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상

14. 이만하길 다행이야

by 게으른 기록자

‘발리 두 번째 집’은 가장 기대했던 숙소였고, 실제로 방문했을 때도 만족스러웠다. 그중 방에서 특히 마음에 든 건 한편에 자리한 책꽂이 딸린 책상이었다. 책과 아이 물건들을 책꽂이에 올려두었더니, 아이는 시키지 않았음에도 자연스레 그 자리에 앉아 그리기나 만들기 등을 하곤 했다.


조식을 먹고 와서였던가. 수영장에 갈 채비를 하는데 아이가 갑자기 손가락이 아프다고 했다. 평소 조금만 아파도 바로바로 말해주는 아이이기에, 우선 피가 나는지 물었다. 안 난다기에, 그럼 크게 다친 게 아니라며 딱히 봐주지 않고 짐을 챙기는 데 열중했다.


그런데 아이는 계속 아프다고 했고, 손에 뭔가 박힌 것 같다 했다. 그제야 들여다보니 약지와 소지에 투명하고 반짝반짝한 무언가가 촘촘히 박혀있는 게 보였다. 허둥지둥 남편에게도 상황을 공유했다. 급한 대로 플래시를 비춰 알코올로 소독한 족집게로 빼보려고 했다. 하지만 입자가 너무 작아서 잘 집히지도 않았다. 낭패였다.


일단은 이걸 빨리 빼야 할 것 같아서 프런트에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했다. 어디서 의사를 만날 수 있냐고 물었더니 현재 의사는 다른 환자를 보고 있는 중이며, 진료가 끝나면 방으로 올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의사가 방문할 경우 진료비가 부과된다고 했다. 나는 당황한 가운데 화가 나서 따졌다. 방 청소가 확실하게 되어 있지 않아서 뭐가 박힌 건데 왜 우리가 비용을 부담해야 하냐고. 직원은 일단 알겠다며 전화를 끊었고, 곧이어 누군가 벨을 눌렀다.


의사가 왔나, 싶었는데 호텔 매니저가 상황 확인차 들른 것이었다. 우리는 다시 한번 있는 그대로 상황을 설명했다. 그녀가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의사가 한 시간 안에 방문할 거라는 연락을 받았다. 사실 큰 부상도 아닌데 이대로 방에서 한 시간을 더 허비하기는 싫었다. 하지만 정확한 상태를 모르니 이대로 수영을 하러 갈 수도 없었다. 그저 기다리는 수밖에.


드디어 의사가 왔고, 그녀에게도 딱히 뾰족한 수는 없는 것 같았다. 단지 소독을 좀 더 확실히 할 수 있고, 조금 더 정밀한 핀셋을 가졌다는 점이 달랐을 뿐. 의사도 핀셋으로 제거하는 건 어려웠는지 손가락에 계속해서 식염수를 흘려보내며 거즈로 쓸어내리기만 할 뿐이었다. ‘아빠’에 가까운 발음으로 “아파?”라고 계속 아이에게 물어보고 확인하면서 여기저기 눌러보고 쓸어보고. 한참을 계속했다.


느낌상 아이가 아프지 않다는 의사 표시를 열 번쯤 한 뒤에야 마침내 치료가 끝났다. 땀을 뻘뻘 흘리던 의사와 간호사는 소독약과 밴드 여러 장을 두고 떠나버렸다. 내 눈에는 아직도 반짝이는 게 보이는 것 같은데, 이대로 치료를 끝내도 되나 싶었다. 하지만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어 보이기도 했다.


IMG_0262.jpg 의사가 주고 간 소독약(왼쪽)과 동물 모양 밴드들. 비상용으로 들고 갔던 소독약(오른쪽)은 쓸 일이 없었다.


결과적으로 아이의 손은 금방 나았고, 치료비를 내지도 않았으며, 호텔로부터 선물도 받았다. 복슬복슬한 거북이 모양 가방은 무더운 여행지에서 아이의 애착 가방이 되었다.


호텔 입장에서는 그 미세한 조각들이 우리가 만들어낸 게 아니라는 것을 확신할 수 없었을 텐데 (우리도 입증하기 어려웠을 테고) 이렇게 마무리된 게 다행이었다. 아이가 크게 다치지 않은 것도 정말 다행이고.


지금껏 여행 다니며 숙소 근처에서 받을 수 있는 의료 서비스가 있는지조차 따로 알아보지 않았었다는 사실에 새삼 간담이 서늘해졌다. 한 시간이 넘는 처치가 필요했던 다른 투숙객에게는 대체 어떤 일이 벌어졌던 걸까 궁금하기도 하고, 걱정되기도 하고. 여하튼 아이 덕분에 처음 해보는 경험이었다. 다음 여행을 위한 체크리스트에는 ‘주변 병원 알아보기’를 추가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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