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을 찍지 않을 거예요.

by jungsin


누군가 말했다.


아내가 첫 출산을 하던 때였어요. 저는 영상을 찍고 있었죠. 감동적인 장면을 놓칠까봐 노심초사 집중하며 정말 열심히 찍었어요.

그날로부터 시간이 한참 지났어요. 아이가 한창 커갈 무렵 그 아이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문득 깨달았어요. 아, 나는 그때, 이 아이가 처음으로 세상을 만나는 장면을 못 보았구나.

카메라만 보다 잠깐씩 힐긋힐긋 보았지, 렌즈를 치우고,내 눈으로, 정말 나의 망채로 지긋이 바라보지 못했구나. 정말 중요한 무언가를 그때 내가 놓쳤구나. 이 땅을 살며 꼭 보아야 할 감동의 순간 열 장면 같은 것들 중에서 한 순간을, 내가 놓친 거구나.

카메라를 찍지 않았어야 했어.
스마트폰을 밖에 놓고 분만실에 들어갔어야 했어.





그러니까, 스마트폰을 불태워버려라.


어떨 때는 삶의 소중한 순간, 스마트폰이 내 주머니에 들어 있다는 사실 만으로, 그 감각만으로, 그 순간에 집중이 되지 않는 것을 경험한다. 폰을 꺼내 사진을 찍을까. 이 순간을 담기 위해 스마트폰을 꺼내 글로 기록이라도 할까. 망설이는 것 자체가 에너지를 분산시킨다. 스마트폰의 존재 자체가 어떤 식으로든 우릴 갉아먹는 것이다. 온 에너지를 다해 지금 이 시간을 지금 이 곳을 살아야 비로소 나는 삶을 살고 있다, 말할 수 있는 것일텐데.





공유하며,
더 외로워하며,


스터디를 마치고 저녁도 안 먹고 서점에 오랫동안 있었다. 스마트폰 충전도 할 겸 지친 몸을 쉬도록 하기도 할 겸 스타벅스에 갔다. 내 자리 오른쪽 테이블에는 쉰 전후로 보이는 젊은 아주머니 넷이 권태로운 대화를 하고 있었다. 대화의 톤만 들어도 재미없고 무료한 분위기임을 알아챌 수 있었다.


난 혼자 앉아 쉬면서 폰으로 무언가를 하고 있었고. 오른쪽 테이블의 상투적인 분위기 따위 관심도 없었는데. 무심코 고개를 돌렸을 때 우연히 아주머니들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가까이 붙어 앉은 네 사람의 모습은 무료한 것이 아니라 징그러운 것이었다.


네 개의 머리와 여덟 개의 손을 가진 샴쌍둥이를 보았다. 동그란 작은 테이블을 가운데 두고 네 사람이 모두 거의 같은 자세로 얘기하고 있었다. 두 손은 스마트폰을 붙잡고, 두 눈은 스마트폰을 보면서. 세상 사는 정보와 관련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았는데, 표정까지 똑같았다. 생기도, 물기도, 총기도 없는 표정. 개성은 일제히 학살되고 껍데기만 남아 있는 인간. 영혼은 없고 허물만 남아 있는 비인격체.


그들은 한동안 그렇게, 변함없이 두 손으로 스마트폰을 붙잡고 스마트폰을 향해 고개를 조아린 채 무언가 계속 말하고 있었다. 네 사람이 작고 네모난 기계를 향해 한결 같이조아리고 있는 모습이 미래 SF 사회의 현실처럼 느껴졌다. 스마트폰에 의해 주도되고 있는 우리의 일상이 새삼 정말 끔찍한 것이라고 느껴졌다.


귀 기울여 들어보니 증권 이야기 같았다. 증권 투자법과 관련한 좋은 강의 등 몇 가지 자료를 공유해줄 테니 다들 들어가 봐라. 알고 보면 그들의 본심도 교감하고, 나누고, 함께 향유하려고 하는 마음이었지만 외로워 보였다. 그들은 너무나 가까이 모여 앉아 너무나 중요한 정보를 댓가 없이 나누고 있었지만 모두 홀로 있는 것처럼 보였다.


눈을 보고 손을 붙잡고 마음을 보듬는 삶은, 그토록 아름답고 자연스러운 물리적인 행위는, 스마트폰이 모두 소거, 흡압하고 있었다.


그렇게 스마트폰을 붙들고 모여 앉은 채, 영혼은 각자의 꿈을 향해 날아오를 수 있다면.

그렇게 그 자리에서 똑같은 틀의 모양으로 허물을 벗고, 존재는 허물로부터 미끄러져 나가 각자의 개성을 향해 기어갈 수 있다면.


그들이 공유하고 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공유.

공유.

공유.

잿빛 공유.










* 이 눈꽃송이를 굴려 조금 더 큰 눈덩이로 만들어보면 어떨까. (아무튼 이렇게 우선 에세이로 마무리하였지만.) 가제는 ‘사진을 찍지 않을 거예요’. 가슴 쿵쾅거리며 지금 이 순간을 이 공간을 생생히 사는, 카르페디엠의 삶을 오밀조밀하게, 여성적으로 섬세하게 써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영화 소울이 말하려 하는 바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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