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도담도담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s Jun 13. 2016

친구의 수술

#24 아픔을 기억하긴 싫지만, 기억하며 살아가야 하는 이유


#24 아픔을 기억하긴 싫지만, 기억하며 살아가야 하는 이유


나는 친구들에게 자주 전화를 한다. 요즘 시대에 페북과 카톡이라는 좋은 기능이 있지만, 나는 전화가 좋다. 퇴근하면서, 또는 딱히 무슨 일이 없더라도 습관적으로 친구들 또는 지인들에게 안부전화(?)를 한다. 나는 어떠한 목적 없이 전화하는 게 더 좋다. 그냥 바쁜 와중에 잠시라도 서로를 생각해준다는 느낌을 받기에 목적 없이 흘러가는 전화가 좋다.


밤 12시쯤 친구에게 전화 한통을 걸었다. '뚜루루루루, 뚜루루루루' 웬일인지 한참을 받지 않던 통화연결음이 다 끝나기 일보직전에 핸드폰 너머로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인표니?", "아 예, 어머니 안녕하세요.." 친구가 아닌 친구의 어머니께서 전화를 받으셨다. 이런저런 안부인사가 오가고 나서 왜 친구가 전화를 받지 않았는지 알 수 있었다. "OO가 지금 수술을 해서, 병실에서 자고 있단다." 그 사실을 안 순간 황당하였다. '다쳐서 입원해있는 건 알았지만, 급히 수술할 정도로 심했던가'. 그러다 순간 울컥해서 어머니에게 투정을 부렸다. "어머니! 걘 왜 그래요? 맨날 왜 그런 중요한 이야길 안 한데요?!" 어머니 말씀으로는 친구도 갑자기 수술실로 들어가게 되어 미쳐 연락할 시간이 없었다고 하셨다.


 어머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친구에게 곧 간다 하며, 전화통화를 마쳤다. 그날 그 밤, 홀로 옥탑방에 누워서 이런저런 추억을 떠올리며, 친구를 생각했다. 그 친구는 어렸을 때부터 엉덩이가 무거워 공부를 열심히 하곤 했다. 그런 성격의 소유자 답게 한 가지를 하면 진득하게 하는 성향이 있는 친구다. 그런 친구가 다쳐 수술을 하게 된 이유는, 다름 아닌 '미식축구'이다. 대한민국에서 인지도도 거의 없는 미식축구가 웬 말인가, 처음 그 친구가 미식축구를 한다고 할 때는 웃어넘겼고, 그저 남들 조기 축구하듯 사람들 모여서 하는 동호회 정도인지 알았다. 그러나 친구는 '진지하게 대한민국 속에서 미식축구인'으로서의 미래를 그렸다.


친구는 미식축구에 자신의 청춘을 바쳤고, 힘든 훈련을 받고, 그로 인한 잔부상에 시달리면서도 미식축구에 자신의 열정을 태웠다. 그렇게 진득하게 자신의 꿈을 찾아가던 친구는 어느새 먼 미래에 자신이 미식축구로 밥을 먹고 살 걱정을 하고 있었다. 가끔 그런 친구의 모습을 보고 핀잔을 놓는 사람들도 있었다. '돈도 안 되는 미식축구', '그게 뭐야?, 그걸로 뭐 먹고살래?'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지만, 나는 친구가 자랑스러웠다. 그리고 내가 보기에도 그 친구가 점점 인간으로서 성숙해져 간다는 걸 느꼈다.


사람은 저마다 성장하는 시기와 순간이 있듯, 그 친구는 '미식축구'로서 자신을 성장시키고 있었다.


그랬던 친구가 이번 수술로 미식축구를 못하게 된 것이다. 방에 혼자 누워서 친구의 감정을 이해해보려고 몰입하다 보니 불현듯 떠올랐다 그 감정이. 그 시절 그 아픔이 떠올랐다.


중학시절 나는 태권도 선수가 꿈이었다. 지금 시기의 친구와 같이 '태권도 = 나 자신'이었다. 어린 시절 따돌림도, 자기 스스로의 불만족도 태권도로 해소했고, 그 때문에 나 자신을 지키며 버티고 이겨낼 수 있었다. 그랬던 나의 꿈은 자연스럽게 태권도 선수였고, 또 열심히 운동을 했었다. 그러던 도중 무릎에 물이찻고, 조금만 운동을 심하게 하면 무릎이 붓고 너무도 아파서 잘 걸어 다니도 힘들었다. 충격이었다. 나 자신이 짓밟힌 느낌이었다. 그 시절 나는 꿈도 미래도 없이 한동안을 보냈던 것 같다.


그렇게 힘든 시절이 있었는데 잊고 있었다니...  그런 큰 고통이었지만 잘 이겨내 주어 나에게 감사했고, 그런 큰 고통에서 얻은 값진 교훈을 잊고 사는 자신이 멍청해 보였다. 우리는 누구나 살아오면서 큰 고통을 겪는다 그 고통의 무게는 자신만이 알겠지만, 바쁘단 이유로 나도 모르게 잊고 살아간다. 그래서 마음이 힘들 때는 몸을 굴리라는 말이 있나 보다. 이렇게 혼자서 북 치고 장구치 던 와중 우연히 예전에 캡처하여놓은 글귀를 보았다.


사람이니까 울 수 있다. 하지만 기억하라 왜 울었는지 그리고 같은 이유로 울지 마라


옛 생각에 몰입해서인지, 가슴이 찡.. 하고 울렸다. 왜 그동안 잊고 살았는지 하며 차분히 그 시절 그 아픔으로 돌아가 내가 무엇을 얻고 감사한 일들이 너무도 많았다는 걸 왜 잊고 살았는지 생각해보았다. 또 나의 멍청한 실수로 그 소중한 것들을 얼마나 놓치며 살아왔는지.. 다시 한번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그동안 내게 있던 아픔과 슬픔들을 졸업사진을 찾아보듯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찾아보았다. 


우리는 자신의 아픔, 슬픔, 고통을 힘들게 버텨냈는데도, 너무도 쉽게 그로 인한 감사한 일들을 잊고 산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우리도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우리의 그 고통으로 인한 나의 성장을.



이 글을 그 시절 나의 아픔을 찾아준 나의 친구에게 바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기절, 그리고 시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