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담아둬서 하는 말은 아니고,
가끔, '이쪽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친구가 있는데....'라며, 으르신 노릇을 해야 하는 자리가 생긴다. 만나서 좋은 얘기 좀 해주라는데, 나야말로 좋은 얘기 좀 듣고 싶다. 사실 '좋은 얘기'라는 게 뭔지도 잘 모르겠다. 고생도 지나고 나니 추억이라고, 이 나이에 '내가 왕년엔 말야' 할 수도 없고, '재능이 넘치는 친구로군' 하기엔 첫만남은 늘 수줍었다. (두번째 만남은 없었기에 이후로는 알 수가 없다.) 그럼 이럴까? '열심히 해.'라고 한 뒤에 모범적인 표정을 하고 '날 봐...'라고 붙이면.....
일단 나부터 울고 다시 얘기하자.
친척동생이 친구를 데려왔다. 감독이 되고 싶어하는, 그래서 영화과에 가고 싶어하는데 실기시험을 준비한다고 했다. 나는 관련 전공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영화과 실기는 뭘 보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지만, 그래도 현직관계자였기 때문에 "응, 그러니?" 라며 쌀국수집으로 아이들을 데려갔다. 영화과 실기가 뭐하는건지는 모르지만, 쌀국수가 얼마나 대단한 맛인지는 보여주고 싶었다.
그 친구가 왜 그 자리에 나온 건지, 사실 지금도 잘 모르겠다. 진짜 걔가 오고 싶다고 한건지 친척동생의 오지랖이 대단했던건지, 아무튼 내내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그래도 다행히 쌀국수는 안 먹어봤는지, "이거 그냥 먹으면 되요?"라고 했던 것 같다. 그러다가 "영화 뭐 좋아하냐" 라는, 수학의 정석 같은 소릴 했는데, 그 애는 '이명세'하고 외국 감독 얘기했던 것 같다.(요즘으로 치자면, '그을린 사랑' 즈음의 '드니 빌뇌브' 정도?)
그리고 그 말을 할 때의 표정을 보고, 나는 이 친구가 말이 없는게 아니라 '내가 마음에 안 든다는 것'을 알았다. 그 친구의 영화적 품격에서 보건데, 나는 그저그런 오락영화나 하는 작가였던 것이다.
나는 하나도 기분나쁘지 않았다.(진짜야!!) 그냥 예전의 나를 떠올렸다. 라스폰트리에와 도그마선언이던가....영화잡지를 정독하며 어떻게든 해독하려 했던 나에게, "들립니까? 그건 애초에 글이 아니었어요!" 어디서 무전기라도 주워서 과거에 얘기해주고 싶다. (요즘 드라마 '시그널' 대본을 읽었어요) 그 시절 타르코프스키의 희생을 보다 만 것은 최고의 선택이었다고도 말이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도, 그 안에서- 좋아하는 것이 있고, 잘 하는 것이 있다. 할수 있는 일이 있고, 할수 없는 일이 있다는 거다. 나도 이창동의 영화를 재미있게 보지만, 그런 영화를 쓰고 싶지는 않다. "니가 그걸 쓸 수나 있고?" 해봐야 나는 아무렇지도 않다. 쓰고 싶다는 기분 같은 것도 넘어 섰다. 이미 그걸 쓰는 이창동이 있고, 굳이 내가 할 필요는 없잖아? 라고 뻔뻔하게 말할 만큼 나는 나를 조금씩 알아가며 이 일로 나이를 먹고 있다. 그리고 나도 이창동 보다 잘하는 게 있고말고.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 사실을 안 이창동이 "당신이 가진 그것이 바로 나의 결핍!"이라며 나와 일하진 않겠지만, 서로에게 땡큐입니다-
그렇다고 지금하는 걸 되게 잘하냐고하면, 여기서 또 겸손해지는데, 바로 그렇기에 '할 수 있는 것을, 더 잘하는 것'. 나는 그것으로 하겠다.
(이건 뭔가 그때 쌀국수집에서 못다한 울분을 푸는 것 같은, 대단히 교훈적인 느낌이 난다. 앞으로는 이러지 않기로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