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꽃에 물을 듬뿍 줄 거야. 물이 넘치고 넘쳐흘러 꽃의 잎과 날개들이 하늘을 향해 훨훨 날아올라버릴 때까지, 방아깨비들이 공기를 순환하여 해리단길 곳곳에 아름다운 열매로 다시 피어오를 수 있도록, 내가 가진 사랑을 마구 퍼줄 거야.” 햇빛이 유난히 다정하게 손을 뻗은 해리단길의 따스한 오후는 마치 악기들이 반갑게 인사하며 한 곳에 모여있는 것 같았다. 창밖에는 하얀 햇빛들이 직선으로 카페 안을 침투해왔고, 덕분에 테이블 위에 놓인 따듯한 아메리카노 한 모금을 머금으며 타이핑을 계속하였다. 한 글자, 한 글자 글을 적을 때마다 저 햇빛들이 반갑게 잘했다고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것 같았다.
동성로를 다녀온 이후로 한동안 흔한 반복적인 일상만 접해오다 다시금 안에서 끓어오르는 도전 언저리 즈음에 위치한 새로운 각성을 하기 위해 1년 만에 이 곳에 모였다. 머릿속의 엔도르핀은 말할 것도 없고, 쓸모없는 하소연 같은 것은 저 멀리 날려 보낸 지 오래다. 맑고 투명한 잎새만 남아 방아깨비들이 자유롭게 카페 안을 누비며 사람들의 마음을 정화시켜주기에 바빴다. 환경의 영향은 과연 이런 것일까. 나는 여행을 하기 위해서, 새로운 영감을 받기 위해 1시간의 거리를 감수하고 해운대, 그곳의 해리간길의 어느 카페에 앉아 있었다.
불현듯 혜리가 다정하게 내 손을 잡았다. “괜찮아. 괜찮아. 다 잘 될 거야” 혜리는 두 손을 꽉 잡았다가 다시금 느슨하게 손을 뻗치며 다정하게 안아주었다. 손가락 끝 마디로 익숙하고 예상대로 물 흘러가듯 글을 적고 있으니 세상 어떤 즐거움보다 행복한 내가 된 것 같았다. 꽃들의 향기와 새하얀 햇빛들이 나를 환영한다며 반겨주었기 때문에 마치 홈에 온 듯 편안하게 혜리를 맞았다. 영원히 잊지 못할 추억을 남기려 하기보다 훗날 순간순간 추억에 남을 만한 시간 정리를 하기 위해 메모도 하였다. 원하고 생각하려는 대로 글을 적는 것이 이런 기쁨이었구나, 혜리와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느덧 혜리의 햇빛은 저만치 물러가고 저기 맨 꼭대기에 있던 셀리가 놀러 와 주었다. 달처럼 밝은 셀리를 야외 테라스에서 바라보고 있으니 그동안 쌓여왔던 속내를 시원히 털어놓을 수가 있었다. 꽤나 오랫동안 알고 지낸 우리들은, 그동안 과연 어떤 공감과 불편함을 겪어왔을까. 셀리가 환하게 비추고 있기 때문에 굳이 허심탄회하게 말하지 않아도, 최근의 안부를 다독거리며 과거의 지난날은 그저 과거로 족하게 되었다. “저기 멀리 보이는 달빛이 우리들의 마음을 하나로 만들어줄 거야” 그러다 문득 셀리를 가까이 두고 싶어, 손을 뻗어보았다. 근처에 가보기도 하였고, 높이 점프를 해 동공을 가까이 데어 보기도 했지만, 셀리는 그저 지금 바라보고 있는 그곳에서 우리들을 환하게 밝혀주기만 하였다. “그래, 셀리는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적당한 곳에서 우리들의 근심을 덜어주려는 거야” 어쩌면 뭘 하지 않고서라도 현재에 충실한 게 나아 보일지도 모른다.
내가 혜리와 셀리를 해리단길에서 만났을 때, 혼자가 아닌 누군가와 함께 만났을 때 더욱더 의미가 있고 따뜻한 감정이 만들어졌다. 시간은 흘렀고, 이별할 시간이 다가왔다. 혜리와 셀리가 없는 지금, 귓가에 흘러나오는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의 가사만 남았을 뿐이었다. 가사 중에 유독 시리 한 소절이 떠나가질 않았다.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만남이라는 것은 이별하기 위해서 만나는 것일 수도 있다. 이별이라는 것은 또다시 만나기 위해서 이별하는 것일까. 그렇게 혜리의 햇빛과 셀리의 달빛이 눈가에서 흐려져간다.
*writer, poet / 즈음: 일이 어찌 될 무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