는 일기 쓰는 것을 나름의 낙으로 삼게 되었다. 일종의 하소연 광장 같은 느낌이랄까?


 이번 주는 갑자기 해탈을 하게 된 것인지 일매출에 대하여 일희일비하던 마음이 일순간 사라져 버렸다. 출근하면 데이 다이어리에 그날의 투두리스트를 작성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작심한 일과들을 하나하나 클리어하며 바쁘게 하루를 흘려보낸다. 내가 가장 뿌듯하게 퇴근하는 날은 매출이 많은 날보다 작심했던 일들을 모두 끝낸 날이다. 그런 날이 매우 적기 때문에 희소가치가 높다.


 그렇게 치면 오늘은 평소와는 조금 다른 하루였다. 투두리스트를 공백으로 비워둔 채, 간간히 책을 읽거나 멍을 때리기도 하며 시간을 때웠다. 혼자 일하는 것이 버거울 때도 물론 있지만, 사실상 나는 혼자 일하는 것이 제법 적성에 맞는 모양이다. 딱히 누군가와 말이 하고 싶다거나 외롭다는 느낌은 없다. 그냥 물리적인 노동량이 많을 때 일손이 하나라도 더 있었으면 하고 바라게 될 뿐. 아무튼 오늘은 별생각 없이 놀멍쉬멍 보낸 것 치고는 매출도 꽤 양호한 수준!


오늘의 특이사항: 위 사진에 보이는 바구니 실종 사건! 거리에서 플로팅 내부가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행인의 시선을 끌기 위한 후킹 용도로 바구니를 외부에 걸어두었는데, 정신 차리고 보니 바구니가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정말 누군가가 집어간 걸까? 아직도 믿기지 않지만 아무튼 바구니는 사라졌다. 이제 외부에 물건을 내놓는 일은 그만두어야 할 듯.

내 자리에서 고개만 들면 보이는 위치였는데.... 

PS : 일주일치를 몰아서 올리니 너무 길어지는 것 같긴 한데요... 그렇다고 또 매일 올리기엔... 못 쓰는 날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요 ㅜ 대부분 영양가 없는 소리들이니, 지루하시다면 과감하게 스킵해 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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