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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도 고양이 Aug 02. 2024

젤리를 이 정도로 사가면
세관에 걸릴지도 몰라

이제 집에 가자

푸꾸옥에서의 마지막 아침이 밝았습니다.


이따가 밤 비행기예요. 오늘은 뭘 할지 전혀 정하지 않았습니다. 첫날 산책했던 골목들이나 가보지 않았던 갈림길, 문득 생각나서 궁금했던 가게나 공항 활주로 옆 뻥 뚫린 시원한 도로를 달려보는 일, 등 그때그때 생각나는 일들을 하기로 했어요. 킹콩마트에 들러서 기념품도 사고요.


마지막 조식을 먹은 후 여행길에 올랐습니다.


첫날 갔던 바다와 닿아있는 골목


시원하게 달리다가 지도를 보며 숲으로 된 골목골목 사이를 돌아다녔어요. 여기로 들어가면 큰길이겠다, 하면서 다니다 보니 얼마나 되었다고 그새 눈에 익은 풍경이 나와 아주 반가웠어요. 처음 묵었던 숙소 앞에서 고양이를 찾아 기웃거려보기도 하고 가지 않았던 갈림길의 골목의 귀여운 요가원 간판을 보며 시간이 안 맞는 걸 아쉬워하기도 했어요.


처음 산책한 바다가 닿아있는 골목을 다시 가보고, 역시 수미쌍관 여행이 좋다 생각했습니다. 처음 오는 낯선 나라에서 향수가 느껴지는 건 정말 신기하고도 아련한 경험이에요. 눈에 들어오는 가게들이 있으면 한 번씩 들러보기도 했습니다. 여러 가지 신기한 게 많았어요. 거대한 뱀술이라든가...


돌아보고 오는 길에 점심을 먹기로 했습니다. 숙소 근처에 파인애플 볶음밥을 예쁘게 담아 파는 곳이 있다고 해서 들러보았어요. 스프링롤도 팔았는데 크기가 거의 우리나라 김밥정도 되더라고요. 한입 가득 베어 물으니 안에 들은 두툼한 어묵이 신기한 식감이었습니다. 볶음밥은 파인애플을 반으로 잘라 속을 비우고 채워 나왔는데요, 새우와 파인애플 식감이 아주 좋았어요. 사진도 예쁘게 나왔고요.


하지만 다른 맛집이 많아서 맛을 추천하자니..


밥을 먹고 우리는 TUC 카페로 향했습니다. 가장 처음 갔던 카페이고 코코넛 커피와 에그커피가 맛있던 곳이었지요. 처음 왔을 때 중부로 오게 되면 꼭 또 들러보자고 했던 그 집입니다. 두 번째 오니 또 느낌이 새로워요. 더 많은 게 보였습니다. 청소 안 한 선풍기가 돌아가는 거나 기둥을 오르는 도마뱀, 외벽에 붙어있던 포스터가 사실은 베트남의 마케팅 회사에서 만들던 브랜딩 마인드 맵이었다거나 하는 사소한 것들이요.


짜다 정말 맛있었어요


코스터 위에 짜다를 능숙하게 받아 마십니다. 문득 코스터에 적힌 단어가 궁금했어요. 

번역기를 켜서 비추어보니 의미가 마음에 듭니다. 


결혼기념일에 어울리는 단어로군요
패션후르츠 티와 코코넛 커피


차 한 잔 하니 어느덧 체크아웃 시간이 되었습니다. 짐을 빼고 로비에 캐리어를 맡아달라고 부탁했어요. 우리는 기념품을 사고 저녁을 먹은 뒤에 공항으로 출발할 예정이었습니다. 기념품을 살까 싶어 가족에게 뭐가 좋은지 물어보니 망고젤리를 한가득 사 오랍니다. 그게 너무 맛있었대요. 얼마나 맛있길래 그러지 싶어 우리도 망고젤리를 사 보기로 했습니다. 망고젤리가 가득 담기자 예전에 아버지께서 외국에 사업차 나가실 때 캐리어 가득 현지인 선물로 채워갔다가 장사하려는 줄 알고 공항에서 마찰이 약간 있었다던 이야기가 기억났습니다. 우리도 그럴지도 모른다며 농담했어요.


그리고 콘삭커피. 커피를 좋아하는 저에게는 빼놓을 수 없었던 선택지입니다. 솔직히 G7이 제일 맛있긴 한데, 이왕이면 현지에서 현지느낌 나는 제품으로 더 구매해 가자 했어요. G7은 코코넛 커피 버전이 있길래 이걸 챙기기로 했습니다. 콘삭 커피, 그러니까 다람쥐 커피도 1회용 드립백 방식으로 되어있는 걸 몇 박스 샀어요. 아, 다람쥐 커피가 가끔 다람쥐똥 커피라고도 불리는데 아무래도 고양이똥 커피, 루왁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하지만 루왁과 다릅니다. 


다람쥐는 브랜드 로고로 뭐가 좋을까 하다가 다람쥐가 귀여워 보여서 마스코트가 된 케이스라고 해요. 기후 특성상 커피의 장기보관이 어렵고 맛이 빨리 변해 이를 방지하기 위해 헤이즐넛향을 입힌 커피를 고안했다고 합니다. 그때 만든 브랜드가 콘삭이라고 해요. 그러니 다람쥐똥 커피라고 하면 다람쥐 입장에선 좀 억울한 거죠.


