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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banii Jun 10. 2017

나의 산티아고記-28

마무리하며...

드디어 산티아고 순례길의 마지막을 기록하는 오늘, 나는 내내 머물던 인도 다람살라가 아닌 한국의 서울에 와 있다. '수많은 저 불빛의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아니지만 서울생활에 적응하느라 보낸 한 달 남짓, 오늘 낮에 장 보러 나선 길에서 스페인 음식과 맥주를 파는 축제장 부스를 마주쳤다. 산티아고 길을 걸으며 거의 매일 마시던 맥주, 그중에서도 즐겨 마셨던 에스떼야를 발견했다. 그것은 계시도 무엇도 아니지만, 이제는 이 여행기를 끝낼 때가 되었다고 의미를 부여하기로 한다. 이렇게 오늘 산타이고 여행기와 이별하지만, 다시 만날 것이다. 언젠가, 곧.


day34. 아르수아-오 페드로우소:19km

여행자의 시선이 때로는 과장되고, 때로는 폭력적일 수 있음을 인도와 네팔을 여행하면서 배웠다. 그 대상이 헐벗고, 불행해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생활인의 세계에서 여행자는 자신의 기준으로 종종 여행지의 삶을 왜곡한다. 그곳이 스페인이라고 해서, 혹은 영국이나, 프랑스라고 해서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과장된 찬사도, 인색한 평가도 내 인식의 범위에서 못 벗어난 편협한 것이라는 점에서 삶이라는 큰 틀에서 보면 별 것 아닐 테니. 그런 시간들을 통과해 이제 산티아고에 도착하기 하루 전이다. 

한 달 넘게 걸어오며 이젠 걷는 것도 가방의 무게도 익숙해졌다. 아침이면 정교한 계획대로 정해진 자리에 들어갔다가 숙소에 도착하면 다시 역순으로 끄집어 내지는 배낭 속 소지품들의 위치는 이미 머리 속에 새겨진 지 오래여서 길을 걷다가 물건을 찾게 되는 일이 있더라도 망설이거나 헤매는 일이 없다. 배낭 커버를 씌우거나, 입고 있던 바람막이를 허리에 두르거나, 틈틈이 사진을 찍는 일조차 달인이 되어버린 느낌이다. 어떤 일이 몸에 익는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싶다. 이대로라면 평생도 걸을 수 있을지 모른다.

그렇다고 걷는 일이 수월하게만 된 것은 아니다. 마지막으로 묵게 된 오 페드로우소까지는 험하지 않은 평평한 길인데도 이상하게 거리가 줄어들지 않고, 내내 배가 고팠다. 그래서 여러 곳을 둘러볼 생각도 못하고 들어간 식당에서 인생 음식이라고 할만한 문어 버거를 만났던 것이다.

유럽에서는 오징어든 문어든 잘 먹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스페인은 달랐다. 홍합이나 조개 같은 어패류도 생물과 통조림 모두 흔했고(우리나라엔 어패류 통조림이 없다는 걸 그 뒤에 알았다. 골뱅이 정도가 있나요?), 맛도 훌륭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문어를 많이 먹는 것이었다. (스페인어로 문어는 Pulpo인데, Pulperia라는 해산물 가게를 발견하고, 우리말로 하면 '문어 나라' 이런 뜻 아니냐며 웃은 적이 있었다) 한국에서도 비싸지만 스페인에서도 싼 편은 아니었는데 그래도 사 먹을 만한 가격이었다. 대부분 살짝 익힌 문어에 양념을 해서 주는 것을 먹었는데, 맛이 정말 훌륭했다. 안주처럼 나오는 그런 문어요리는 대부분 10유로가 넘었다. 숙소 비용에 10유로를 내는 일이 많지 않았으니까 조금 큰 마음을 먹어야 문어를 사 먹을 수 있기는 했다. 그런데 오 페드로우소 가는 길에 만난 식당에서 문어 버거를 파는 것이었다. 딱딱한 바게트 빵 사이에 문어를 다져 만든 패티와 양상추, 토마토 등을 끼워 넣은 문어 버거는 내가 먹어본 음식 중 다섯 손가락에 꼽힐 정도로 맛있었다. 물론 입맛을 돋워준 맥주와, 34일째 걸어온 피로가 거들어 준 맛일 테지만. 문어 버거 먹으러 다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오 페드로우소는 정작 어땠는지 기억이 안나니 여기까지.


day35.오 페드로우소-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20km

사실은 산티아고가 멀리 보이기 시작하는 언덕을 넘으면서부터 마음이 울컥해 오기 시작했다. 도시로 들어가는 큰 도로를 가로질러 건널 때 처음으로 경적소리를 들었다. 원래 순례자들을 격려하기 위해 차량 운전자들이 울려준다는 경적 소리를 나는 그때까지 한 번도 제대로 듣지 못했다. 심지어 같이 걷던 사람이 방금 어떤 차가 경적을 울리고 갔다고 말해주었을 때도, 나는 다른 생각을 하느라 듣지 못한 때가 있었다. 그렇게 놓쳤던 경적 소리를 산티아고 외곽에서 들었을 때 눈물이 쏟아질 뻔했다. 왜냐고, 그 순간부터 그날 오후 내내 왜 그렇게 울었느냐고 누가 물어보면 대답할 말이 없다. 목표를 이루어서, 감격해서, 끝난 것이 행복해서 라는 등등의 말로 설명하고 싶지 않은 감정이었다. 어쩌면 나는 영영 그 감정을 설명 못할지도 모른다. 그것을 나누는 것이 내 글의 목적은 아니니, 당신들도 한번 걸어보시라고 할 밖에. 이런 불친절한 여행기를 보았나 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어쩔 수 없다. 그리고 단 한 가지는 말할 수 있다. 산티아고를 향해 걷던 날, 모든 날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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