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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덕후 한국언니 Jul 06. 2023

피부에 양보하지 않고 먹어야 불로장생

미용루틴 미니멀라이징

잘 씻고 잘 보습하는 것은 여전히 중요하다. 그러나 모든 오랜 습관 또는 집착과 마찬가지로 미용루틴에도 반전이 생겼다. 주범은 팬데믹, 공범은 사재기다. 팬데믹 직전에 미국에 다녀온 나는 미국에서 한국 화장품을 애타게 그리워한 나머지 귀국하자마자 서랍형 화장대를 가득가득 채웠다. (윗뚜껑을 여닫는 디자인으로 우연히 지금의 책상과 높이가 거의 똑같은, 이 화장대는 보조 책상 겸 보조 식탁으로 아주 유용하다!) 그때 구입한 화장품 상당수는 최근에 버렸거나 버려지는(?) 중이다.


유통기한이 지났기 때문이다. 그보다도 팬데믹 1년차에 각종 미세먼지와 외부 유해물질로부터 거의 철저하게 격리되어있었기에 화장품을 많이 쓰지도 않았다. 인생 바디클렌저와 정착한 샴푸 등 할 얘기는 많고도 많지만, 최근 또다른 움직임이 감지됐다. 어느새 세수보다 커피와 모닝 퇴고가 루틴으로 자리잡았기 때문에, 여느 생일과 다르게 올해는 셀프 생일 선물로 바닥을 보이는 바디클렌저와 세안제 등등을 외면하고 책만 열심히 샀다.


두달째 책만 샀더니 휴지와 샴푸와 세안제와 바디클렌저가 동시에 떨어졌다. 어렵게 찾은 정착템들은 품절일때도 많지만 대체로 항상 잘 팔리기 때문에 항상 묶음할인을 하고 그 제품을 구비해두면 반년 정도 클렌징 걱정을 안 해도 된다. 그러나 반년 전에도 그 전에도 샴푸랑 눈치게임을 하다가 피곤해졌던 적이 있다. 생활용품 쇼핑의 시간을 미루고 또 미루다 결국 요즘 핫한 B마트를 이용했다. 용량은 넉넉하되 저렴해서 묶음할인을 받지 않아도 여유있게 사용할 수 있는 여름전용 대체제를 구입했다. 그렇게 절약한(?) 비용으로 또 책을 샀다.


여전히 세안제의 성분과 사용감은 중요하다. 하지만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수제비누와 로션은 아직 넉넉하게 남아있고, 그 동안 바디클렌저를 사면서 샘플로 받은 바디로션이 있어서 보습제의 구입 타이밍은 아직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니까, 어떤 제품을 써보고 더 좋은 제품으로 갈아탈지를 고민하던 시절은 완전히 끝난 것 같다.


이번에는 쓰던 제품을 재구매하는 눈치게임마저 귀찮아서 적당히 무난해보이는 다른 제품을 얼른, 대충 사버렸다. 이제 그만 고민하고 싶었던 거다. 무슨 책을 먼저 살지 고민하는 것도 종종 현타가 오는데, 이제 그만. 샴푸 고민은 정말 그만. 이라고 생각하면서 또 새치 가리는 작업이 은근 고역이라 뿌염은 아예 밝게 해버린다. 같은 브랜드의 염색약 중에서 지난번 라이트 브라운은 새치커버가 됐는데, 이번 애쉬 블론드의 애쉬는 페이크고 본질은 블론드였다. 일주일 내내 샴푸를 했더니 조금 차분해졌지만 처음에는 뿌리만 금발이어서 기분전환은 제대로 했다.




예매한 전시 한 곳이 곧 만료되기 때문에 곧 다녀와서 예매할, 다른 전시와 공연이 있고 결혼식도 있다. 폭풍 산책을 하고도 쓰러지지 않을만큼 산책력을 비축해서 산책한도를 늘렸는데 장마가 온 것 같다. 이럴때는 외출을 안해도 지칠 것 같으니까 영양제도 종류별로 준비해두었다. 미니멀리즘은 미용루틴에 양보하고, 피부에 좋은 영양분은 먹어서 섭취하려고 한다. 먹는 방법이 더 궁극적인 불로장생에 효과적이다. 일을 더 많이 하고 싶을때는 식곤증 예방을 위해 간식으로 하루를 버티다 저녁에 폭식을 하더라도 적절하게 보양식과 정크푸드를 배치하면 몸과 마음이 충만하다. 어제는 또 피자를 먹다가 이상한 시간에 낮잠을 잤는데, 그건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여름이니까 샤워는 좀 자주 하려고 한다. 아직 싫어증, 그 중에서도 씻기 싫어증을 완전히 떼버리지 못했다. 하지만 외출과 산책과 실시간 산책 자랑의 짜릿함과 재회했기 때문에 허들이 낮아졌다. 외출할 생각이 없거나, 이미 해가 져서 김빠져도 상쾌한 독서를 위해 샤워를 한다. 오후에 샤워하고 산책하려고 오전 세안을 패스하는 경우도 많지만 낮잠자다 산책 계획이 사라져도 샤워는 하기로 한다.




무향 클렌저를 쓰다가 레몬향으로 바꿔서 적응하는데 일주일쯤 걸렸는데, 마침 그때는 염색약 냄새도 공존했기 때문에 레몬향이 거슬리진 않았다. 그저 잊고 있던 벤젠 향들이 내게 클렌저를 바꿨다는 사실을 자꾸 깨우쳐줄 뿐이다.


오랜 기간 피부 트러블로 고생을 했고, 정착템을 만나서 '고민과 검색'으로 빠져나가는 시간과 에너지를 절약했다. 그런 한편 정착템과 눈치게임을 하는 그 자체가 문제였다. 믿고 맡길 제품들이 있으니 믿고 안 씻어서(?) 트러블이 계속 생겼다. 이제 적당한 제품으로 적당히 잘 씻고 그만 고민해야 겠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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