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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일지 마지막 편

안온한 동네서점에서 일경험을 마무리합니다.

by 뮤슈만
좋아하는 것을 마음껏 드러내는 독서모임. 새로웠다. 그리고 즐거웠다.

서점에서 일하는 마지막날. 유난히 책방에 사람이 복작복작했다.

국제도서전에서 골라온 책을 자랑하고 읽는 독서모임이 있었고, 대학생 동아리에서는 전시회 준비를 위해 책방을 찾아왔다. 올해 초부터 독립출판 책 쓰기 모임에 참여했다는 분은 초본을 들고 서점을 방문하기도 했다.

한 팀이 나가면 또 한 팀이 들어오고. 손님이 끊이질 않는 책방 풍경. 일하면서 처음 마주한 분주함이었다.


연달아 진행된 모임에 참여하고 루틴 한 책방 업무를 하고 나니 어느새 퇴근이 코 앞.

그래도 마지막날이니까 아쉬운 마음이 든다던지, 하나의 프로젝트가 끝났을 때 찾아오는 후련한 건지 허한 건지 모르겠는 요상한 울렁거림이 있을 줄 알았는데, 평소와 다를 바 없이 퇴근했고 밥을 먹고 운동을 했고, 나는 책방업무가 종료됐음을 미련 없이 받아들였다.


책방 사장님과 ‘감사하다’ ‘덕분에’를 주고받고 주고받느라 퇴근 인사만 열 번은 넘게 한 것 외에는.


오고 가는 사람이 많아서 기분 좋았다는 것 외에는.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안온했던 책방에서의 하루.

마지막 날적이를 끄적끄적, 기증하려고 가져온 책들을 POS기에 직접 입력하고, 바코드를 뽑아 붙이고, 책방 서재에 비치될 나의 섬을 만들었다. 나의 섬이름은 중력무중력섬.

나는 좋은 책을 만나고, 좋은 글을 읽고, 좋은 사람들 이야기를 듣고, 좋은 글을 쓰는 책방에서의 생활을 좋아했던 것 같다.


좋아하는 마음은 여전히 남아있다.

다만, 유토피아 같기도, 안전지대 같기도 한 공간에서 이제는 나와야 할 때임을 알아챘을 뿐.


일경험이 끝난 나의 하루는 또 나름의 일과대로 굴러가는 중이다. 좋아하는 것들을 마음껏 표현하고, 좋아하는 것들을 마음껏 얘기하고, 좋아하는 것들을 여기저기 끄적이는 데 주저함이 없어졌다는 게 일하기 전과 달라진 점인데, 책 때문인지 사람 때문인지 일경험 그 자체 때문인지는 좀 더 지켜봐야 될듯하다.

나를 표현하는데 자신감이 넘치고, 나를 드러내는데 두려움이 없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그런 사람들 영향을 알게 모르게 많이 받은 것 같다. 신선하고 새로운 말 그대로 좋은 자극들.


힙한 동네 책방과 같이 따뜻하고 평온한 공간에서 좋아하는 책과 글과 이야기에 푹 빠져보는 시간들을 앞으로도 많이 만들고 싶다.


마지막 날적이와 기증책과 열쇠사진을 남기며.

책방일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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