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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보라 Sep 08. 2020

속물근성:아낌없이 주는 나무는 동화 속에만 존재한다

연애가 무슨 비즈니스도 아니고, 인맥 관리도 아니고.

연애에 있어 어떤 것이 적절한지, 보편적으로 사람들이 어떤 기준을 가지고 연애를 하고 있는지 묻는 것은 그야말로 비합리적인 짓이다. 연애를 좀 더 합리적으로, 효율적으로 하려는 그런 노력들이 둘의 관계를 더욱 견고하게 하는 걸 목격한 적은 별로 없다. 연애란 원래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들이 만나는 경우의 수만큼 존재하는 것이라 대부분 ‘보편성’에 의해 재단된 연애는 비극을 맞이하곤 한다.


 그래서 연애가 속물근성에 지배당하는 건 무엇보다 서글픈 일이다. 어쩌면 알랭 드 보통의 <불안>에서 시인하듯 우리가 어떤 내적인 평안함을 찾지 못하고 두려운 나머지 연애에서조차 실용과 득실을 따지고 손해 보는 것을 극도로 꺼리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끊임없이 갈망하는 무조건적인 사랑은 이미 부모에게서조차 당연하게 받기 어려운 것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하물며 스쳐 지나갈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기대하는 것은 판타지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인사이에 더치페이의 비율이 얼마가 적당한 것이냐, 세계적으로 남자들이 데이트 비용을 더 많이 지불하는 것이 보편적인 것이냐 아니냐하는 문제가 공공연하게 논의된다는 것 자체가 가끔은 무의미해 보인다. 그런 것을 계산하면서까지 연애를 이어가는 건 좀 불필요하지 않나 싶기도 하고 그러기엔 연애하는 사이에 해야 하는 일이 너무 많기 때문에 너무 시간낭비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연애가 무슨 비즈니스도 아니고, 인맥 관리도 아니고. 


그런데 정말 서글픈 사실은 연애에 끼어든 속물근성에 내가 결코 예외가 아니라는 것, 그리고 그 누구도 예외일 수 없다는 사실이다. 함께 먹는 음식의 종류가 마음의 종류가 되고, 선물 값이 마음 값이 되는 자본주의적 연애는 우리를 기필코 속물로 만들고야 만다. 속상하지만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자본주의의 대전제 아래 연애라는 관계에서만큼은 예외가 되어야 한다는 법도 없으니까. 마음으로 하는 일에도 최소한의 물질은 필요한 시대를 살아가는 동안 연애를 하는 우리 모두는 속물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속 편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는 동화 속에만 존재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런 사람을 바라는 마음도 결국 속물근성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다시 시무룩해진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되고 싶지만 그러다 결국 밑동만 남겨놓고 잘려질 걸 생각하면 마냥 주기만 하는 사랑이 미련해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니까. 서로에게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되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누군가는 끊임없이 주고, 누군가는 끊임없이 받기만 한다면 그건 분명 밑 빠진 독의 물 붓기처럼 지치는 일이 될 것이 뻔하다. 그런 연애에서 언젠가 고마움이 퇴색되고, 희생이 버거워지는 건 해보지 않아도 너무도 명확하다. 아무렴 나조차도 10번의 데이트에서 내가 9번을 사고 상대가 1번만 사면 왠지 조금 손해 본 느낌을 지울 수 없을 테니까. 게다가 경제적 손해와 더불어 마음조차 내가 더 많이 쓰고 있다는 비경제적 손해까지 더해지면 그 데미지는 생각보다 크다. 


나는 가끔 이렇게 눈이 뻐근할 만큼 선명하게 드러난 연애의 단면을 보고 있으면 마음 한구석이 답답해진다. 연애 지상주의자로 살아가는 삶이 녹록치 않을거라는 걸 두 눈으로 목격하는 기분이라 그렇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어쩔 수 없는 속물임에도 불구하고, 

씻어버릴 수 없는 본성 안에 속물근성이 포함되어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세상에 여전히 돈으로 살 수 없는 가치들이 존재하고, 연애에는 그 가치들이 꽤 많이 포함되어있다고 믿는다. 


가끔은 그가 건넨 선물로 마음의 크기를 가늠하기도 하겠지만, 

또 언젠가는 생각보다 많이 나온 밥값에 마음이 덜컹하는 날도 있겠지만, 

커피값보다는 함께하는 시간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을 잃지 않기를 

비싼 KTX 차비보다는 달려가는 그 마음을 받을 줄 아는 우리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 


돈으로 결코 살 수 없는 시간을, 돈으로 결코 보상받을 수 없는 마음을, 적어도 돈보다는 가볍게 여기지 말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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