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2/00
정신없이 택시를 타고 밤길을 달려 병원에 도착했다.
엄마는 다시 중환자실로 옮겨진 뒤였다. 무언가 잘못되고 있었다.
간호사의 안내로 중환자실 안 작은 사무실에 아빠와 앉았다.
곧 의사가 들어왔다. 면담을 해 오던 담당 의사가 아니었다. 아마 당직의였으리라. 그는 엄마 상태가 급격히 나빠졌다는 짧은 설명 뒤에 본론을 꺼냈다.
“환자분에게 긴급 상황이 생겼을 때 심폐소생술 같은 생명 유지에 필요한 조치를 원하시는지 말씀해 주셔야 합니다.”
당연히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는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걸 묻는다는 것 자체가 나는 이해되지 않았다. 의사가 덧붙였다.
“만약 심폐소생술을 한다면 갈비뼈가 모두 부러질 수 있고 그로 인해 더욱 심각한 상황에 놓일 수도 있습니다. 혹여 심폐소생술이 성공한다고 해도 몇 시간 이내에 사망하실 수 있고요.”
그러니까 마지막 수단이 모두 소용없을 거란 얘기였다.
생명 유지를 포기한다는 내용의 보호자 동의서와 볼펜이 내 앞에 놓였다. 의사는 생각해 보시라며 자리를 떴다.
나는 몇 시간 전 봤던 엄마 얼굴을 떠올렸다. 그리고 나는 어떤가, 스스로에게 물었다. 해 볼 수 있는 건 다 해 봐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엄마가 눈감을 때 조금이라도 후회를 안 하지 않을까.
아빠는 내 결정을 따르겠다고 했다. 의사가 다시 돌아왔을 때 빈 종이를 그대로 내밀었다. 사무실을 나오면서 아빠가 일반 병실로 내려간 지 반나절도 안 되어 상태가 이렇게 나빠질 수 있냐고 의사에게 물었다. 의사가 환자 상태는 자기들도 백 퍼센트 확신할 수 없다는 투로 답했다. 그 전부터 꾹꾹 눌러 담고 있었던 분노가 내 입에서 터져 나왔다.
“그러면 애초에 일반 병실로 옮기면 안 됐던 거 아닌가요?”
의사가 답답한 얼굴로 대답했다. 내 평생 잊을 수 없을 한마디.
“그렇다고 중환자실에서 계속 있을 수는 없잖습니까!”
그게 대체 무슨 말인지 나는 아직도 이해할 수 없다. 환자가 위중하면, 중환자실에 있는 것이 당연한 거 아닌가. 말문이 막혔다. 더는 얘기하고 싶지 않았다. 아빠가 의사와 몇 마디 더 나누는 동안 나는 중환자실 문 앞에 등 돌린 채 애써 화를 삭였다.
간신히 진정시킨 마음은 금방 날을 세웠다. 대기 의자에 앉아 기다리던 간병인이 일주일 치 입금했던 일당을 돌려줄 수 없다고 했다. 우리는 장소도 잊고 목소리를 높여 가며 실랑이를 벌였다.
“하루치 일당 제외하고 돌려주세요.”
“안 돼요.”
“엄마 하루도 아니고 몇 시간 봐주신 거잖아요. 왜 안 돼요? 돌려주세요.”
“다른 환자보다 훨씬 힘들었어요.”
“그럼 이틀 치만 가져가세요.”
그 와중에 아빠는 내게 벌컥 화를 냈다.
“그러게 3일 치만 입금하라고 했잖아! 왜 일주일 치나 입금해서는 일을 이렇게 만들어!”
또다시 말문이 막혔다. 나라고 일이 이렇게 될 줄 알았나? 이게, 내 잘못인가? 엄마를 위해 겨우 구한 간병인을 웃돈 주고 어떻게든 잡으려고 했던 게. 도와준 거라곤 하나도 없는 아빠가 나한테 화낼 일인가?
이 대 일로 말다툼한 끝에 간병인을 먼저 등지고 병원 밖으로 나갔다.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중에 간병인이 소속된 업체 사장이 전화했다. 일주일 치 입금한 순간 그 기간 동안 계약이 된 거라며 돈은 돌려줄 수 없다고. 나는 미친 사람처럼 소리 질렀다.
“경찰에 신고할게요, 그럼!”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몇 번이나 다시 전화가 와도 끝까지 받지 않았다. 집에 도착했을 때 문자가 왔다. 간병인 아들인데, 하루치 빼고 돌려드릴 테니 계좌번호 달라는 내용이었다.
돈은 곧 들어왔다. 그땐 스스로가 강하다고 생각했지만 이제 와 돌이켜 보니 독해지다 못해 미쳐 가고 있었다.
그래서, 다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