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 욕구 혹은 뒤처지지 않고 싶은 마음

어쩌면 그들은 개츠비일지도?

by 산책덕후 한국언니

있어보이는 것도 좋지만



있어보임이 전부일 수는 없습니다.

있어보임이 전부이고 싶은 사람도 없고

있어보임이 전부일 수 있는 사람도 없지요.

사람이란 그렇게 단순한 존재가 아니니까요.


에드거 앨런 포의 작품에 나오는

사라지지 않고 계속 산책하는 사람처럼

​공공장소에만 존재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우리 모두는 사생활이 있고, 있어야 해요.


​공공연히 숫자로 표현되는 나의 가치는

나를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남을 위한 것일 때가 많을지도 모릅니다.

남에게 나를 비추어 보는 걸까요?




이 정도면 이제 나를 알아주겠니,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나요?



내 옆에 사람이 있는 것으로 좋았고

더 많은 사람과 함께라면 더 좋았고

그런데 꼭 많지 않아도 있으면 좋았던

그건 다 과거일 뿐인가요?

​내 옆에 있는 많은 사람의 사진, 그러니까

사진이나 증거가 있어야 하나요?


​이제와서 한때라고 말하기 심각했고

​여전히 조심모드로 살고 있지만

​사진으로 인싸력을 표현할 수 없던 시절엔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주는

취향의 깊이를 드러내는 사진이 필요했죠.


대신 '내 사람'은 이제 숫자로 표시가 되네요.

만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아도 괜찮은데

​찐친이 많으면 좋지만 이미 그렇지 않으니까요.

​내 친구가 몇명인지, 그런게 있기는 한지

이제 그런 건 중요하지 않게 됐어요.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지금도 그런 사람이 있기 때문에

팔로워 늘리는 방법과 연관된 상품이 있겠지만

처음 이 세계에서 확장을 하려고 했던 이유는

먼저, 누군가 확장을 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나는 아무 것도 아니지만, 눈에 보이니까요.

저 사람도 마찬가지인데 팔로워가 많잖아요.

팔로워 숫자는 쉽게 비교하고 싶게 만들고

나와 저 사람 사이의 모든 것을 납작하게 해요.


그게 다가 아니라는 것을 아는 지금도

그게 다인 것처럼 고통받는 순간이 있어요.

잘 해서 잘 하는 사람에게 배우는 행복도 있지만

​누군가는 딱히 뭘 안 해도 팔로워가 많잖아요.


불통계정, 소통을 안 하는 정도가 아니라

다만 스스로 존재하기 위한 나르시시스트도

꿈의 팔로워를 보유한 경우가 있기 때문에

보통 사람들이 매순간 고통받고 있어요.




우리가 이상한 사람이

아닌 것 같아요!



저도 그랬지만, 저 말고도 많은 사람이 그래요.

충분히 소통하고, 충분히 찐팬이 있는 사람도

숫자 앞에서 무력해지는 순간을 느끼나봐요.

제가 매일 그러니까, 그 심정 너무 잘 알아요.



이 감정 그냥 무시하면

안될 것 같아요.



최선을 다해도 안 되면 이유라도 알고 싶어요.

그래서 함께 고민하고, 여전히 관찰해요.

공식은 없지만 권장하는 방법은 있어요.

페어플레이를 안 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알아야 납득하고, 납득해야 덜 불행해요.




모두가 ​권장하는 방법을 소개해볼거예요.

커뮤니티 가이드 라인과 알고리즘,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이거, 쁘띠 인플루언서들의

인사이트를 종합해서 정리해볼 예정입니다.

언어화 할 수 있는 선에서 최대한 납득하고,

납득하는 선에서 최선을 다한 경험을

​접근 가능한 방법으로 알려드리도록 할게요.​​​​


​비교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지만

비교하게 되는 심리가 작동하니까

이제는 정면돌파를 해야겠어요!


'나처럼 해봐요' 스타일의 강의를 듣더라도

모두가 그와 똑같은 방법을 사용한다면

​그 방법 자체가 더이상 방법이 아니게 돼요.


​이 욕망으로부터 자유롭기 위해

이 욕망을 컨트롤할 수 있는 인싸이트를

탐구하고 인풋으로 만들어보려 합니다.

이 글을 보고 저를 팔로우 하셔도 좋지만

이 글을 보고 여러분이 덜 불행했으면 좋겠어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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