유래는 헤이즐넛이라고 하는데 일반 커피에도 콘삭 마크가 있더라고요. 아무래도 평소에는 헤이즐넛향 커피를 선호하지는 않지만 이게 근본이다 싶어서 일반 커피와 헤이즐넛 모두 집었습니다. 아! 푸꾸옥은 후추가 유명하다고 해요. 빼놓을 수 없지요. 후추도 통에 들어있는 거, 봉투에 진공포장 되어있는 거 등등해서 화이트, 레드, 블랙페퍼를 종류별로 집었습니다.


엠빌리지 로비에 있던 우리 짐


뭔가 베트남에서 프라이탁이 부러웠는지 비슷한 콘셉트를 가진 포대자루들로 만든 동전지갑이나 파우치도 사고, 굉장히 세련되어 보이는 자수 자갑도 샀어요. 이런 게 역시 로컬이지, 하며 만족한 쇼핑을 했습니다. 둘 다 한가득 양손에 비닐봉지를 들고 가게를 나왔어요.


이제 마지막으로 저녁을 먹고 공항으로 가기로 합니다.

어디가 제일 좋았냐고 아내에게 묻는 제 물음에 저번에 간 메오키친이 기억에 남는다더라고요.


노을... 빨라...!!


가는 길에 롱비치센터 옆으로 멋지게 지는 노을이 저 멀리 보였습니다. 저걸 봐야 한다며 스쿠터를 세우고 주차장 옆, 공터로 이어지는 내리막길로 서둘러 달려갔어요. 그런데 반도 채 안 내려갔는데 해가 이미 다 졌더라고요. 둘이 멍하니 보다가 방금까지 푸꾸옥에서의 마지막 해가 예쁘게 떠있었는데. 하며 멍하니 서서 하늘을 보았습니다. 참 빠르다, 하며 다시 식당으로 향했어요.


이번에는 반쎄오와 모닝글로리 볶음을 시켰습니다. 메오키친의 반쎄오는 또 어떤 맛일지 궁금했고 모닝글로리는 여기 걸 또 먹어야 아쉬움이 덜하지 않겠냐는 생각이었어요. 그리고 이 선택은 참 훌륭했습니다. 어쩜 이렇게 맛있단 말인가요. 바삭바삭한 반쎄오의 반죽에서 흘러나오는 기름과 소스가 딱딱한 라이스페이퍼에 싸서 먹을 때 만들어내는 다양한 식감 사이로 흘러나와 입 전체를 감칠맛으로 꽉 채워주었습니다. 이건 정말 너무 맛있어요.


또 먹고 싶어요


그렇게 행복한 마음 품고 공항으로 출발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열흘 전 우리의 행동을 매우 후회하게 되었지요. 하하하, 우리가 분명 양손 가득 기념품을 샀다고 했지요? 그리고 기억나시나요. 열흘 전 떠날 때 수하물 무게가 거의 한계 근처였다고도 말했었고요. 


그렇습니다. 우리는 영락없이 캐리어의 무게를 초과해 버린 것이지요. 추가금이 얼마냐고 물었는데 우리 비행기표값 보다 비싸게 나왔습니다. 하하하, 우리는 줄 뒤로 가서 캐리어를 열고 짐을 줄이기 시작했어요. 공항에 저울도 없어 감으로 해야했습니다. 땀을 흘리며 버릴 것은 과감하게 버리고 손에 들 수 있는 건 웬만하면 들었습니다. 재밌는 건 우리가 꽤 일찍 도착해서 줄 앞이었는데요. 몇 번인가 거부당하고 다시 짐 줄이기를 반복하는 동안, 다른 사람들도 하나 둘 뒤로 오기 시작하더니 다들 캐리어를 열고 짐을 줄이고 있더라고요. 괜한 동지애가 느껴졌습니다.


이 정도면 무게 맞나? 싶어도 줄 서서 기다렸다가 무게 달아보니 또 초과하고, 다시 짐을 빼고 하기를 반복, 결국 네 번? 다섯 번의 도전 끝에 망고젤리가 넘칠 것 같이 들어있는 커다란 비닐봉지를 하나씩 들고서야 무게를 간신히 맞출 수 있었어요. 그래도 그게 뭐가 재밌다고 들어가서 의자에 앉아 안도의 숨을 쉬며 피곤한 표정으로 웃었습니다.


동부에 떠있던 고기잡이 배들


출국하니 푸꾸옥 동부 해안이 보였습니다. 저 어딘가에서 참 행복하게 쉬었는데, 고양이는 잘 있으려나 하면서 고기잡이 배들의 불빛을 보았어요. 숙소에서는 저 멀리 수평선에 겹쳐 보여서 이렇게까지 배가 많은 줄은 몰랐어요. 그리고 위에서 보니 이게 뭐라고 눈에 익어 반가워 보였습니다.


기내식을 주지 않았던 게 기억나 주전부리를 바리바리 싸서 손가방에 넣었었는데요. 먹을 기운도 없이 피곤해 안대를 하고 잠을 청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 거의 근접해 동틀 무렵, 강렬한 햇빛을 받으며 잠에서 깼어요.


눈으로 보기엔 멋있었는데


참 잘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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