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시들의 애환을 담아서, 플라멩코!

유럽여행 이야기 서른셋 @스페인 그라나다

by 알아주다

어떤 학자들이 춤에 대해 정의하길 '날고 싶은 인간들의 욕망'을 몸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춤은 땅에서 발을 떼는 것인데 집시들의 춤인 플라멩코는 땅을 바닥에 매우 세게 밟는 것이라 했다. (유사해 보이는 탭댄스와 다른 것도 바로 이 지점이라고 한다.) 플라멩코에는 땅에 정착하고 싶은 집시들의 애환이 담겨 있다. 그래서 민박집 사장님은 이 춤의 정서가 우리나라 한의 정서와 비슷하다고 느낀단다. 플라멩코 무용수들은 나이가 많을수록 몸값이 오른다. '늙음'으로 집시들의 고단한 삶을 잘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후에 바르셀로나에 가서 젊은 무용수가 추는 플라멩코를 한 번 더 보게 되었는데 왜 나이 많은 무용수들이 더 각광받는지 바로 이해하게 되었다.



인상 깊은 장면을 봤다. 무용수마다 홀로 공연하는 시간이 꽤 긴데 한 무용수가 오랫동안 격정적인 춤을 끝내고 자리에 앉았다. 다음 무용수가 나왔다. 자리에 앉은 무용수와 그 무용수가 미소를 주고받았다. 춤을 출 때는 엄청나게 인상을 쓰고 있었는데 두 동료가, 세 동료가, 네 동료가 미소를 주고받는다. 쉬지도 않고 각자 자리에서 무대 위 무용수를 위해 박자를 맞춰준다. 그 장면엔 자막이 없는데 "이젠 네 차례야. 너도 한 번 해봐. 잘할 수 있지? 잘하는구나"하는 자막이 내 눈엔 보였다. 유럽여행 당시 첫 사회생활에서 받은 큰 상처가 있는 나로서는 너무나 인상 깊은 장면이었다. 입가의 미소로, 애정 어린 눈으로 서로를 응원하는 그 장면이 말이다.


세상엔 정말 다양한 직업이 있다. 내가 알지도 못했던 직업을 가진 이 사람들은 관광객에게 춤을 내보이는 일로 하루를 살고 일 년을 산다. 이들을 보면서 우리나라에 있는 대기업, 남들이 알아주는 기업에 다니는 것보다 하루 반을 넘게 같이 있는 동료들끼리 서로 똘똘 뭉칠 수 있는 직장이 '좋은 직장의 조건'이 아닐까 생각했다. 동료 사이, 그들의 유대관계가 너무 부러웠고 무대 위의 카리스마는 그다음으로 부러웠다.



사람들은 모두 자기 경험에 비추어 저마다의 여행 베스트를 떠올린다. 나는 플라멩코를 보면서 스페인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을 그때 했다. 그라나다 플라멩코의 열기는 오직 스페인에서만 느낄 수 있는 분위기였다.


플라멩코 공연을 다 보고 동굴을 나오는데, 어딘가에서 <아리랑>이 들렸다. 가까이 가서 물어보니 독일에서 유학하는 한국인 학생들이 그라나다에 악기를 들고 온 김에 거리 공연을 해봤다고 했다. 그들에게 특별한 순간일까 싶어 영상을 찍고 메일 주소를 물어 보내드렸다. 누군가의 특별한 순간을 담아 공유하는 것을 좋아한다.



무슨 맛인지 궁금했던 하몬과 레몬맥주를 마시며 그라나다에서 하루 마무리했다. 그라나다에서 하루하루는 역사로, 문화로, 음식으로 속이 꽉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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