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하나라도 팔아주고 싶은 마음

동네 책방에 들어온 멋쟁이 어르신

by 뮤슈만

지난주 토요일은 동네 서점에서 일하는 마지막 날이었다.

환승센터 못지않게 수많은 버스가 정차하고 지하철역 1번 출구 코앞인 곳이었음에도 서점 안은 평화로웠다. 북적이는 인파와 도시 소음을 잠시 피할 수 있는 미니숲 같다고 할까.


두 달간 일하며 여러 손님들을 만났다.

골목을 오가다 우연히 들어온 손님부터 독서모임까지 주최하는 단골손님까지. 마음에 드는 책을 발견해 기뻐하는 손님도 있었고, 아쉬운 마음에 굿즈를 만지작거리다 발걸음을 돌리는 손님도 있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손님은. 있다. 사실 이분이 일하는 동안 만난 손님 중 가장 인상에 남는 손님이 될 거라고는 예상 못했다.


금요일 저녁 여덟 시쯤이었다. “여기 나도 들어와도 되는 데예요?”라며 빼꼼 문을 연 중년의 손님은 중절모를 쓰고 여름 양복을 단정하게 차려입고 있었다. 근처에 저녁 모임이 있으셨는지 모르겠지만, 빨간 볼과 고깃집에서 풍기는 숯불냄새와 술냄새를 몰고 온 손님은 동네에 이런 곳이 있는 줄 몰랐다며 와랄라 질문을 쏟아냈다. 미니북을 구경하며 아이처럼 웃기도 했고, 중고책을 기증받아 운영하는 서점의 영업방식을 신박한 얘기인 것처럼 귀 기울여 들었다. 기증자별로 책을 비치해 둔 걸 보고는 장사하려면 바로바로 찾기 쉽게 다른 서점처럼 장르별로 꽂아놔야 된다는 훈수를 두긴 했지만, 소위 말하는 꼰대 같은 잔소리로 들리진 않았다.


중년의 노신사는 취향에 맞는 책을 찾고 싶었던 것 같다. 김훈, 이문열 작가를 좋아한다는 손님이 독립출판물 가득한 책방에서 마음애 꼭 드는 책을 발견하는 건 쉬운 일은 아니었다.


“딸들 같아서, 그래도 뭐 하나 팔아줘야 하는데”


꼭 안 사셔도 된다는 알바생의 마인드로 괜찮다고 했지만, 굳이굳이 궁금한 책을 열심히 찾는 손님이었다.


감성 에세이는 정말 취향이 아니셨는지

“시집은 없어요?”라 묻던 손님은

저자소개를 보다가 같은 대학을 나오셨다며


‘이 시국에 방국석 신혼여행’이라는 파스텔톤 분홍 시집을 고르셨다.


현금으로 결제하며 동전 거스름돈은 받지 않은 손님.

“우리 집에도 책 많아요. 다음에 책 많이 들고 또 올게요.”라며 환하게 웃고 책방에서 나온 손님이었다.


오랜만에 마주한 즐거운 식사자리의 흥을 궁금했던 동네 서점까지 가져온 것일 수도 있다. 아니면, 즐거운 귀갓길에 자기보다 한참은 어린 사람들이 가게를 지키고 있는 게 짠해 보여 들어왔을 수도 있다.


내가 궁금한 건, 뭐라도 팔아주고 싶은 마음. 서점 일을 끝낸 지금도 궁금한 감정으로 남아있다.


나 같은 경우에는 무언가를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볼 때, 일 자체에 몰두하여 빛나는 모습을 발견할 때. 뭐라도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하다못해 맛있는 밥이라도 사주고 싶은 마음이 들 때면, 나에게 내리사랑을 퍼주고 많이 봐주던 인생 선배들에게 고마움과 미안한 마음이 동시에 든다.


뭐라도 도와주고 싶은 마음을 나도 조금씩 알아가는 것 같기도 하고, 아직은 수박 겉핥기식으로 아는 감정인 것 같기도 하다.


맡은 일에 진심인 사람들, 일하는 모습으로 긍정의 에너지를 주변까지 퍼뜨리는 사람을 발견했을 때. 뭐라도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할아버지뻘 되는 어르신 손님을 보며 배우게 된 마음이자 다짐.


정겹고 따뜻한 책방알바 에피소드를 만들어준 고마운 손님이었다.




keyword
이전 02화마음이 쪼그라들 것 같을 땐 몸을 움직여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