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 알바를 하며 떠오른 생각들
요새 책방에서 알바 비슷한 것을 하며 지내고 있다. 공공에서는 얼어붙은 취업시장에 청년들이 어떻게든 비집고 들어갈 수 있도록 다양한 일경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공공일자리도 아니고 인턴도 아니고 내가 참여하고 있는 것은 일경험 프로그램. 인턴도 아르바이트도 경력직을 선호하는 사회에서 일경험 프로그램은 사회로 진입하려는 청년들이 출발선에서 만날 수 있는 공공 지원 정책이라 볼 수 있다. 공공기관에서 청년 아이템만 5년을 붙들고 있던 터라 퇴사 후에도 청년 지원 정책 뉴스를 꾸준히 살피게 됐고 덕분에 살면서 한 번쯤은 해보고 싶었던 책방인으로서의 하루들을 살아보는 중이다.
때아닌 선거와 현충일로 빨간날이 가득했던 지난주엔 책방 주인인 나의 멘토분의 휴가 일정도 포함되어 있었다. 혼자서 책방을 운영한다는 책임감에 묘하게 기분이 좋아졌다. 책방 문을 열고, 환기를 시키고, 취향에 맞는 음악을 틀고, 곳곳에 있는 조명을 켜는 업무 준비 과정은 묘하게 설렜다. 마치 ‘책방인의 하루’라는 브이로그를 처음 찍는 사람의 기분이랄까. 키오스크 결제기를 켜기도 전에 들어온 손님을 보며 ‘오늘 장사가 대박 나는 것은 아닌가’하는 극N 마인드로 상상의 나래를 펼쳤지만, 첫 손님이 빠르게 결제하고 떠난 책방은 꽤 오랫동안 한산했고 일경험을 하러 온 나는 혼자서 여유로운 북카페에 앉아있는 것 같은 하루를 보냈다. 한가하고 평온한 하루였지만 동시에 아쉬운 마음도 들었다. 사장님 없이도 매출을 팍팍 올리는 우수 사원이 되고 싶은 원대한 꿈이 나도 모르게 있었나 보다.
홀로 책방을 지키는 다음날도 책방은 조용했다. 궁금해서 들어온 손님들은 책과 굿즈를 구경하다 조용히 나가거나 ‘굿즈 귀엽다’ ‘책 소개 손글씨 예쁘다’ 등의 대화를 함께 들어온 사람들과 주고받다 책방을 떠났다. 읽고 싶은 책을 마음껏 읽으며 좋아하는 책을 소개하고 판매하는 고상한 일자리는 매출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는 현실을 체득하며 내적 좌절을 겪던 찰나, 꼬마 손님과 아빠로 추정되는 손님이 책방에 들어왔다. 태교하던 때 매일 읽어주던 책을 만난 게 너무 반가웠던 아빠 손님은 딸이 뱃속에 있을 때, 지금보다도 더 작고 어린 아기였을 때 아빠가 매일 밤 읽어주던 이 책을 기억하는지 물어봤지만 꼬마 손님은 아빠가 얼마나 신나는 상황인지 별 관심이 없는 것으로 보였다. 빨리 나가고 싶어 하는 딸의 손을 잡고 “또 올게요”라고 말하고 떠난 아빠 손님은 정확히 한 시간 뒤, 아내와 아들까지 데리고 책방을 다시 찾아왔다.
진짜 다시 올 줄 몰랐던 손님이 돌아오자 지나가던 손님들도 들어와 책들을 구경했고 오랜만에 책방은 사람들로 북적북적했다. 첫 방문과는 다르게 꼬마 손님은 같이 온 남매 오빠와 책방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먼저 봐둔 것들을 신나게 재잘댔고 알록달록 컬러링북과 같은 식물도감을 골랐다. 책에 관심이 많은 아빠는 남매가 각자 안고 온 식물도감을, 그러니까 똑같은 책 두 권을 구매했다. 부디 남매가 식물도감에 흥미를 잃지 않고 책의 빈칸들을 끝까지 채우길 바라며 포스기를 눌렀다. 부모라는 역할에 따라오는 무게와 자식을 향한 무한한 사랑이 책방을 가득 메운 순간이자, 매출이 생겼다는 사실에 신이 난 시간이었다.
나 홀로 책방지기 시간은 별 탈 없이 끝이 났다. 가게 불을 끄고 문을 잠그고 집으로 향하는 밤. 오랜만에 일을 하는 뿌듯함과 아쉬움이 은은하게 올라왔다. 주인의 마인드로 손님을 대하고, 좋은 성과를 만들어내고 싶다는 마음이 생긴 게 참 오랜만이라서 그런 것 같다. 참 오랜만에 좋아하는 일을 한 기분, 참으로 오랜만에 쓸모 있는 사람으로 생활한 기분. 마냥 즐거워야 할 퇴근길에 더 잘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우려낸 아쉬움이 한스푼 들어갔다는 건 내가 쉴 만큼 푹 쉬었다는 걸 방증하는 모습이겠지. 좋아하는 일을 경험해 보고, 잘 해내고 싶은 마음이 드는 일과 순간들에 집중하는 모먼트가 늘고 있는 요즘. 오랫동안 고립과 단절을 택한 나의 재사회화 과정은 순항 중인 게 아닐까 싶다.
휴가를 마치고 돌아온 사장님에게 책방 열쇠를 반납하러 가는 오늘, 집안 간식 창고에서 봉지 과자 삼 종 세트를 꺼내 예쁜 쇼핑백에 넣고 책방으로 향하는 길에 괜스레 흥이 났다. 누군가를 챙길 줄 아는 사람, 어디서 무엇을 하든 쓸모 있는 사람이 되어가는 여름이길 바라며 일경험에 집중하는 6월을 보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